100조 추경 공약, 내년 국방 예산 2배..재정 '감당 불가'

조현숙 2021. 12. 1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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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조원 받고 100조원 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퍼주기 공약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 확산 위험이 커지자 양당은 지원 금액을 더 늘리겠다며 주도권 다툼에 한창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9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감염병 대응 정책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李 “100조 당장”, 尹 “추경 빠를수록 좋다”


지난 10일 경북 경주를 방문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100조 지원 얘기가 이미 야당에서 나왔다”며 “국민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도록 곧바로 여야 협상에 나서서 이번 임시회를 소집해서 추경(추가경정예산)을 통해 할 수 있는 일들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도 강원 강릉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추경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며 “여당이 문재인 대통령을 설득해 정부 예산안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한 달 전 윤 후보가 “자영업 손실 보상에 50조원을 투입하겠다”고 한 걸 두고 같은 당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지난 7일 “부족하다”며 100조원으로 판돈을 늘렸다. 이제 두 후보 모두 100조원 추경 굳히기에 들어갔다. 대통령 설득이 먼저냐, 여야 협상이 우선이냐 정도 의견만 갈릴 뿐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1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사회복지비전선포대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복지 절반, 국방 2배 예산…고스란히 나랏빚


역대 최대 규모의 607조7000억원 내년도 ‘수퍼 예산’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열흘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양당 모두 ‘100조원+α’ 추경을 공식화하고 나섰다. 내년 예산 6분의 1에 해당하는 돈을 더 쏟아붓겠다는 얘기다. 내년 보건ㆍ복지ㆍ고용 예산(217조7000억원)의 절반에 가까운 금액이다. 교육 예산 총액(84조2000억원)을 한참 뛰어넘을 뿐 아니라 국방 예산(54조6000억원)의 2배에 육박한다.

정작 재정 상황은 50조원, 100조원을 여유롭게 외칠 수준이 못 된다. 지난 3일 국회를 통과한 내년도 본예산을 보면 정부 총수입은 553조6000억원으로 총지출(607조7000억원)에 한참 못 미친다. 모자라는 54조1000억원(통합재정수지 적자)은 고스란히 빚을 내 메우기로 돼 있다.

100조원 손실보상에 쓸 여윳돈은 당연히 없다. 올해와 같은 예상 밖 초과 세수를 기대할 상황도 아니다. 지난 9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재정동향’에 따르면 올해 10월 국세 수입은 32조9000억원으로 1년 전과 비교해 6조2000억원 줄었다. 전년 대비로 월별 세수가 올해 들어 처음 감소했다. 정부의 과소 추계, 예상 밖 경기 회복으로 계속되던 초과 세수 행렬이 끝나간다는 신호다.

대선 공약 관련 주요 발언.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결국 양당 주장대로 내년 대선 전후 추경을 하려면 50조원이든, 100조원 나랏빚을 더 내는 수밖에 없다.

100조원 추경이 아니더라도 국가채무는 이미 위험 수준에 올라서 있다. 내년 본예산만을 기준으로 해도 국가채무는 처음으로 1000조원을 넘어선다(1064조4000억원). 연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처음 50%에 도달한다.

만약 소상공인 지원에 필요한 재원 50조원 전액을 적자 국채 발행(채무 증가)으로 마련한다면 내년 국가채무는 1114조4000억원으로, 채무 비율은 52.3%로 2.3%포인트 상승하게 된다. 100조원 국채 발행을 한다면 국가채무는 1164조4000억원으로, 채무 비율은 54.7%로 5%포인트 가까이 치솟는다. 단숨에 채무 비율이 50%대 중반으로 올라선다.


내년 나랏빚 1000조 돌파 ‘위험 수위’


나랏빚 증가 속도는 워낙 빨라 비상 상황이다. 기재부 통계를 보면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20%에서 30%를 돌파하는 데 7년, 30%에서 40%를 넘어서는 데 8년이 걸렸다. 반면 40%에서 50%로 치솟는 데는 단 2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국회예산정책처(예정처)는 ‘중기재정전망’에서 5년이 더 흘러 2027년이면 채무 비율이 60%대(60.1%)로 처음 올라서겠다고 예상했다.

채무 비율 60% 선은 국제신용평가사에서 비기축통화국(달러나 유로 같은 국제적으로 쓰이는 통화를 보유하지 않은 나라) 기준 위험 수위로 간주하는 수치다. 암울하기만 한 이 전망마저도 민주당과 국민의힘에서 경쟁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100조원 단위 빚잔치 공약은 고려하지 않은 숫자다.

빠르게 늘고 있는 국가 채무.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미 국가채무는 넘치다 못해 빚이 빚을 부르는 형국이다. 내년 본예산을 보면 정부는 국고채 이자 상환으로만 19조7000억원을 지출할 예정이다. 예정처 ‘중기재정전망’에 따르면 국고채에 각종 기금까지 고려한 이자 지출은 2025년 25조1000억원, 2030년 36조4000억원으로 불어난다. 앞으로 5~10년 뒤면 전 국민 재난지원금(1인당 25만원, 약 14조원)을 2~3번 줄 수 있는 규모의 돈을 매년 이자로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다.


재정준칙 표류…빚 폭주 막을 제동장치 없어


국가채무 비율 60%, 통합재정수지 적자 GDP 3% 이내 선을 지켜내겠다는 재정준칙 도입 법안은 국회에서 사실상 방치 상태다. 대선 정국과 맞물려 입법 자체가 불투명하다. 폭주하는 국가채무 상승세를 잡아줄 브레이크는 없다. 여야 대선 후보가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100조원 추경 공약을 여유롭게 관망할 상황이 아니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양당 후보 모두 50조원, 100조원을 뿌리겠다 말은 하고 있지만, 정확히 어떻게 어디에 쓰겠다는 구체적 얘기는 없다”며 “일종의 정치 대결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100조원을 잘 써서 200조원, 300조원 경제 성장을 이뤄낸다면 가치가 있다고도 하겠지만, 구체적 정책이나 비전 없이 100조원을 나눠준다고 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세종=조현숙기자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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