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금방 나온다".. 여성 폭력 무한루프의 작동원리 [열린 문 - 여성 자영업자 폭력 보고서]
단순 업무방해, 주취폭력이 아니다. 이것은 젠더폭력이다. 여성 자영업자 102명을 만났다. 여성 자영업자 대상 범죄 판결문 287건을 집중 분석했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열린 문'의 공포였다. 가게의 문은 가해자에게도 열려 있어야 한다. 가해자가 마음먹으면 언제고 그 문을 열고 침범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경찰도 법도, 열린 문을 막아설 안전장치가 되지 못했다. <오마이뉴스>는 여성 자영업자를 상대로 한 젠더폭력 실태를 최초로 분석·보도한다. <편집자말>
[독립편집부 기자]
무한루프. 사전을 보면 "끝없이 같은 동작을 되풀이하는 프로그램" 또는 "어떤 루틴이 반복 실행되면서 일정 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를 뜻하는 용어다. 여성 자영업자를 상대로 벌어지는 젠더폭력에는 일종의 '무한루프'가 작동하고 있었다.
동일 가해자가 동일 피해자를 상대로 반복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가 많았다. 업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은 이른바 '귀가조치'를 발동하지만, 가해자는 다시 업장에 나타나 폭력을 행사하곤 했다. 공권력이 개입했음에도 중단되지 않는 폭력을 경험한 업주는 보복을 우려해 '처벌불원' 의사를 표시하고, 다시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가해자에게 낮은 형량을 선고했다. 그리고, 가해자 중에는 사법적 처벌 후에도 다시 나타나 보복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오마이뉴스>가 법원 '판결서 인터넷 열람 시스템'에서 '보복', '앙심', '여주인' 등 다수의 검색어를 조합하여 동일 가해자가 같은 곳에 찾아가 여성 자영업자를 상대로 반복적으로 폭력을 저지른 사건들을 분석한 결과다. 식당 업종만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20년 1월 1일부터 2021년 6월 30일까지 선고된 판결문 84건이 이에 해당했다.
하지만 여성 자영업자 대상 폭력에 대한 공식 통계조차 없는 상황에서 전체 건수는 가늠조차 어렵다. 얼마나 많은 여성 자영업자가 '무한루프'에 갇혀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84건의 판결문에 주목한 것은, 단순히 '업무방해'라는 법률용어로는 다 설명이 되지 않는 공포의 순간들이 빼곡했기 때문이다.
▲ 가해자들은 금방 돌아왔다. 그 남자들은 경찰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 무한루프를 끝낼 수 없었다. |
ⓒ 이강훈 |
2020년 4월, 경남 창원의 한 식당. 가해자는 만취 상태에서 다시 찾아간 자신에게 술을 팔지 않겠다고 했다는 이유로 피해자(56세)의 안면을 가격하고 머리채를 잡아 바닥에 넘어뜨렸다. 피해자가 112에 신고하자 폭행은 더욱 심해졌고, 웅크린 상태였던 피해자 얼굴을 걷어찼다. 2020년 11월 경북 포항에서는 "별다른 이유 없이" 식칼을 들고 피해자를 협박했던 가해자가, 가로 30cm, 세로 20cm 정도의 큰 돌을 들고 "죽여버리겠다"며 식당에 다시 나타나는 일도 있었다.
그 남자들은 '열린 문'으로 언제 들이닥칠지 몰랐다. 청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님(여, 65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식당 인근에 사는 가해자는 걸핏하면 업장에서 행패를 부렸다. 참다못한 피해자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그 남자는 오히려 더 무서워졌다. 2019년 12월 16일, 피해자가 문을 열어주지 않자 남자는 식당 문을 두드리며 "XX년, 너 나 신고했지?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2020년 1월 14일 다시 그 남자가 식당 문과 유리창을 두들기며 "넌 나에게 죽는다"고 협박했다. 다음 날 저녁, 한참 저녁 장사할 시간에 또 그 남자가 나타나자 피해자는 문을 잠가 걸었다. 남자는 말했다.
