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눈물바다 굴 양식장
“지난여름 수온 34도… 굴 성장에 영향 준 듯”
“굴 양식을 25년째 하는데 한창 제철인 요즘 이렇게 굴이 떼로 죽는 건 처음 봅니다.”
지난 7일 경남 통영시 용남면의 한 양식장. 이곳을 운영하는 이재상(48)씨는 굴이 주렁주렁 달린 7m짜리 긴 줄을 바닷속에서 끌어올리며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이곳에선 굴 포자(胞子)를 긴 줄에 매달아 바닷속으로 늘어뜨려 굴을 키우는 방식(수하식)으로 양식한다. 그런데 이씨가 끌어올린 줄에는 알맹이 없이 굴 껍데기만 남았거나 아예 껍데기째 떨어져 나간 곳이 많았다. 역한 냄새도 났다. 이씨는 “여기만 이런 게 아니라 다른 남해안 굴 양식장에 연락해보니 심한 곳은 양식하는 굴의 70~80%가, 그나마 나은 곳은 30~40%가 폐사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전국 굴 생산의 90% 가까이를 차지하는 경남 남해안 굴 양식장에서 최근 집단 폐사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예년의 경우 10월부터 이듬해 1월은 굴이 제철이라 남해안 일대는 활기가 넘쳤는데 그런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경남도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굴이 폐사했다”는 신고가 400건 넘게 들어오는 등 최근 피해를 입었다는 사례가 잇따라 접수되고 있다. 통영이 233건으로 가장 많고 고성이 90건, 거제 80건 등이다. 피해 추정액은 77억원 상당에 이른다. 경남도는 남해안 전체 굴 양식장 중 최소 8분의 1 이상이 크고 작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한다.
국립수산과학원이 최근 조사에 착수했지만 아직 명확한 원인을 밝히지 못한 상태다. 다만 굴 양식장 관계자들 사이에선 “지난여름 남해안 바다 수온이 34도까지 올라갔는데 이게 굴 성장에 영향을 준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수온이 오르면 바닷속 산소가 부족해져 수산물이 제대로 자라기 어려운데, 그 여파가 굴 수확기에 나타난 것 같다는 뜻이다. 실제 지난여름 경남 일대 해역에서는 고수온 현상이 40일 넘게 이어졌다. 지난해(22일)의 2배 정도였다. 수온 28도 이상이 3일 이상 지속하는 고수온 경보도 3년 만에 처음 발령됐다.
경남 남해안은 국내 대표적인 굴 생산지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작년 기준 전국 굴 생산량 30만84t 중 86%가 경남 남해안에서 나왔다. 생산액 역시 2275억2000만원으로 전국의 86% 수준이다. 경남도는 남해안 굴 양식장 중 최소 8분의 1 이상이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하지만 양식업자들은 피해가 더 크다고 말한다. 남해안 굴 양식장 사업자들이 모인 수하식굴수산협동조합 지홍태 조합장은 “우리 수협에서 실태 조사를 한 결과로는 남해안 전체 양식장 중 4분의 1이 피해를 본 것으로 조사됐다”며 “굴 양식 50년 만에 겨울 집단 폐사는 처음 본다”고 했다. 다른 양식업자도 “여름철 폭염으로 굴이 죽는 걸 봤어도 수확철인 겨울에 대량 폐사 현상이 나타나는 건 매우 드문 일”이라고 했다.
국립수산과학원 관계자는 “상황이 심각하다고 보고 원인 분석 속도를 높이려 인력을 총동원한 상태”라고 했다. 하지만 아직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어 폐사 피해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굴 양식장업자들은 “갑작스러운 집단 폐사가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했다.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굴 까는 작업 등을 하는 외국인 근로자를 구하기 어려워 인건비가 높아지면서 비용 부담이 커졌는데 생산 차질까지 생겼다는 것이다. 수협 측은 지난 10월 이후 최근까지 남해안 일대 양식장의 굴 생산량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15% 안팎 줄었다고 말한다.
다만 생산량 감소가 아직 굴값을 높이진 않고 있다. 도매 가격 기준으로 현재 10kg당 12만원 선인데, 작년 같은 시기보다 다소 저렴한 편이라 한다. 통영에서 만난 한 굴 양식업자는 “요즘은 굴을 넣어 김장을 직접 하는 문화가 점차 사라지는 등 소비량이 준 탓이 크다”고 했다. 공급이 줄었지만 소비도 줄어 당장 굴 가격에 큰 영향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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