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 양도세 무시당한 기재부..상속·증여세도 '패싱' 우려

장정욱 2021. 12. 1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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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세법 기재부 반대에도 통과
상속·증여세도 정부 의견과 달라
기재부 준비 부족에 '패싱' 당할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정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 1주택자 양도세 완화 등 소득세법 개정안을 처리한 데 이어 상속·증여세도 당국과 의견이 엇갈리면서 향후 관련 세제 개편에서 기획재정부 ‘패싱(passing)’이 우려된다.


국회는 지난 2일 1주택 양도세 부과 기준 완화에 방점을 둔 소득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1가구 1주택자가 집을 팔 때 내는 양도소득세 비과세 기준을 주택 실거래가 기준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높이는 내용이다.


기재부는 그동안 소득세법 개정에 반대 의견을 꾸준히 밝혀왔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심의 당시 “정부로서는 부동산 시장이 매우 불안정하다가 최근에 안정세로 돌아섰는데 양도세 공제금액 조정이 부동산 시장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며 “시기적으로 신중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홍 부총리 주장은 먹혀들지 않았다. 처음부터 여당 내부에서 ‘정부 반대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흘러나올 정도였다.


한 여당 관계자는 “처음에는 당내에서 양도세 완화 반대 여론도 많았지만 대선 분위기가 시작되고, 무엇보다 종부세 논란이 시작되면서 민심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며 “다주택자도 아닌 1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완화라면 기재부 의견은 사실 애초부터 신경 쓰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고 상황을 전했다.


결과적으로 정치권이 세법을 개정하면서 주무 부처를 철저히 무시했다는 의미다. 실제 가상화폐 과세도 기재부 반대와 관계없이 정치권에서는 1년 유예했다.


이러한 정치권의 기재부 ‘패싱’이 이번 소득세법 개정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기재부가 추진 중인 상속·증여세 개편도 기재부 뜻과 관계없이 정치 논리로 흐를 수 있는 것이다. 여론을 의식해 지금은 다소 가라앉은 분위기지만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완화 논란도 끝난 게 아니다.


현재 기재부는 상속세에 관해 직접적인 세율 조정은 안 된다는 입장이다. 기재부는 상속세가 부의 집중과 대물림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자산 불평등이 악화하는 상황에 상속세율까지 낮춘다면 부의 불균형이 심화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상속세율을 조정할 경우 증여세 부담도 낮아지는 점을 내세우며 현재 과세체계에서는 세율 조정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우리가 세율 인하나 과표 조정 경우 사회적 공감대나 논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추진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국회에 전달했다”며 “유산취득세 전환 또한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기재부 세율 인하 반대 의견과 달리 정치권에서는 세율 조정 움직임이 활발한 상황이다. 특히 선거가 다가오면서 여야에서 상속세 완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는 상속세 완화를 직접 거론하기도 했다. 윤 후보는 지난 1일 충북지역 기업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단순히 기업하는 분들, 가진 자의 세금을 줄이라는 게 아니라 기업이 대를 이으며 영속성을 가져야 근로자도 일을 한다”고 말해 사실상 상속세 완화 의견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지난 8일 중소벤처기업 정책공약을 발표하며 “상속 공제액을 늘리거나 하는 부분은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그렇다”면서도 “승계가 용이하게, 기업이 사라지지 않는 방법을 세부적으로 논의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대선 후보들이 상속세 완화 의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상황에도 기재부는 ‘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무엇보다 장기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면서도 이를 위한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정책 논의를 위한 체계조차 없다.


내년 대선이 다가올수록 정치권에서는 상속세 완화 움직임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반면 기재부는 준비가 안 된 상황이다. 정치권이 소득세 개편에서 보여준 기재부 ‘패싱’이 상속·증여세 개편에서도 언제든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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