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 '중국식' 민주주의에 대한 의문

권지혜 2021. 12. 8.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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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11월 한 달 동안 유럽, 동남아, 아프리카 등 24개국 외무장관과 직접 또는 화상으로 만났다.

중국 외교부는 '미국의 민주적 상황' 보고서에서 "미국의 민주주의는 1인 1표를 주장하지만 실상은 소수 엘리트 통치이며 금전 정치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중국이 중국식 민주주의의 우월함을 내세울 수 있는 데는 코로나 방역 성과가 한몫했다.

중국식 민주주의가 상식이 돼선 안 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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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혜 특파원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11월 한 달 동안 유럽, 동남아, 아프리카 등 24개국 외무장관과 직접 또는 화상으로 만났다. 베이징에서 주중 아세안 외교사절단 12명을 한꺼번에 접견한 것까지 포함하면 30개국이 넘는다.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출입국과 대면 접촉이 매우 제한된 상황임을 감안하면 놀라운 행보다. 왕 부장의 광폭 외교는 미·중 갈등 속 우군 확보 성격이 짙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동맹과 함께 대중 압박 전선을 펴는 데 맞선 대응 조치다.

미국의 중국 견제는 경제·군사 분야를 넘어 민주주의라는 가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9~10일 화상으로 열리는 민주주의 정상회의가 그 신호탄이다.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대만을 포함해 110개국을 초청했다. 이어 회의 개최 직전 신장 인권을 문제 삼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공식 발표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라면 함께하자는 메시지다. 영국 호주 등 이미 외교적 보이콧을 시사한 나라들의 연쇄 동참이 예상된다. 민주주의 정상회의가 끝나면 주요 7개국(G7) 외교개발장관 회의가 열린다.

중국도 요즘 민주주의에 꽂혀 있다.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와 국무원 신문판공실은 지난 4일 ‘민주, 전 인류의 공통 가치’를 주제로 국제포럼을 개최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 포럼에 120여개국에서 400여명이 온·오프라인으로 참석했다고 밝혔다. 국무원은 같은 날 ‘중국의 민주’라는 제목의 백서도 냈다. 2만2000자로 된 백서의 핵심은 중국 공산당이 중국 현실에 맞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외교부는 ‘미국의 민주적 상황’ 보고서에서 “미국의 민주주의는 1인 1표를 주장하지만 실상은 소수 엘리트 통치이며 금전 정치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중국의 주장은 이렇다. ‘민주에는 보편적 모델이 없다,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정치 제도는 각국 국민이 자율적으로 정한다.’ 일견 맞는 말이다. 우리는 국민이 주인이 돼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민주주의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고 배웠다. 그럼에도 기본 원칙은 있다. 1인 1표 선거권, 헌법에 따른 정치, 권력 분립, 출판·결사·언론의 자유, 정부에 대한 비판 보장 등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주주의는 독재 체제의 대척점에 있다. ‘중국식’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고 이런 원리와 제도가 바뀌는 건 아니다. 중국 공산당은 최근 시진핑 국가주석의 장기 집권에 힘을 싣는 역사 결의를 채택했다. 마오쩌둥, 덩샤오핑 시대에 이은 중공 역사상 세 번째 역사 결의다. 시 주석은 내년 가을 열리는 20차 당대회에서 3연임을 공식화할 전망이다. 중국 공산당이 헌법에 있던 국가주석 연임 제한 규정을 없앴기 때문에 3연임이 4연임이 돼도 문제될 게 없다. 마오쩌둥은 역사 결의 채택 후 31년간 최고지도자 자리를 지켰다.

중국이 중국식 민주주의의 우월함을 내세울 수 있는 데는 코로나 방역 성과가 한몫했다. 중국은 코로나 대응에서만큼은 미국보다 앞섰다는 강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 이에 더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임기 말 벌어진 의회 폭동으로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탓이 크다.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을 확정하기 위해 열린 의회가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습격으로 난장판이 된 모습은 미국과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세 과시용 이벤트가 아닌 무너진 신뢰를 다시 세우는 계기가 돼야 한다. 중국식 민주주의가 상식이 돼선 안 되지 않는가.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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