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포기, 아기 포기해야 입원 가능..코로나전담병원에서 벌어지는 기막힌 일들

이보라 2021. 12. 8.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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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의료의 민낯] 중환자실 포화 상태.. 위드코로나 국가 중 왜 한국만 사망률이 높나

[이보라 기자]

 코로나19 위중증 환자 수가 774명으로 최다치를 기록한 7일 코로나19 거점전담병원인 평택 박애병원 상황실에서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장면 #1

- 병상배정팀 : 정OO 60세 남성, 현재 OO생활치료센터에 입소중인 분으로 어제밤 9시경부터 좌측 안구의 극심한 통증, 두통, 시력저하 발생하면서 혈압이 220까지 올라가는 상태여서 입원요청드립니다.
- 코로나진료병원 : 갑작스러운 시력저하 있어 안과진료도 필요해 보이나 현재 격리병동에서는 안과진료 불가능합니다.
- 병상배정팀 :  네, 환자분께 안과진료는 불가능한 상황임을 설명드렸고 환자분이 통증과 혈압만이라도 조절해 달라고 하십니다.  

환자가 '눈을 포기'한다고 하여 경증 환자용 병동에서 받을 수 있었다. 친한 안과 전문의에게 급히 전화로 환자상태를 설명하니 급성폐쇄각녹내장이 의심된다며 만약 지금과 같은 상태가 2-3일 지속된다면 완전히 실명을 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 환자는 '눈을 포기'하겠다고 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골든타임을 놓쳐 시력을 잃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지 않나? 안과 전문의가 알려준 안약을 각각 2시간마다 넣으면서 안압을 낮추고 혈압도 조절하였다. 환자는 다음날 안구통증은 사라지고 시력이 희미하게 돌아왔으나 격리해제가 되기 전까지 안과적 정밀검사나 처치는 해드릴 수가 없었다.

장면 #2

- 병상배정팀 : 김OO 29세 여성, 해열제로 조절되지 않는 39도 이상의 발열이 지속되어 입원요청드립니다. 특별한 과거력 없으나 격리직전 임신테스트기가 양성 나와 임신 7-8주 추정됩니다.
- 코로나진료병원 : 격리병동에서 산부인과 진료는 불가능합니다.
- 병상배정팀 : 네, 산부인과 진료 불가능함에 동의하였습니다.

임신테스트기로만 임신을 확인한 여성이었다. 당장 산부인과에 가서 아기 상태를 확인하고 싶겠지만 코로나 확진자이기 때문에 '산부인과 진료를 포기'하고 격리병동에 입원하였다. 분만이 임박한 확진자, 조산기가 있는 확진자들이 끊임없이 밀려오는 통에 산부인과에서 임신 초기 환자까지는 돌볼 여력이 없다. 임신 중에는 쓸 수 있는 약도 한정적이다. 정상임신인지도 확인하지 못하고 수액과 해열제 등 안전한 약 몇 가지만으로 가까스로 열을 내리며 버티고 버티다가 격리해제한 후 산부인과 진료를 받아야 했다.

장면 #3
 
 위중증 환자가 엿새 연속 700명대를 기록한 6일 밤 코로나19 거점전담병원인 평택 박애병원에서 의료진이 음압병동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전날 오후 5시 기준으로 수도권의 코로나19 중환자 병상 가동률은 86.6%로 전일보다 더 높아졌다.
ⓒ 연합뉴스
 
- 병상배정팀 : 이OO 52세 남성, 3일전 화장실에서 넘어지면서 우측 손목골절 발생하여 응급실 내원하였다가 코로나 확진되었습니다. 현재 발열, 기침, 몸살 증상 있고 골절된 손목은 임시고정 상태로 통증은 처음보다는 호전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자택 대기 중으로 입원 요청드립니다.
- 코로나진료병원 : 정형외과 수술 불가능하고 남자병실 자리도 없습니다.
- 병상배정팀 : 전달하겠습니다.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지 2년차 말인데 우리나라의 의료대응 수준은 나아진 것이 없다. 주기적으로 코로나 유행의 파고가 점차 더 높아지고 확진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것은 '위드코로나' 이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는 코로나 확진자가 병원치료를 받으려면 눈 포기, 아기 포기, 골절치료를 포기해야 입원이 가능하다. 80세 이상인 노인이라면 심폐소생술 포기(DNR)를 약속해야 경증 환자용 병상이라도 하나 얻어 숨찰 때 산소라도 마셔볼 수 있다.

