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욱 칼럼] 소위 잡으면 소소위, 꼼수는 계속된다
사라진 듯했으나 국회법 피한 꼼수로 되살아나
앞 세대 구태 정치인에게 개혁 요구했던
여야 실세 386 세력, 그때와 지금 왜 말이 다른가
정부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매년 같은 비난이 쏟아진다. 쪽지예산과 끼워 넣기다. 올해도 그랬다. 607조6600억원 규모의 2022년도 예산안이 확정된 지 사흘 만에 정부안이 국회에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분석한 시민단체의 보고서가 나왔다. 여당 원내대표의 지역구에 고속도로를 놓고, 제1야당 사무총장 지역구에 철도를 깔기로 했다. 이런 식으로 정부안에 없던 사업에 들어가는 세금이 9400억원이다. 옛날에는 이런 말이 나오면 정치인들은 부끄러운 척이라도 했는데 지금은 그냥 무시한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식이다.
의원들의 지역구 민원 끼워 넣기는 올드 팝송처럼 오래된 이야기다. 국회에 예산조정위원회(현행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산하 예산안조정위원회)가 만들어진 게 1964년이다. 이쪽을 늘리면 저쪽을 줄여야 하는 현실에서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건 당연하다. 그런 명분으로 만들었다. 그 안에서 많은 거래가 있었겠지만 독재정권 때는 알려지지 않았다. 문제가 된 건 문민정부가 출범한 뒤인 90년대 중반부터다.
매년 예산안이 통과되면 신문에는 ‘기록 안 남기는 비공개회의에서 노골적인 나눠 먹기’라는 기사가 쏟아졌다. 당시 기사 제목은 이렇다. ‘만나기도 어려운 계수조정위원 몸값 상한가’ ‘어김없는 밀실야합 예산 배정’ ‘자기 몫 챙기려 시민 허리띠 죄나’. 시민단체는 계수조정소위원회 방청과 속기록 작성을 요구했다. 98년에는 계수조정소위 방청 금지가 위헌이라고 헌법소원을 냈다.
이 문제의 결론은 약간 허무하다. 일단 당시 정치개혁 요구가 매우 강했다는 배경이 중요하다. 2000년 16대 총선은 가수 이정현의 ‘바꿔, 바꿔, 모든 걸 다 바꿔’라는 노래 속에 치러졌다. 시민단체의 낙천·낙선 운동에 정치권은 긴장했다. 처음 만난 유권자 운동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여야 모두 물갈이에 분주했다. 그 결과 지역구 현역 의원의 41.5%가 바뀌었다. 대신 30대 의원 13명을 포함한 신인이 대거 국회에 들어갔다. 특히 386세대의 약진은 놀라웠다.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에서는 이인영·우상호 의원과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및 오영식 국무총리비서실장 등이, 야당인 한나라당에서는 원희룡 제주지사와 오세훈 서울시장 등이 발탁됐다.
이들은 개혁의 아이콘이었다. 선거를 앞두고 안팎으로 시달리던 여야 지도부는 마지못해 계수조정소위를 공개하도록 국회법을 바꿨지만 386세대는 여기에도 만족하지 않았다. 모든 소위의 속기록 작성 및 회의 공개, 자유로운 크로스보팅을 전면에 내세우고 국회 개혁과 당내 민주화를 요구했다. 국회 안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해 겨울 계수조정소위는 처음으로 공개됐고, 기자들은 회의장에 들어가 위원들의 발언을 신문에 중계했다.
이제 마지막 반전이 남았다. 21년 전 개혁의 성과는 어디로 갔는가. 왜 아직도 쪽지예산과 끼워 넣기가 남아있는가. 국회법 57조는 모든 소위 회의를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69조는 소위의 속기록 작성을 의무화하고 있다. 제도만 보면 개혁은 완수됐다. 최소한 누가 어떻게 세금으로 사익을 취했는지 기록이 남게 된다. 그러나 간단한 꼼수 하나로 지금까지 노력은 소용없게 됐다. 바로 소(小)소위다. 여야는 속기록이 남는 예산안조정위가 끝날 무렵 예산안조정소소위를 만든다. 구성은 옛날과 다를 게 없다. 여야 실세 몇 명이 세금을 적당히 갈라 밥그릇을 챙긴다. 이들에게는 지역구 민원을 담은 동료 의원들의 쪽지가 수시로 전달된다. 예산철이 되면 소위 위원과 식사 한 번 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데, 소소위 위원의 위세야 말할 게 없다.
소소위는 국회법에 근거가 없다. 공개를 안 하는 것은 물론이고, 속기록도 작성하지 않는다. 입법 취지를 생각하면 소소위 역시 위원회 산하 소위원회 아닌가. 맞는 말이지만 이런 꼼수를 부리는 사람들에게 통할 논리가 아니다. 국민들의 개혁 요구가 분출하면 국회법에 소소위 규정을 넣고 소소소위를 만들어 야합에 나설 것이다.
지금 여야 모두 실세는 386세대다. 이들은 20여년 전 선배 정치인들의 부당한 권력 행사에 화를 참지 못했던 젊은 신인이었다. 계수조정소위 속기록 의무화로 국가 예산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한 것은 386세대가 앞장서 이룬 개혁의 성과물이었다. 이제 묻고 싶다. 그때는 국민이 보이더니 지금은 지역구만 보이는가.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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