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미디어를 던져버리고 진짜 삶을 바라보라!

김남중 2021. 12. 9.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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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제니 오델 지음, 김하현 옮김, 필로우, 351쪽, 1만6000원
아티스트 스콧 폴라크(Scott Polac)가 2015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선보인 ‘박수를 권하다’라는 작품의 한 장면. 노을이 내리기 45분 전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절벽 위, 가장자리에 붉은 색 로프를 두르고 접이식 의자를 펼쳐 놓은 공간에 사람들을 초대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제공하는 작품이다. 관객들은 그저 노을을 감상했고, 해가 다 지자 박수갈채를 보냈다. 스콧 폴라크 제공


제니 오델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를 기반으로 개념미술 작품을 만들고 스탠퍼드대학에서 강의하는 젊은 예술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7년 초, 그는 선거의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에서 한 페스티벌의 기조연설을 요청받는다. 그때 연설 제목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이다.

오델은 대선 직후 참기 힘든 가짜뉴스가 쏟아지는 온라인 환경을 피해 집 근처 5분 거리에 있는 장미 정원으로 나가곤 했다. 거기서 새들을 관찰하며 뭔가를 깨달았다. “이것은 진짜다.”

오델은 소셜미디어 경험이 주는 감각과 인식의 불쾌함, 공포, 혼란, 피로, 결핍 등이 무엇 때문인지 알게 됐다. 현재의 나쁜 정부는 반대 의견을 억압하거나 침묵을 강요하는 방법에 기대지 않는다. “잡담의 확산, 부적절한 방식으로 형성된 담론과 의견에 의지하며 개인의 생각과 반대 의견, 비판을 시시하고 터무니없는 것으로 만드는 데 몰두한다.”

진실이 사라졌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지냈지만 사실은 현실이 사라졌기 때문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현실 세계에 다시 발을 디디기 위해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른다. 멈추고, 관심을 돌리고, 주변 세계를 바라보고 귀 기울일 시간. 가장 깊은 감각으로 현재 우리의 모습과 시간, 장소를 기억할 시간.

오델의 이 연설은 주목을 받으며 2019년 책 출간으로 이어졌고,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추천하는 등 호평을 받았다. 오델의 책은 이 시대에 지배적인 소셜미디어 중심의 ‘관심경제’가 개인의 시간은 물론이고 공적이고 중요한 주제에 대한 집중력, 시간과 공간이라는 맥락, 생각하는 능력까지 빼앗아간다고 비판한다.

우리에겐 자연과 지역이라는 현실 세계와 다시 접속하기를 강력하게 권한다. “우리는 오로지 분명히 실재하는 땅이나 하늘과 주기적으로 접촉함으로써 우리를 차지한 다차원의 세계에서 현재 위치를 파악하고 방향을 찾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어디선가 들어본 얘기처럼 들린다. 그런데 이를 위한 전략이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라니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오델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의 절반은 관심경제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실제 세계의 시공간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며 “‘아무것도 하지 않음’의 궁극적 목표는 우리의 초점을 관심경제에서 거두어 공적이고 물리적인 영역에 옮겨 심는 것”이라고 요약한다.


저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라는 주제를 깊게 파고든다. 그것은 아침에 유의미한 싸움을 하기 위해 밤에 힘을 충전하는 행위이며 뭔가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내기 이전 단계이자 성찰과 치유, 사색의 시간이기도 하다. “우리가 무분별하게 복종하는 매커니즘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거리와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포기가 아님을 강조한다. 물러섬이다. “모든 것을 거부하는 것은 실수다.” 더구나 “지금의 세상은 우리의 참여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우리는 사색하는 것과 참여하는 것,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한 발짝 떨어지기’다.

“한 발짝 떨어지는 것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은 채 외부자의 관점을 갖는 것, 그러지 않았다면 아마도 떠나갔을 곳을 흔들림 없이 지향하는 것이다.” 또 “미디어의 사이클과 서사가 허락하지 않는 중요한 휴식을 자신에게 제공함으로써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시에 다른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한 발짝 떨어지는 순간 영원히 떠나고 싶다는 욕망이 파고들기도 한다. 그러나 어떻게든 실망하거나 타격받지 않고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포기하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필요한 것이다.

어떤 페이지는 엄청나게 예리하고 어떤 페이지는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보인다. 자신의 경험담과 소셜미디어 비판이 주를 이루지만 예술과 사상, 역사를 오간다. 무질서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문장이 열정적이고 우아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오델은 개념미술을 하듯 책을 썼다. 특히 생태주의와 지역주의(로컬리즘)를 끌어들여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 강렬한 창조적 에너지를 부여한다. 국내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여러 작가의 중요한 목소리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통해 확보되는 고독이나 공백은 깊이 있게 듣기, 주변을 오래 바라보기로 이어질 수 있다. 오델은 소셜미디어를 피해 나간 공원에서 새들의 소리를 듣고 동네의 강을 바라보면서 발견한 생각들을 길게 묘사한다. 그는 강을 보며 “깊은 기묘함이 평범한 일상의 한가운데를 굽이굽이 흐르고 있다”고 썼다.

주변의 소리를 듣고 바라보는 것은 소셜미디어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다시 배워야 할 능력이다. “우리가 서로 의사소통하기 위해 사용하는 플랫폼들은 듣기를 장려하지 않는다. 그 대신 고함과 지나치게 단순한 반응, 제목 한 줄을 읽고 판단하는 행위를 장려한다.”

오델은 자신이 위치한 장소에 대한 실감을 특히 소중하게 여긴다. 장소감은 시간감과 함께 물리적 현실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에선 정보의 시간적·공간적 현실이 사라져 버린다. 피드되는 정보가 앙상해 보이거나 허술해 보이는 건 그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것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맥락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면 소모적인 논쟁을 피할 수 있다. 장소에 대한 감각, 현실에 대한 감각은 그 정보가 인접한 시공간에 대해, 현실에 대해, 즉 맥락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자연과 지역은 우리가 새로 관심을 줘야 할 대상이다. 관심경제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관심이다. 이를 통해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에 대한 자각이자 주위의 문화와 생태계가 파괴되는 현재의 패턴에 대한 자각, 그리고 스스로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그 안에서 내가 맡은 불가피한 역할에 대한 자각”에 이르게 된다.

책은 결국 진짜 현실과 진짜 삶을 찾아가는 방법에 대한 긴 얘기인지 모른다. 오델은 “디지털의 방해가 골칫거리인 이유는 사람을 덜 생산적으로 만들기 때문이 아니라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서 멀어지게 만들기 때문”이라며 “나는 인간이 되는 데 전념하고자 했다”고 썼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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