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격당하지 않으려고 '척'하며 살았죠"

장지영 2021. 12. 10.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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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력·불평등 사회부조리에 목소리 내
주목받은 극작가 겸 연출가 김수정
자신의 삶에 돋보기 들이댄 작품
극단 신세계를 이끄는 연출가 김수정이 지난달 24일 두산아트센터에서 신작 ‘김수정입니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서영희 기자


극단 신세계를 이끄는 극작가 겸 연출가 김수정(39)은 한국 연극계에서 지금 가장 주목받는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2015년 극단 창단 이후 ‘파란나라’ ‘광인일기’ ‘공주(孔主)들’ ‘그러므로 포르노’ ‘이갈리아의 딸들’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폭력 차별 불안 불평등 같은 외면하고 싶고 불편해하는 이야기에 주목해 왔다.

주로 단원들과 공동작업을 통해 작품을 완성하는 김수정표 연극은 너무 적나라하고 강렬한 표현 때문에 어떤 때는 고개를 돌리고 싶어지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도발적인 연극에 대한 평단과 대중의 반응은 뜨거워서 매년 여러 연극상의 단골이 된다. 올해도 2017년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을 두고 벌어진 실제 갈등을 청문회 형식으로 표현한 ‘생활풍경’으로 서울연극제 대상과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올해의 연극 베스트3’ 등을 수상했다.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지난 7일 개막해 25일까지 공연하는 ‘김수정입니다’는 김수정이 사회적 담론 대신 자신의 삶에 돋보기를 들이댄 독특한 작품이다. 극단 단원 7명과 함께 김수정이 직접 출연한 이 작품은 김수정의 학창시절부터 연극 연출가로 성장하기까지 과정과 극단 신세계 운영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파티장처럼 꾸민 공간에서 선생님과 부모님의 인정을 받기 위해 애썼지만, 친구들에겐 따돌림당하던 학창시절, 연극계에서 성폭력 위험에 노출됐던 배우 시절, 돈을 벌기 위해 내레이터 모델을 한 경험, 극단 단원들의 갈등 문제 등이 펼쳐진다. 자전적 연극답게 각종 사진과 영상, 문서 등이 사용돼 한층 현실감을 부여한다.

김수정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인 것 같지만, 김수정과 관계를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극 중 배우들은 물론이고 공연을 보는 관객들도 그간 외면해온 자기 자신과 솔직하게 마주하도록 자극한다.

이번 공연을 앞두고 연습이 한창이던 지난달 24일 만난 김수정은 “평생 실격당하지 않기 위해 모범적인 척, 예술가인 척 등 ‘척’ 하며 살아왔다. 그동안 사회의 여러 부조리에 관해 이야기해 왔지만 이제는 나 자신의 모순부터 마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작품을 만든 계기를 밝혔다.

김수정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와 같은 학교 연출 전문사와 무용원 안무 전문사를 마쳤다. 2005년 연극배우로 데뷔해 2010년 연출가로 전향한 그는 2015년 스타 연출가의 산실로 불리는 ‘혜화동 1번지’ 6기 동인이 됐다. 지금까지 매년 주목받는 작품을 발표해온 그는 코로나19로 연극계가 위축된 가운데서도 활발히 활동해 왔다. 겉으로 드러나는 커리어만 보면 나무랄 게 없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알게 된 그의 본모습은 아프고 힘들어 보였다.

지난 7일 개막한 ‘김수정입니다’의 한 장면. 김수정 자신의 삶에 돋보기를 들이댄 독특한 작품이다. 극단 신세계


김수정은 “연극 작업을 하는 동안엔 나 자신이 싫어진다. 우리 사회의 파시즘과 보수주의를 공격하는 작품을 만들어 왔지만 내 안에서 그런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라며 “이번 작품이 내 이름을 걸고 하는 거라서 뭔가 대단할 거로 생각하는 관객에겐 죄송스럽다. 다만 나 자신에겐 하나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극단 신세계는 최근 사회적 이슈를 다룬 작품 안에 자신들의 연극 행위에 대한 반성적인 작업을 포함하곤 했다. 근현대 한국 성 착취의 역사를 다룬 ‘공주들’에서 연극계 성폭력을 언급하는가 하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부정해온 예술가이자 광인 7명의 이야기인 ‘나는 광인입니다’에선 연극하는 예술가를 다뤘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번에 자신을 성찰하는 작품이 나왔다.

김수정은 “버바텀 시어터(구술 및 기록 자료를 토대로 만드는 다큐멘터리 연극의 일종)와 구술사를 공부하고 있다. 덕분에 나 자신의 이야기를 객관화하는 데 도움이 됐다”면서 “특히 안희정 성폭력 사건 피해자 김지은씨가 쓴 ‘김지은입니다’를 읽으며 용기를 얻었다. 김씨는 단순히 피해 당사자로서 끝나는 게 아니라 연대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고 털어놓았다.

‘김수정입니다’의 마지막 대목에서 김수정은 당분간 연극 작업에서 떠날 계획임을 밝힌다. 학교에서 연극 강의는 하지만 무대 작업은 언제 재개할지 알 수 없다.

김수정은 “다시 연극 작업을 할 때는 개인의 서사를 다룬 작품을 만들고 싶다. 이런 개인의 서사 안에 결국 사회적 담론이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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