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빨간 떡볶이' 아재 입맛이 겪은 밀키트 실패담

한재동 2021. 12. 8. 14: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더,오래] 한재동의 아빠는 밀키트를 좋아해(3)


오늘의 밀키트 이야기는 실패담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로제 떡볶이인데, 제품이 잘못되거나 조리법대로 만들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냥 로제라는 것이 나와는 맞지 않는 소스였을 뿐이다. 이후에 이어질 이야기를 한 줄로 먼저 정리해 드리면 그냥 로제 떡볶이를 처음 먹어본 아저씨의 당황스러운 경험 정도가 될 것이다.

평소에 떡볶이를 좋아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분식집에서 주문할 때는 떡튀순으로 조화가 이루어진 세트 메뉴를 찾고, 가끔 순대나 튀김 중 하나씩 빼먹고 주문할 때는 있어도 떡볶이를 빼고 순대와 튀김만 시킨 적은 없다. 아무래도 분식을 먹는다고 생각했을 때 빨간 고추장 양념의 떡볶이는 빠질 수 없는 ‘분식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떡볶이에 관한 책도 사서 봤다. 뮤지션 요조가 쓴 『아무튼 떡볶이』라는 에세이인데, 거기에 나온 즉석 떡볶이 집에 찾아가 추천하는 메뉴를 그대로 시켜 먹었다. 라면 사리부터 다양한 토핑, 마지막에 볶음밥까지 먹고 나면 웬만한 백반보다 더 든든하다. 나는 간장양념으로 만들어진 궁중 떡볶이와 춘장을 기반으로 한 짜장 떡볶이 등 다양한 떡볶이를 좋아하는데, 이런 이유에서 요즘 유행한다는 로제 떡볶이 밀키트에도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로제 소스는 본래 크림과 토마토 소스를 합한 재료다. [사진 Wtable]


로제 떡볶이 밀키트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떡볶이 양념 소스가 라면 스프 같은 분말 형태였다는 점이다.(토마토 소스는 액체) 그간 많은 레토르트 떡볶이를 해 먹어 보았는데 떡볶이 소스는 대부분 액체 형태로 들어있었다. 사실 액체 형태로 된 소스는 젓가락으로 열심히 짜내도 어느 정도 잔여물이 포장지에 남게 된다. 조리법을 만드는 사람이 그 정도 남는 것은 계산하고 만들었겠지만, 괜히 소스를 더 잘 짜내지 못해 싱거울까 걱정도 되고, 무엇보다 급한 성격 탓에 액체 소스를 흘리기 일쑤여서 늘 불편했다.

떡은 얇은 밀떡이었다. 인터넷에서 보면 가끔 밀떡파와 쌀떡파의 자존심 대결이 벌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마치 음악평론가들 사이에서 덕질하는 아이돌의 노래를 수줍게 추천하는 팬의 심정이 된다. 떡볶이를 즐겨 먹지만 사실 쌀떡과 밀떡의 차이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보기에는 나는 아마 ‘떡알못’일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떡볶이를 좋아한다.

■ 로제 떡볶이 밀키트 조리법

「 ① 떡을 물에 씻고 어묵을 1cm 넓이로 자른다.
② 팬을 달구고 기름 한 큰술에 마늘을 1분간 볶는다.
③ 팬에 물 300ml와 떡볶이 소스, 토마토 소스, 어묵, 떡, 당면을 넣고 4분간 강한 불로 끓인다.
④ 팬에 크림, 파르메산 치즈, 체더치즈를 넣고 2분 더 끓이면 완성.

준비된 당면을 하나씩 떼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지만, 떡과 당면을 불리지 않아도 돼서 재료 준비는 편한 편이었다. 조리법에는 마늘은 1분간 볶으라고 하는데, 가스나 인덕션별로 다른 것 같다. 1분간 볶았더니 조금 타고 말았는데, 시간으로 보기보다는 그냥 마늘이 살짝 갈색이 될 정도로 볶으면 될 것 같다. 기름양을 한 숟가락 이상 할 경우 나중에 기름이 둥둥 뜰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조리 과정 중 ③번을 하고 나면 우리가 익숙하게 보던 빨간 고추장 떡볶이의 비주얼이 완성된다. 그 상태에서 크림을 넣으면 로제떡볶이가 완성되는 것인데, 사실 그대로 먹어도 좋을 만큼 맛있어 보인다. 하지만 로제 떡볶이에 도전하기로 한 만큼 검증된 매콤함의 유혹을 뿌리치고 크림과 두 종류의 치즈를 넣었다. 붉었던 국물이 순식간에 원색의 강렬함을 잃고 연한 파스텔톤이 되었으며, 매콤한 향 대신 치즈의 고소한 향이 나기 시작했다.

밀키트에는 떡과 당면, 어묵만 들어있다, 달걀, 소세지 등을 곁들이면 좋다. [사진 한재동]


완성된 로제 떡볶이를 처음 먹었을 때는 토마토의 시큼한 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계속 먹다 보니 치즈의 맛이 입에 남았다. 어묵의 경우 매운맛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았고, 당면은 마치 로제 파스타를 연상시켰다. 개인적으로 처음 먹어보는 맛에 신기함보다는 당황스러움이 앞섰다. 나와 달리 로제 떡볶이를 먹어보았던 아내는 사먹던 맛을 잘 구현해냈다는 의견이었다.

그제야 나는 스스로가 아재 입맛이 되었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로제 떡볶이가 요즘 가장 유행하는 떡볶이라고 하지만, 아재 입맛에는 빨간 고추장 떡볶이가 그리운 맛이었다. 결국 난 다 먹지 못하고 로제 떡볶이에 대한 도전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로제 떡볶이는 스스로가 아저씨임을 받아들이게 한 고마운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신입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게 어제 같지만, 이제는 후배들이 로제 소스를 못 먹는 나 같은 아저씨를 빼고 단톡방을 만들었을 것이다. 트렌드를 따라 로제를 맛있게 먹는 척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나는 아저씨로서의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국민을 분열시키는 맛인 민트초코를 먹은 사람들은 민초단과 반민초단이 나뉜다는데, 나는 이제 로제 애호가들에게 맞서는 ‘반로제단’이 될 것이다. 그럴 입맛의 자유 정도는 있지 않을까?

직장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