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대학이 수능을 본다면
내일(10일)은 ‘성적 통지일’이다. 지난달 수능에 응시했던 45만 명이 공식 성적표를 받는다. 대부분 내일 확인할 숫자 몇 개(등급·표준점수·백분위)에 따라 수시 최저학력기준의 충족 여부, 정시에 지원 가능한 대학·학과가 판가름난다. 특히 문·이과가 통합된 올해 수능은 가채점만으로 자기 위치를 파악하기 어렵다. 피 말리는 초조함 속에 성적표를 기다릴 수험생과 부모들을 떠올리니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문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살인적인 학업, 천문학적인 사교육비 부담에도 어떻게든 진학하려 애쓰는 한국 대학들, 이들은 도대체 몇 점짜리일까. 입장을 바꿔 학생·부모가 평가하고 채점할 때 대학은 국민의 눈높이를 넘는 점수·등급을 받을 수 있을까. 마침 수능을 치른 지난달 18일 한국경제연구원에서 각국 청년(25~34세)의 고등교육 이수율과 고용 지표를 비교한 자료를 냈다. 일단 한국 청년의 고등교육 이수율(69.8%)은 OECD 37개국 중 가장 높았다. 그런데 대졸 청년의 고용률(75.2%)은 최하위권(31위)에 머물렀다. 대학 졸업장을 받은 비율은 가장 높은데 취업은 신통치 않다는 얘기다. 대학교육 ‘가성비’가 이리 낮으니 졸업생·부모에게 좋은 등급을 받을 리 없겠다.
1교시 ‘취업 영역’을 망쳤으니 2·3교시(연구력, 교육 질)라도 잘 쳐야 할 텐데, 역시나 ‘수시 최저’를 충족할지 의문이다. 올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세계경쟁력센터는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64개국 중 23위로 평가했다. 그런데 대학교육 경쟁력은 47위에 그쳤다. ‘학교 평균’(국내대학 전체)은 낮더라도 ‘상위권’은 괜찮지 않겠냐고? 글쎄, 영국 대학평가기관 THE의 올해 세계 대학 랭킹을 보니 50위 안에 든 한국 대학은 한 곳도 없다. 100위 안엔 두 대학(서울대 54위, KAIST 99위)이 이름을 올렸는데, 따지고 보면 10년 전보다 각각 10계단, 43계단 하락했다. ‘세계 8위 무역강국’ ‘10대 경제대국’이란 국가적 자부심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뜨거운 교육열과 달리 한국 대학은 이렇듯 낙제점을 면치 못하는 위기 상황에 빠져있다. 차갑게 식은 대학을 되살리려면 전면적인 개혁을 구상하고 과감하게 실행할 리더십이 필수다. 하지만 내년 대선을 앞두고 하나둘 나오는 각 당 후보의 공약엔 ‘공정’(대입 개편), ‘복지’(학비 경감)만 보일 뿐 대학 개혁에 대한 관심, 의지는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대학가엔 벌써 “이번 대선에도 대학이 없다”는 걱정이 나온다. 후보들은 매번 ‘교육대통령’을 자임해왔다. 이제라도 대학 개혁 방향과 전략을 고민하고 제시해야 한다.
천인성 EYE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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