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뜨는 '뱅가드 펀드', 그 뒤엔 'CRSP 지수'가 있다

이동훈 2021. 12. 11.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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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학개미가 알아야 할 이 지수


‘워런 버핏 바이블’은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매년 손수 쓴 주주서한과 주주총회에서 주주들과 나눈 질의응답 가운데 100개를 정리해 펴낸 투자비법서다.

이 책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전 재산 85%의 사회환원을 선언한 바 있는 버핏 회장이 본인이 먼저 세상을 떠날 경우 홀로 남게 될 부인에게 자산의 90%를 ETF(상장지수펀드)로 운용할 것을 조언했다는 점이다. 특히 적합한 펀드 운용사로 뱅가드를 제시해 투자자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뱅가드 펀드에 어떤 매력이 있기에 버핏이 사랑하는 아내에게 유언처럼 추천한 것일까. 이 책 출간 4년이 지난 지금 미국 증시에서 티커 VTSAX와 VTI로 통하는 ‘Vanguard Total Stock Market Index Fund’와 ETF 자산이 1조3000억 달러인 점을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이 ETF는 미국 내 뮤추얼 펀드와 ETF 가운데 10%로 단연 1위다. 미 주식시장의 2.8%가량으로 2009년 이후 덩치가 10배나 불었다.

미국 증시에 상장된 거의 모든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하고 있어 이 펀드를 사면 미국 기업을 모두 사는 것과 다름없는 셈이다. 지난주(11월 29일~12월 3일) VTI에 유입된 투자금액이 11억1571만 달러로 가장 많았는데 요즘 인플레이션 우려로 인한 위험자산 회피 심리에도 불구하고 미국 주식시장에 대한 기대와 함께 이 펀드의 인가가 어떤지를 반영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뱅가드 펀드의 인기 비결 뒤엔 이 펀드가 추종하는 ‘무명’의 인덱스가 자리잡고 있다고 분석한다. 역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시카고대학의 부스 경영대학원에서 개발한 CRSP지수가 그것이다. 서학개미 대부분에게는 다소 생소해 보이지만 월가에서는 시장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이 지수를 체크한다. 4000여개 종목으로 소형주부터 대형 블루칩까지 망라돼 있어 다우존스(30개 종목) S&P500(500개 종목) 나스닥(3500개 종목) 등 3대 벤치마크지수보다 더 유용한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CRSP는 ‘Center for Research in Security Prices’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1960년 부스 스쿨에서 주식 연구를 위해 설립된 연구소로 출발했다. 당시 전 세계 최초로 주가와 수익률에 대한 포괄적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 위해 3년 반을 연구해 성과를 내놓으면서 금융투자업계로부터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난해 유한회사로 거듭난 이 연구소는 1925년부터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종목을 기반으로 축적한 11만3000여개의 데이터베이스를 보유하고 있는데 유명 헤지펀드나 모건스탠리 등 유수의 투자은행뿐 아니라 35개국의 500여개 경영대학원과 연구기관들이 연구자료로 활용할 정도다.

뱅가드가 주목한 것은 2012년으로 CRSP에 지수 개발을 의뢰해 16개 추종종목에 대한 연간 2000만 달러 상당의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뱅가드는 원래 1976년 시장의 75%를 차지하는 S&P500지수를 추종하는 펀드를 운용했다. 그러던 중 전체 시장에 대한 투자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1992년 윌셔지수를 기반한 ‘토털 미국 시장 펀드’를 론칭했다가 2005년에 추종 지수를 MSCI로 옮겼다. 그러나 이 인덱스는 주식의 유통을 기반으로 할 뿐 가중치를 조정하지 않아 너무 많은 매입 부담이 생겼고 가격을 왜곡하는 성향이 강했다. 따라서 시카고 경영대학원 측에 ‘SOS’를 치면서 CRSP의 연구 리소스를 투자 가능한 지수로 업그레이드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VTI로 10년도 안 된 기간에 미국의 펀드시장을 석권하게 된 것이다. ‘제3의 벤치마크지수’로 통하는 CRSP지수의 진가가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이런 뱅가드의 눈부신 성과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WSJ는 지적했다.

분기마다 편입종목을 심사하는 CRSP지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최소 1500만 달러 시가총액에 12.5% 이상의 주식이 유통돼야 한다. 지난 9월 신규 편입된 164개 종목은 거래량이 2배로 뛰고 주가가 다른 지수 편입 종목보다 3.6% 포인트나 앞서가는 성과를 냈다. CRSP는 지난해 수익률이 20.99%로 S&P를 2.59% 포인트 따돌릴 정도로 이제는 명실상부한 선두권 인덱스 굳히기에 들어갔다는 평가도 나온다.

전기차 회사 테슬라가 이른바 ‘천슬라’(주가 1000달러대 테슬라)로 거듭난 것도 이 지수가 제공한 자양분 덕분이다.

CRSP지수 상품 투자의 장점 중 하나는 S&P500지수 상품보다 운용보수가 0.03%로 비슷한 수익률을 내는 S&P500ETF(0.09%)의 3분의 1밖에 안 된다는 점이다. 1억원을 투자할 경우 연간 60만원가량을 절약하는 셈이다. 하락장에서도 강한 모습을 보이는데, 특히 요즘 같은 급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는 롤러코스터 장세에서 안정성을 유지해 투자자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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