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납품하면서..10년간 2조7700억원치 알루미늄 담합

정진호 2021. 12. 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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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차에 알루미늄 제품을 납품하는 1차 협력사 8곳이 낙찰 가격을 담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입찰 공고를 낸 현대차는 수십차례에 걸쳐 이뤄진 담합에 대해 모르고 발주를 이어갔다. 담합을 통해 이뤄진 입찰의 계약금액만 2조원이 넘는다. 통상 ‘을’로 분류되는 대기업 협력사의 ‘갑질’이다.


검찰 기소되고도…또 담합


광주광역시 광산구 빛그린산단에 위치한 광주 GGM공장 현대차 캐스퍼 생산공장 생산 라인. 장정필 객원기자
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자동차의 알루미늄 합금제품 구매 입찰에서 투찰 가격을 담합한 알테크노메탈 등 8개 업체에 과징금 총 206억7100만원을 부과했다고 8일 밝혔다. 공정위는 이들 납품업체에 시정명령을 내리고, 현대차와는 협의를 통해 입찰제도를 개선하기로 했다. 현대차 고유의 입찰제도가 이후에도 담합 유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알테크노메탈 등 8개 회사는 현대차의 1차 협력사다. 주로 자동차 엔진이나 변속기 케이스, 휠을 제조하는 데 쓰이는 알루미늄 합금을 납품한다. 이들은 2011년부터 올해까지 현대차, 기아, 현대트랜시스의 입찰에 참여하면서 사전에 투찰가격부터 낙찰예정순서까지 맞추고 들어갔다. 총 22차례에 걸쳐 담합이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고, 입찰 계약금을 합치면 2조7700억원에 달한다. 이들은 검찰에 입찰방해죄로 기소된 2017년부터 담합을 중지했다가 2019년 9월 재개했다.


호텔에서 “비싸게 팔자” 결정


알루미늄 합금 입찰에는 현대차의 제품 테스트를 통과한 회사만 참여할 수 있다. 담합이 적발된 8개 사 외에는 입찰 참여조차 불가능한 구조였다는 게 공정위 결론이다. 이들은 입찰 전날 호텔 등에서 모여 최저가로 얼마를 써낼지, 업체끼리 납품 물량을 어떻게 배분할지를 상세하게 협의했다. 이들 외에는 경쟁사가 없다 보니 사실상 호텔에서 입찰 결과가 정해지는 셈이다.
현대차동차 발주 알루미늄 합금제품 입찰 담합에 참여한 사업자별 과징금 부과내역. 공정거래위원회
8개 사는 한 곳도 탈락하지 않고 매 입찰에서 높은 가격으로 납품 물량을 확보했다. 2014, 2015, 2017년의 경우 납품 물량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연간 물량배분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이들이 검찰 조사가 개시되는 등의 이유로 담합을 하지 않고 참여한 입찰과 비교했을 때 낙찰가격이 kg당 200~300원 정도 더 비쌌다.

담합유인 존재…제도까지 개선키로


알루미늄 합금제품의 경우 용해로에 원재료를 녹여 만드는데 공장 가동을 멈추면 용해로가 파손될 우려가 있다. 생산원가에서 원재료가 차지하는 비중도 90%가 넘어 판매처를 꾸준히 확보해야 해 담합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공정위는 이 같은 제품 특성이 담합 유인으로 작용했다고 봤다.
현대차 울산공장 수출선적부두에 대기 중인 완성차들. 연합뉴스
현대차의 입찰제도도 일반적이지 않았다. 품목별로 복수 업체를 낙찰자로 선정하는데 여러 투찰가격 중 최저가를 모든 업체에 공통 적용하고, 투찰가격이 낮은 순으로부터 낙찰비율을 높게 배정한다. 현대차 공장과의 거리에 따라 운송비용이 다르지만, 최저가에 맞춰 납품해야 하다 보니 멀리 있는 납품업체는 손해를 보는 구조다. 영업이익률이 2% 내외라는 점도 2조원대의 입찰 담합 규모에 비해 과징금이 낮게 책정된 이유다.

공정위는 입찰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담합이 또다시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현대차와 입찰제도 개선 방안을 협의했다. 현대차는 납품가격에 포함돼 있던 운반비를 별도로 책정하고, 협력사들이 공장을 계속 가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입찰에 참여한 업체에 최소 15%의 납품 물량을 보장하기로 했다.

세종=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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