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성장은 자본주의 숙명이다

2021. 12. 9.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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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홍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전 노동부 장관)


자본주의는 두 발 자전거다.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야지 멈출 수는 없다. 멈추면 넘어진다. 자본의 축적이 멈추면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은 중단된다. 성장은 자본주의의 숙명이다.

어디까지, 언제까지 성장할 것인가? 아주 장기적으로 보면 결과는 매우 비관적이다. 하기야 인류도, 지구도, 심지어 태양계마저도 언젠가는 멸망할 것이 자명한데 자본주의 시스템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전까지는 좋든 싫든 어쩔 수 없다. 성장을 거부할 수는 없다.

독일 녹색당은 제로성장론을 주창한 바 있다. 독일 국민이 물질 부족 때문에 불행한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더 많은 물질을 생산하고자 할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잘 나눠 가지기만 해도 모두가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 자체로는 옳은 말이다. 문제는 자본주의가 제로성장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설사 가능하더라도 나 혼자 성장을 멈추면 주변국들이 그냥 두지 않는다. 국제적 경쟁에서 밀리면서 결국은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지속가능 성장론이다. 요즘 말로 하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성장이랄까.

성장은 자본과 노동의 양적 증대와 질적 고양에 의해 이뤄지는 생산 능력의 증대다. 양적 증대에 의한 성장을 외연적 성장이라고 하고, 질적 고양에 의한 성장을 내포적 성장이라고 한다. 혁신성장이란 곧 내포적 성장을 의미한다. 자본의 질적 고양은 양적 증대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따라서 혁신성장을 위해서는 노동, 즉 인적자본의 질적 고양이 대단히 중요하다. 201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로머 교수의 내생적 성장이론은 바로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지식은 나눌수록 더 커지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인적자본이 충분히 축적돼 있어야 사회 전체의 지식이 커지면서 새로운 지식이 창출된다. 이것이 기술진보다. 노동의 질적 고양이 자본의 질적 고양을 견인하는 메커니즘이 내생적 혁신성장의 요체다.

이렇게 보면 포용성장론의 본질도 혁신성장론이다. 아니 혁신성장론이어야 한다. 흔히들 성장의 과실이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나눠지는 성장을 포용성장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것은 분배론이지 성장론이 아니다. 모든 국민이 인적자본이 돼 다양한 지식을 흡수·공유함으로써 성장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면 사회 전체의 지식은 더 커질 것이고 새로운 지식이 부단히 창출될 것이다. 지속적인 기술진보를 통한 혁신성장을 위해서는 모든 국민을 성장 과정에 빠짐없이 포용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것이 포용성장론이다. 국민을 위한 성장이 아니라 국민에 의한 성장이다. 모든 국민이 성장 과정에 참여했으니 성장의 과실이 모든 국민에게 나눠질 것은 자명하다. 국민에 의한 성장이 결과적으로 국민을 위한 성장이 되도록 하자는 것이 포용성장론이다.

포용성장의 출발은 포용교육이다. 국민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교육이 없다면 포용성장은 불가능하다. 개인의 적성에 맞는 창의적 교육을 통해 모든 국민을 인적자본으로 다듬어야 한다. 이 인적자본의 적재적소 배치가 포용노동이다. 이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체제는 없다. 그늘과 사각지대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포용복지도 필요하다. 이런 포용국가를 실현시키기 위한 집단의사의 결정 과정이 포용정치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제대로 된 성장 담론이 없다. 이런 숙명적인 과제에 대한 성찰이 없다는 게 참으로 답답하다. 경제계는 여전히 자유방임주의에 대한 향수로 가득하다. 규제가 만악의 근원이며 규제만 없으면 성장은 자동으로 이뤄진다고 주장한다. 노동계는 단기적 집단이익 관철을 위한 투쟁에 매몰돼 있고, 교육개혁은 입시제도 개혁과 동의어처럼 인식되고 있다.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 같은 복지 문제를 둘러싼 논쟁도 별로 생산적이지 못하다. 담론을 주도해야 할 정치는 실종된 지 오래다.

성장이 자본주의의 숙명이라고 해서 어떤 성장이라도 숙명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오히려 숙명이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포용성장이어야 한다. 분배와 성장의 해묵은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도 포용성장이다. 현실을 무시한 이상적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가야 할 길이라면 가야 한다. 더디더라도 최소한 방향은 그렇게 잡아야 한다.

권기홍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전 노동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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