장면 #4

- 병상배정팀 : 지금 119가 출동해서 산소는 일단 주고 있지만 산소포화도가 88%라고 합니다. 병원 이송이 필요합니다.
- 코로나진료병원 : 현재 본원 중환자실 자리 없습니다.
- 병상배정팀 : 이송 중 PEA발생하였다고 합니다.
(※ PEA : 모니터상 심전도 리듬은 보이지만 맥박은 촉지되지 않는 상태, 심정지에 준한 처치가 필요하다.)

이것은 코로나 폐렴이 진행하면서 남아 있는 정상 폐로 어떻게든 숨을 쉬기 위해 헐떡거리다가 더 이상 호흡근육을 움직일 힘이 없어지면서 가스교환이 되지 않아 혈액 속에 이산화탄소가 차오르고 산소는 부족해지면서 서서히 의식이 흐려지고 심장도 멈추게 되는 인간의 사망과정이 메시지로 생중계되고 있는 것이다. 연일 하루 사망자 수 역대최고, 위중증 환자 700명 이상, 중환자실은 포화라는 암울한 뉴스 뒤에는 이렇게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이 가려져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광범위한 역학조사와 선제적인 PCR검사를 통해 적은 수의 확진자 규모를 유지하면서 모든 확진자를 생활치료센터, 공공병원 등에 격리수용하여 K-방역의 신화를 만들어 왔다. 이것은 성숙한 시민들이 방역지침을 잘 따르고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했기 때문에 가능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업제한, 모임제한 등으로 막대한 손해를 입은 자영업자, 영세중소상인들의 피눈물과 그로 인해 실직한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생 등 사회적 약자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2년간의 골든타임을 놓친 이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위중증 환자 수가 연일 최다치를 기록하는 가운데 1일 서울 은평구 서울시립서북병원에서 119 구급대원 및 의료진이 코로나19 확진 환자를 병원 안으로 안내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감염병 재난 상황에서 이렇게 일부 계층이 희생양이 되면서 시간을 버는 동안, 정부는 숙련된 의료인력과 병상을 더 확보하면서 이것이 공공의료 시스템 강화로 이어질 수 있는 장기적인 계획도 세웠어야 했다. 의료계도 어떻게 하면 모든 병원과 모든 의사가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업무를 분담하고 코로나 환자, 비코로나 환자를 상황에 맞게 안전하게 진료하고 사망률을 낮출 수 있을까를 내부적으로 토론하고 합의안을 만들어 정부에 제안하는 등 전문가그룹에 걸맞는 행동과 의견제시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지난 2년의 골든타임을 놓친 우리는 세계 주요국 중 '위드 코로나를 시작한 후 치명률이 올라간 유일한 국가'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국가가 직접 병원을 운영하고 아픈 국민을 진료할 수 있다는 상상력이 없는 '정부'와 특별수가를 준다고 해야지만 수지타산을 생각해 보고 굼뜨게 움직이는 '민간병원', 그리고 자신은 코로나 관련과 전문의가 아니라며 의사의 본질적인 임무를 망각한 한국의 '의사그룹'이 만들어낸 부끄러운 성적표이다.

이것이 지난 2년 동안 3조원을 의료기관에 퍼부으면서도 장기적인 전망을 세우지 못하고 환자수가 급증하자 다시 속수무책인 한국 의료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관련기사 : 3조 쏟아부었는데... 코로나 병상·의료진 부족한 진짜 이유 http://omn.kr/1w96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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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 국립중앙의료원 코로나진료의사, 내과전문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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