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외쳤던 IOC수장..세계 호령한 '미스터 클린' 로게 [1942~2021.8.29]
“걱정하지 마세요. 평창, 잘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대로만 열심히 하세요.”
강원도 평창이 겨울올림픽 유치에 두 번의 실패를 겪고 삼수에 도전하던 때 얘기다. 투표권을 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의 수장, 고(故) 자크 로게 위원장이 박용성 당시 대한체육회장에게 이렇게 속삭였다고 한다. 지난 29일(현지시간) 로게 전 위원장이 7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박 회장이 30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처음 밝힌 내용이다.
박 회장은 “로게 위원장은 근래에 보기 드문 뛰어난 스포츠 행정가였다”며 “예리하고 냉철한 인물이지만 따스한 면모도 있었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IOC 위원장 본인은 투표권이 없고 특정 후보지를 지지하면 안 되지만 로게 당시 위원장이 평창 각별한 응원 메시지를 전한 셈이다. 실제로 로게 위원장은 2011년 7월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2018년 겨울올림픽 개최지 유치전의 승리자로 “평창!”을 호명했다.
평창은 고(故) 김대중 대통령 시절부터 겨울올림픽 유치전에 뛰어들었지만 두 번 연속 고배를 마셨다. 세번째 도전 중이었던 2010년에도 유치전 현장에서 만났던 IOC 위원들 중에선 대한민국 평창과 북한 평양을 구별 못하는 이들도 상당수였다. 그러나 평창 유치위는 끈질긴 도전 끝에 삼수에 성공했다. 그 과정의 화려한 피날레를 찍은 이가 고인이었다.
로게 위원장은 열정보단 냉정으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IOC 미디어국의 한 직원은 그가 위원장이던 시절, 기자에게 익명을 전제로 “한 번은 ‘위원장님, 창밖에 참 아름답네요’라고 했다가 ‘구경이나 하라고 월급 주는 줄 아느냐’는 타박도 받았다”며 “무섭지만 그만큼 일을 철저히 해내는 분이라 배울 게 많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평창 유치전 투표결과를 보고 멈칫하는 표정을 지었던 것은 IOC내에서 큰 화제였다. 그는 평창의 유치 성공 직후인 2011년 7월15일 기자와 단독 인터뷰에서 “평창이 생각보다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해서 포커페이스가 일순 무너졌다”고 털어놓았다. 평창은 독일 뮌헨(25표), 프랑스 안시(7표)를 제치고 63표를 얻었다. IOC 관례에 따라 유치 성공 후보지를 적은 카드를 봉투에서 꺼내는 그의 사진은 당시 국내 신문 지면 1면 톱을 장식했다.
벨기에 국적인 로게 전 위원장은 2001년에 당선한 뒤 2013년까지 세계 스포츠 대통령으로 불리는 IOC 위원장으로 군림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이가 현 위원장인 토마스 바흐다. 로게는 정형외과의로도 일했지만 요트 세일링과 럭비 종목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 국가대표로 다수 출전했다. 선수 생활 은퇴 뒤엔 스포츠 행정가로 변신, IOC의 유럽 지부 격인 EOC에 진출했고 점차 능력을 인정받아 IOC 위원장 자리에 올랐다.
IOC 위원장으로 로게는 특히 반(反) 도핑, 즉 약물 퇴치 캠페인에 심혈을 기울였다. 운동선수 치료를 전문으로 했던 정형외과의로서의 전공을 살렸다는 평이다. 또한 일부 IOC위원들이 유치 후보지 위원회 측에서 뇌물을 받곤 했던 관행을 근절하는 데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IOC 위원들 사이에서 '미스터 클린'으로 불린 까닭이다. 올림픽에 출전하기엔 연령이 안 되는 어린 선수들에게 출전 자격을 주는 유스(Youth) 올림픽도 제창해 꿈나무 육성에도 힘썼다.
IOC는 고인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엄청난 슬픔을 표하며 고인에 대한 예를 갖추기 위해 닷새간 조기(弔旗)를 게양한다”고 밝혔다. 바흐 위원장은 고인에 대해 “스포츠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수많은 성취를 남긴 위대한 지도자였다”고 말했다. IOC 안팎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숙환(宿患)으로 별세하셨다”고 전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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