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때린 옷걸이 숨겼지만..엇갈린 진술은 '학대 부모' 가리켰다

이수정 입력 2021. 12. 8. 18:48 수정 2022. 2. 17.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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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상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입건된 계부 A씨(27, 사진 왼쪽)와 친모 B씨(28)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지난 3월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뉴스1]

8살 딸을 수시로 굶기고 대소변을 못 가린다는 이유로 때린 뒤 찬물로 씻기고 방치해 숨지게 한 20대 부부가 항소심에서도 징역 30년형을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6-2부(부장 정총령·조은래·김용하)는 8일 살인, 상습아동학대 혐의 등으로 재판받은 20대 부부 A씨(27)와 B씨(28)씨의 항소심에서 이들의 항소를 기각하고 각각 징역 30년을 선고한 1심의 형을 유지했다.


딸 때린 옷걸이 숨겼지만…가족 간에도 엇갈린 진술


피해자 C양(8)이 숨진 지난 3월 2일은 아직 추운 겨울이었다. 그날 낮 12시 반쯤 C양의 친모 B씨는 거실에 소변을 본 C양의 옷을 벗기고 옷걸이로 수차례 때렸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찬물로 약 30분간 샤워를 시킨 뒤 물기를 닦아주지 않고 화장실에 내버려 뒀다.

오후 2시쯤 집에 들어온 계부 A씨도 C양을 방치했다. 시간이 흘러도 C양이 여전히 움직이지 않자 이상함을 느끼고 C양을 방으로 옮겼다. C양은 겨우 숨만 쉬는 상태였지만 학대 사실이 밝혀질까 우려한 A씨 부부는 119 신고를 미뤘다. 이들 부부는 결국 C양을 학대한 지 9시간이 다 되어서야 119에 신고했다. C양을 때린 옷걸이를 버리고 부부는 말을 맞췄으며 함께 있던 다른 가족의 입막음을 해둔 뒤였다.

수사 초기 엄마 B씨는 찬물이 아닌 따뜻한 물로 C양을 씻겼고, 물기도 닦아줬으며 옷걸이로 딸을 때린 적도 없다고 진술했다. 계부는 자신이 집에 왔을 때 이미 C양이 숨진 상태였거나 즉시 119에 신고를 했더라도 살 수 없는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행위와 C양의 사망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법원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부의 주장은 사건 당일의 객관적인 사실관계 및 그간의 기록들과 배치됐다. 부부의 휴대전화에서는 C양의 사진이 다수 나왔는데 사진에 담긴 피해 사실은 C양의 부검결과에서 알 수 있는 상처나 치아 소실 내용 등과 일치했다.

특히 부부간 진술도 일치하지 않았고, 부부의 진술은 부부와 함께 있던 다른 가족과의 진술도 맞지 않았다. 계부는 자신이 도착한 낮에 이미 C양이 숨진 상태라고 주장했지만, 친모는 남편이 돌아왔을 때 C양은 눈을 뜨고 숨을 쉬고 있었다고 했다. 법원은 “계부의 주장과 당시 상황이 어긋나고 사건 당일 이전에도 학대‧유기‧방임에 놓인 C양을 어떤 조치 없이 친모에게 그대로 맡긴 것으로 볼 때 그 이전의 학대‧유기‧방임 행위만으로도 C양 사망과의 인과관계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며 부부 모두의 죄를 인정했다.


119 신고 미루고 아이 굶긴 ‘방임’ 살인 인정


C양은 단순히 찬물로 샤워시킨 뒤 욕실에 쓰러진 채 방치돼 숨진 게 아니었다. C양을 부검한 의사들은 극심한 영양 불균형이 주 사망원인이고 찬물 샤워와 방치는 사망을 가속한 행위라고 입을 모았다.

법원은 “만 8세에 불과한 피해자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극심한 체벌과 가혹 행위를 당했다”고 이들의 행동을 꼬집었다. 식사도 제대로 받지 못했던 C양은 사망 당시에는 또래 아이들의 몸무게 평균치인 26kg의 절반에 불과한 13kg밖에 나가지 않았다.

항소심은 이들 부부가 C양에 대한 유기와 방임을 일삼아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라고 보고 살인의 고의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부부는 3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상습적인 학대ㆍ유기ㆍ방임으로 C양을 심각한 영양 불균형상태에 이르게 했다. 친모는 사건 당일 쓰러진 딸을 화장실에 방치했으며 계부는 이를 보고도 구호 조치 없이 그대로 둬 상태를 악화시켰다. 부부 둘 중 누구도 119 신고를 하지 않았고 결국 C양은 사망했다. 법원은 “B씨가 쓰러진 C양을 즉시 방으로 옮겼거나 A씨가 집에 와 C양의 상태를 119에 신고하는 간단한 조치만 했더라도 C양이 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원은 부부의 살인죄를 인정해 징역 30년의 형을 선고한 1심은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형이라고 보고 항소를 기각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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