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프리즘] 나는 '지잡대' 출신입니다

위성욱 2021. 12. 9.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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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욱 부산총국장

개인이든 집단이든 기존 권위나 위상에 균열이 가거나 붕괴 조짐이 보이면 이를 희화화하거나 비하하는 말들이 생겨난다. ‘견찰’(경찰), 기레기(기자), 검새(검사) 및 판새(판사)에 이어 최근에 꽁수처(공수처)까지 대상도 다양하다. 이런 말들이 공감을 받지 못하면 차츰 사어(死語)가 되지만 다수의 호응을 받으며 오랜 기간 사용되면 기존 말을 대신하는 대명사처럼 쓰이기도 한다. 2000년대 초반 ‘지잡대’(지방에 잡스러운 대학)라는 말이 처음 회자했을 때도 비슷하다.

이 말은 처음에는 지방의 일부 문제 있는 대학을 지칭했다. 하지만 이후 수도권 이외 지방대학으로, 최근에는 서울 외 전체 대학으로 의미가 퍼졌다. 한때는 지방 명문대로 불리며 서울지역 대학 못지않은 대접을 받았던 지방대가 몰락하고 있다는 인식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런 가운데 25년 뒤에는 국내 대학의 절반 이상, 특히 지방대가 괴멸 수준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이동규 동아대 기업재난관리학과 교수는 최근 보건사회연구원이 공개한 ‘인구변동과 미래전망: 지방대학 분야’ 보고서에서 이같이 전망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42~2046년 국내 대학 수는 190개로 예상된다. 올해 기준 국내 대학 수가 386곳인 것을 고려하면 25년 후에는 절반도 안 되는 숫자(49.4%)만 살아남는 셈이다.

지난달 전국 대학 노조원들이 부산시청 앞에서 지방대 붕괴 대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지방대는 괴멸 수준이다. 17개 시·도 중 대학 생존율이 70% 이상인 곳은 서울(81.5%)·세종(75.0%)·인천(70%)뿐이다. 대전(41.2%)·경북(37.1%)·부산(30.4%)·전북(30.0%)은 50% 아래다. 경남(21.7%)·울산(20.0%)·전남(19.0%)은 5곳 중 1곳 정도만 살아남는다.

수도권 집중화가 가속하면서 2022~ 2046년에는 수도권에서 전체 출생아의 50~55%가 태어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지방 학령인구가 줄어 지방 대학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교수 설명이다.

또 지방대 학생 수 감소는 등록금 감소→비정규직 교직원 증가→낮은 교육의 질→학생 경쟁력 감소→수도권 대학 진학수요 증가 같은 악순환을 낳을 것으로 봤다.

지방대 붕괴는 지역의 소멸에 그치지 않고 결국에는 국가 경쟁력을 약화해 국가 전체의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지방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경고 신호가 나온 지 20여 년이라는 세월 동안 교육부를 비롯해 정부가 내놓은 대안은 사실상 거의 없다.

수도권으로 인구와 자원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현 사회구조를 하루빨리 분산시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참 시간이 지난 뒤 다른 나라에서 서울까지 포함해 한반도 지역 대학을 모두 ‘지잡대’라 부르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위성욱 부산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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