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비용 싼 데만 쫓아다닐 수 없어..미·중 모두 우리 이웃"
“지정학적 리스크보다 더 큰 리스크는 기후변화다. 지정학적 문제는 사람이 만든 것이니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인데,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변수다.”
최태원 SK 회장은 7일(현지시간) 최종현학술원이 미국 워싱턴DC 인근 버지니아주 샐러맨더리조트에서 개최한 ‘제1회 트랜스 퍼시픽 다이얼로그’ 포럼에서 특파원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지난 2019년 “회장을 맡은 지 20년 동안 이런 지정학적 위기는 처음”이라며 국내외 경영환경 변화에 주목했던 최 회장이 이번에는 기후변화 리스크라는 화두를 들고 미국을 찾았다.
최 회장은 6일부터 2박 3일간 열린 국제 포럼에 최종현학술원 이사장 자격으로 참석했다.
그는 “온도를 낮춰야 하는 건 아는데 누가 얼마만큼 희생할 것이냐를 놓고 (합의가) 안 이뤄지면 기온이 올라가고, 올라간 기온은 다시 지금같이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다른 리스크를 불러온다”고 설명했다. 탄소 시대에서 탄소중립(순배출량 제로)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해법을 쉽게 못 찾으면 상당한 리스크가 있다는 의미다.
그는 “기후변화, 코로나바이러스 이런 문제는 여태껏 우리가 계산에 넣고 움직인 것들이 아니다”라면서 기후변화는 지정학적 위험이나 비용 증가보다 훨씬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미·중 갈등은 서로 얘기하고 타협하고 해결책을 내면 될 문제지만, 기후변화는 에너지 시스템을 전부 다 바꿔야 하는 문제여서 오히려 더 큰 숙제라는 것이다. 게임의 룰을 바꾸는 기후변화가 더 힘든 과제일 수 있다.
최 회장은 지정학적 리스크와 관련해 국가 간 갈등이 생기면 반도체 산업에도 영향을 주지만, 반드시 힘든 것만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숙제도 있지만, 그 속에는 기회가 동시에 온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탄소 저감 노력을 하다 보면 새로운 기술이나 방법 노하우를 만들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중국 장쑤성 우시(無錫) SK하이닉스 공장에 반도체 초미세공정 핵심인 극자외선(EUV) 장비를 배치하려는 계획에 미국 정부가 반대한다는 보도와 관련해 최 회장은 “현상이 나타나면 대응책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며 “아마 비용이 더 들어가는 문제가 생길지 모르지만, 중국 공장은 거기대로 계속 돌아가고 용인에 얼마든지 큰 투자 하면 된다”고 답했다. 그는 미국도, 중국도 "이웃"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옛날처럼 비용이 싼 곳만 쫓아다닐 수는 없다”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새로운 비용도 생긴다”고 설명했다. 과거 싼 인건비 등을 고려해 중국이 정답이라고 생각해 투자했지만, 다른 리스크가 생기면서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단 얘기다. 최 회장은 “과거엔 하이닉스가 중국에 공장 지으면 비용이 줄어든다고 했지만, 지금은 또 다른 문제가 생기면 비용 산출 계산법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반도체 파운드리를 만들어 삼성전자, TSMC와 경쟁할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자체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이 임상 3상을 마치고 판매 허가가 난다면 “가능한 많은 나라에 불평등 없도록 하는 방안으로 공급할 수는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트랜스 퍼시픽 다이얼로그’에는 한국과 미국, 일본의 전·현직 관료와 정치ㆍ외교 학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 존 아이켄베리 프린스턴대 교수,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 스테이플턴로이 전 주중대사 등 한자리에서 만나기 어려운 세계적 석학이 모여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
최 회장은 “이런 포럼이 바로 해법으로 연결되지는 않겠지만, 서로 무엇이 다른지 최소한 이해하기 시작하면 갈등이 줄어들지 않을까”라고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기업 전략으로 직결되진 않지만, 새로운 해법을 만들어 전파하는 얘기를 하다 보면 기업에도, 한국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포럼에 참석한 커트 캠벨 백악관 조정관이 이렇게 한꺼번에 모인 전문가들 얘기를 듣고 바이든 정부의 메시지도 전달할 수 있어 도움이 됐다고 인사했다고 전했다.
최 회장은 “갈등이 줄어들게 하는 작용 자체가 어찌 보면 기업이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것과 똑같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런 가치를 만들어 이웃 국가와 동맹에 같이 행동해야 한국도 훨씬 좋아질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연 국제포럼은 처음이지만, SK는 일찌감치 베이징포럼, 상하이포럼, 도쿄포럼 등을 열어 아시아권에서도 리더들과 의견을 교류해왔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park.hy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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