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블루 아픔..극단선택 줄었지만, 또다른 죽음 30% 늘었다

이우림 입력 2021. 12. 8. 05:00 수정 2021. 12. 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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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코로나 2년, 각국 및 세계적 자살 추이와 전망, 코로나 해법은?’이라는 주제로 제4회 국회자살예방포럼 국제세미나가 열렸다. [안실련 제공]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에는 자살률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는데 통계를 보면 오히려 자살률이 감소하거나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팬데믹 발생 전후 한국과 미국, 영국, 호주의 자살 추이를 분석한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한 말이다.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코로나로 인한 우울증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지만 자살률 자체는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결과만 놓고 보면 긍정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예단하기에 앞서 보다 구체적인 수치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7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코로나 2년, 각국 및 세계적 자살 추이와 전망, 코로나 해법은?’이라는 주제로 제4회 국회자살예방포럼 국제세미나가 열렸다.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안실련)과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가 주관한 행사다. 연사로는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의학과 교수와 손해인 사회복지학 박사(뉴욕주 정신보건국 아동정신병원 심사평가부장), 박아라 런던정치경제대학교 교수, 크리스토퍼 리 캔버라대학교 교수가 나섰으며 각각 한국과 미국, 영국, 호주의 자살 현황에 대한 발표를 이어갔다.


자살률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호주에서 정신과 전문의로 활동하고 있는 크리스토퍼 리 교수는 자살률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현상에 대해 몇 가지 추론을 내놨다. 호주의 정신건강 연구 조직인 우울증연구소(Black Dog Institute) 분석에 따르면 우선 첫째, ‘모두가 같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집단심리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사회 내 소외 계층의 경우 코로나19 발생 이후 ‘나만 힘든 게 아니라 모두가 힘들다’라는 심리가 자살 시도를 억제하는 방식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자살 위험군의 변화가 생겼을 수 있다고 말했다. 통상 호주에선 팬데믹 이전에는 남성의 자살률이 높았는데 남성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아 자살률이 낮아진 반면, 여성들의 경우 타격을 크게 받아 자살률이 오히려 높아졌다고 분석한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자살률이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성별 위험도가 달라지면서 위험 양상이 바뀐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외에 호주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였던 85세 이상 노인층이 코로나19로 많이 사망하면서 자살률이 줄어든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추정과 강력한 락다운(봉쇄조치)에 들어가면서 자살 시도가 어렵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고 설명했다. 크리스토퍼 리 교수는 “자살률이 높아지지 않은 게 사람들의 심리적 고통이 줄어서가 아니라 고통받고 있음에도 팬데믹이 물리적 자살시도를 막아버려 못하게 된 거 아니냐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 2019년 호주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12.9명에서 2020년 12.1명으로 감소한 반면, 불안과 걱정을 호소하는 호주인들은 2021년 4월 49.8%에서 4개월 뒤인 8월 67.9%까지 증가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미국 자살률 3% 감소했지만 우울증 증가


미국 2020 잠정 자살 통계.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손해인 박사도 “2019년 대비 2020년 미국의 자살률이 3%가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이는 재난 상황에서 공동체 의식이 강화됐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가족들이 의도치 않게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됐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한다”고 말했다. 다만 손 박사는 전체 숫자보다 소수자 계층의 자살률이 증가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내 25~34세 젊은 인구집단이나 경제적 어려움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흑인, 히스패닉 등 소수자의 자살률은 많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손 박사는 자살률만 보기보다는 우울증이나 약물 과용 사망 통계 등 연관된 수치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카이저 재단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9년에는 성인 인구 10명당 1명이 불안 장애나 우울증을 호소한 반면 2020년에는 성인 10명당 4명이 이를 호소한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정신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발표한 2020년 잠정 약물 과용 사망 통계를 보면 2019년도에 비해 2020년 사망자가 3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경제적 어려움이나 실직,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우려가 약물 오남용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국, 뚜렷한 자살률 증가 없지만 지금부터 준비해야”


월별 자살사망자 수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백종우 교수는 “한국 사회 내에서 팬데믹 이후 자살률이 증가한 뚜렷한 결과는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21년 월별 잠정 자살 집계 사망자 수는 3월과 4월, 6월을 제외하면 전부 2019년이나 2020년 동기간보다 낮다. 다만 “재난 시기에는 모두가 다 힘드니까 차라리 받아들일 수 있지만 위드 코로나가 본격화되면서 ‘나만 외롭고 힘들다’는 느낌으로 자살률이 더 늘 수 있다”며 “지금부터가 변곡점”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 학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3월 자살을 생각한다고 답한 비율은 9.7%였는데 점차 증가해 2021년 3월에는 16.3%로 많이 늘어났고 지난 6월에는 12.4%로 소폭 줄어든 상황이다.

이에 백 교수는 “지금부터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경우 전국 229개 지자체 중 자살예방 정책을 담당하는 내부 조직을 갖추고 있는 지자체는 57개소이며, 특히 자살예방센터를 운영하는 지자체는 41개(17.9%)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국 229개 지자체 예산 중 자살예방 예산 비중도 전체 지자체 예산의 0.017%인 415억원 정도라고 말했다. 호주 정부처럼 선제적 대응을 위해 예산 확대를 하는 동시에 지자체 책임으로 운영되는 실질적인 자살 예방책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내년부터 자살예방 핫라인 '988' 개통


2020년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국회자살예방포럼·안실련·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
이날 세미나에서는 각 국가의 자살예방 대책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미국 뉴욕의 경우 입원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 24시간 이내로 머물러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위기안정센터를 운영 중이다. 내년 7월부터는 정신건강 위기 대응을 위해 기존 10자리였던 핫라인 번호가 세 자리인 ‘988’로 새롭게 개통돼 운영될 예정이다. 호주는 천문학적인 돈을 재원으로 사용해 자살 예방에 나섰다. 크리스토퍼 리 교수는 "호주 정부가 한화 약 2조원을 투자해 국가 정신 보건과 자살 예방 계획에 나섰는데 사용처를 보면 다문화 지역 사회 지원이나 정신과 전문의 수 확대, 원주민 자살 예방 전략 개선 등 자살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부분도 선제적 대응을 위해 투자한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도 심리치료 접근성 확대 프로그램인 IAPT(Improving Access To Psychological Therapies) 등을 통해 경증 정신질환자들의 치료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이에 대해 원소윤 복지부 자살예방정책과장은 “지금 당장 자살률은 감소했지만, 현재 집계된 높은 우울증 유병률이 자살률로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선제적 조치 취해야겠단 생각이 든다”며 “다양한 원인 분석을 통해 자살 고위험군을 선제적으로 발굴하는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중앙일보·안실련·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 공동기획

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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