"너는 찍혔어."
그리고 2020년 2월 13일, 결국 남자가 '열린 문'으로 식당에 들어섰다. 피해자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죽여버린다"고 소리쳤고, 식당에 들어오려던 손님(여, 60세)의 머리채를 잡아 바닥에 넘어뜨리고 걷어찼다. 피해자는 다시 경찰에 신고했지만, 남자는 2월 26일 식당 앞에 또 나타났다. 잠긴 문을 두드리며 "죽여버리겠다"고 했다. 같은 날 3시간여 만에 다시 나타나 "너는 찍혔다"고, "이 동네에서 못 살게 해주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면서 남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나, 금방 나온다."
귀가조치? 경찰이 우습다
그 남자들은 경찰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는 판결문에서 숱하게 마주친 문장으로도 증명된다.
"경찰이 출동하자 현장을 떠났다가..."
"다시 찾아가 112 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귀가조치 되었음에도, 다시 위 식당으로 찾아가..."
"출동한 경찰관에 의해 귀가조치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피해자를 죽이기로 마음먹고 '너가 나 신고했어, 너 죽이고 내가 살면 된다, 다 죽이겠다'라고 말하면서 피해자를 분식집 내 주방으로 밀어 넣은 다음, 바지 주머니에서 미리 소지하고 있던 잭 나이프 칼을 꺼내어 손에 쥐고 피해자의 복부, 가슴 등을 총 7회 찔렀으나... (인천지법 2019고합○○○)
앞서 피해자가 경찰에 그 남자를 신고했던 시간은 2019년 11월 4일 오전 11시 52분경이었다. 피해자가 칼에 찔린 시간은 같은 날 오후 1시 35분경이었다. 이처럼 가해자의 2차 범행이 경찰이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벌어진 경우는 적지 않았다. 판결문 84건 중 해당 사건에 대한 경찰의 출동 사실이 적시된 경우는 38건이었는데, 그 중 2차 범행이 한 시간 내외로 벌어진 경우는 모두 10건(26.3%)이었다. 약 네 건에 한 건이 경찰이 돌아간 후 다시 나타난 가해자에 의해 저질러진 범행이었던 것이다.
▲ 여성 자영업자 폭력보고서. |
ⓒ 권우성 |
심지어 현장에 출동한 경찰을 폭행한 가해자들도 여럿 있었다. 경찰이 출동한 38건 중 8건(21.1%)이 그런 경우들이었다.
2019년 12월 28일, 전라남도 ○○시에서 벌어진 사건이 한 예다. 가해자는 A식당에서 1시간 20분 동안 행패를 부렸다. 피해자 머리를 플라스틱 바구니로 치고, 가게 안에 있던 피해자 손자(3세)를 "이거 너네 아기지?"라며 손으로 밀치는 등 피해자들을 폭행했다. 2020년 1월 2일, 이번에는 B식당이 범행의 표적이 됐다. 식당에서 소란를 부렸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귀가조치에도 불구하고 다시 식당에 돌아왔다. 피해자를 폭행했고 가위를 들고 위협했다. 다시 경찰이 출동했다.
"내가 셋을 다 세면 너희들은 다 뒈져, 비켜, 하나, 둘, 셋." (광주지법 ○○지원 2020고단○○)
그리고 가해자는 주먹으로 경찰 얼굴 부위를 2회, 복부 부위를 1회 때렸다. 특수협박, 공무집행방해, 업무방해 등 5가지 혐의가 적용된 이 사건 재판 결과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이었다.
처벌불원
여성 자영업자 젠더폭력의 1차적 방어막은 경찰이다. 그러나 가해자가 경찰을 두려워하지 않는 상황에서 피해자는 경찰 뒤에 숨을 수 없다. 이와 같은 상황은 결국 '무더기' 처벌불원으로 이어진다. 전체 사건 84건 중 34건(40.5%)에서 피해자의 처벌불원 사실이 확인됐다.
