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구애 한창인 李·尹..김대중 도서관서 묘한 신경전

손국희 2021. 12. 9.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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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9일 서울 마포구 연세대 김대중 도서관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21주년 기념행사에 나란히 참석해 묘한 신경전을 벌였다. 최근 호남 구애에 적극적인 두 후보가 호남의 정치적 상징인 김 전 대통령 기념 행사장에서 마주치자 정치권의 이목이 쏠렸다.

[서울=뉴시스] 국회사진기자단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9일 서울 마포구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21주년 기념식 및 학술회의'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2021.12.09. photo@newsis.com


이날 두 후보는 행사 시작 전 마스크를 쓴 채 웃으며 짧은 대화를 나눴다. 윤 후보는 “덕담을 나눴다”고 했다. 행사에는 동교동계의 좌장인 권노갑 김대중기념사업회 이사장과 김 전 대통령의 아들인 홍업, 홍걸씨,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 등이 참석했다.

연단에 선 두 후보는 “평생 탄압받으면서도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안정을 위해 바친 일생”(이 후보), “불의의 세력과 타협하지 않는 행동하는 양심”(윤 후보)이라고 김 전 대통령을 한목소리로 치켜세웠지만, 말 속에는 상대를 향한 견제가 담겨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9일 서울 마포구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21주년 기념식 및 학술회의'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 후보는 축사 도중 “종전 선언을 두고 논란이 많다. 여기 윤 후보도 와 계시는데”라며 대뜸 윤 후보를 언급했다. 그는 “(윤 후보가) 종전 선언에 대해 국민적 합의가 없어 시기상조라는 말을 하셨는데, 국민 67%가 종전 선언을 원한다는 객관적 사실이 확인됐다”며 “(윤 후보가) 전향적인 재검토를 할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이 담보돼야 종전 선언 논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인 윤 후보를 직접 겨냥한 것이다. 이 후보가 언급한 여론조사는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민주평통이 지난달 26일 발표한 ‘국민 평화·통일 여론조사’다.

이 후보는 홍준표 의원 등 국민의힘 일각에서 제기한 전술핵 재배치 주장에 대해서는 “무책임한 정치적 주장으로 북핵을 용인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대북 정책에 대해 대해서는 “우리는 북한을 제재해 핵을 포기하게 할 것인지, 교류와 협력을 통해 스스로 포기하게 할 것인지 선택하려고 하는데 상황이 복잡해 어느 한 가지만으로는 안 된다”며 “채찍과 당근을 적당히 배합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9일 서울 마포구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21주년 기념식 및 학술회의'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 후보는 김 전 대통령의 화합 정신과, 외교 성과를 강조하고 나섰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은 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감옥 생활을 하고도 정치 보복을 하지 않고 정적을 용서하고 화해하는 성인 정치로 국민 통합을 이뤘다”며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하고 한·미·일 공조를 강화했다”고 높게 평가했다. 특히 “한·일 관계에 있어 ‘과거를 잊지 말되 미래로 나아가자’는 역사의식으로 일본과의 불행했던 과거를 넘어 화해의 외교 정책을 폈다”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야당에서는 “반일 정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이 후보를 겨냥한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윤 후보는 또 사회 안전망 구축과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정보화 정책 추진 등을 김 전 대통령의 업적으로 꼽으면서 “이런 제반 정책이 있었기 때문에 국가 부도 사태에 직면한 IMF 외환 위기를 3년 반 만에 조기 극복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전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업적을 되새기면서 공정과 상식의 기반 위에 기회와 희망의 나라를 만들 것을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연설 중 이 후보를 직접 거론하진 않았다.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21주년 기념식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대화를 하고 있다. 2021.12.9 국회사진기자단


두 후보는 최근 호남 표심 잡기에 여념이 없다. 이 후보는 지난달 25~29일 광주·전남, 3~5일 전북을 방문하는 등 2주 동안 주말내내 호남에 살다시피 했다. 윤 후보를 겨냥해서는 “광주 학살 주범 전두환을 찬양하는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윤 후보 역시 '서진(西進) 정책'을 적극적으로 펴고 있다. 그는 8일 재경 광주·전남 향우회 인사들과 만나 “‘호남 홀대론’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최근 호남 출신 박주선 전 국회의장과 이용호 의원을 잇따라 영입했다.

두 후보가 호남 공략을 열심히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역대 대선에서 대체로 민주당 후보에게 몰표를 줬던 호남 민심이 최근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의 호남 지지율이 윤 후보보다 강세지만, 과거 대선에 비하면 압도적이진 않은 결과가 나오고 있다. 이날 발표된 전국지표조사(NBS) 결과에 따르면 이 후보의 호남 지지율은 63%, 윤 후보는 11%였다. 8일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이 후보 60.6%, 윤 후보 10.4%였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조진만 덕성여대 교수는 “호남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려는 이 후보와 호남에서 선방하려는 윤 후보의 정치 지형이 이른바 ‘김대중 정신’을 앞다퉈 호평하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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