처벌불원에서 이어지는 수순은 가벼운 처벌이다. 84건 중 실형을 받은 경우는 47건이었다. 나머지 37건은 벌금형(16건, 19.0%)에 그치거나 집행유예형(21건, 25.0%)이 선고됐다. 무한루프는 "종료 조건이 없거나 종료 조건과 만날 수 없을 때 생긴다"고 한다. 동일 가해자가 동일 피해자를 상대로 동종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절반에 가까운 사건(37건, 44.1%)들이 '종료 조건'과 만날 수 없었던 셈이다.
"나, 금방 나온다."
그래서, 그 남자의 말은 진실에 가까운 것이었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판사가 뒷짐 지고 앉아서 모든 책임을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처벌불원은 사법부의 비겁함"이라고 규정했다. 허 조사관은 "가해자 처벌 여부를 피해자에게 결정하는 것 자체가 피해자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겠다는 뜻"이라면서 "사법부는 가해자로 하여금 반성하도록 해야 하는데, 도리어 가해자가 처벌불원을 해주지 않는 피해자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도록 일조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감옥에서 온 편지
"너 덕분에 징역 잘 살고 있다. 어떻게 경찰에 진술했기에 이렇게 징역을 살리노. 늙은 XX야. 남의 눈에 눈물 내면 너는 피눈물난다는 거 명심해라. 개만도 못한 인간아... (심한 욕설로 중략)... 내가 징역 사는 동안 스트레스 풀기 위해 간간이 맛있는 욕 섞어서 편지할게. 법으로 남을 울린 너 눈에 피눈물나도록 할 것이다." (부산지법 서부지원 2020고합○○)
사건이 벌어지고 7개월 여 만에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감옥에서 보낸 편지 내용이다. 2019년 2월 22일, 부산의 한 식당에서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돈을 달라고 협박했다. 피해자는 경찰에 신고했고 결국 가해자는 공갈죄로 구속기소됐다. 가해자는 2019년 6월 공무집행방해죄 등이 더해져 징역 10월형을 선고받았다. 가해자는 감옥에서 협박 편지를 세 차례나 보냈다. 같은 해 12월 출소한 가해자는 자신의 글을 실행에 옮겼다. 2020년 1월 6일부터 2월 28일까지 모두 11차례에 걸쳐 식당에 찾아가 행패를 부렸다. 그 중에는 식당 안에 피해자가 주거지로 사용하는 방으로 침입한 경우도 6회나 포함돼 있었다. 무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피해자(75세)는 공포에 떨었다.
이런 식으로 동일 가해자가 동일 피해자에게 사법적 처벌에 대한 보복 범죄를 저지른 경우가 84건 중 15건(17.9%)에 달했다.
추지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가해자 중에는 공권력을 우습게 본다 싶을 정도로 법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고, 법을 안 무서워하니 경찰이 개입해도 가해를 멈추지 않는다"면서 "공권력에 대한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경찰 출신으로 범죄사회학을 전공한 추 교수는 "경찰 조직 내에서도 피의자에 대한 인권이 너무 강조됨에 따라 경찰력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것에 분노를 많이 느끼고 있다"며 "경찰은 강력한 법집행을 하려고 해도 위에서 인권적 대응을 하라고 한다, 그럼 경찰을 조롱하고 발로 걷어차도 대응을 못한다"고 짚었다. 그는 "무작정 공권력을 강하게 사용하게 권장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사건을 젠더 관점에서 파악하고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정당한 법집행을 보장해줘야 한다"며 "젠더 관점의 적법한 법집행에 대해 필요성을 지지해주는 사회적 인식과 경찰 조직의 대응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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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권우성 / 제작 : 이종호 / 개발 : 황장연
취재 : 이주연·이정환·홍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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