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희의 시시각각] 정치인의 사생활

양성희 입력 2021. 12. 8. 00:42 수정 2021. 12. 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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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영입 인재 사생활 논란 하차
부실 검증 보여주기 인선의 참사
정치인 사생활 검증 한계는 뭘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왼쪽)의 인재영입 1호이자 상임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전격 발탁됐던 조동연 서경대 교수(오른쪽). 사생활 논란이 나오면서 위촉 3일만에 자진하차했다. [중앙포토]

전례 없는 3일 천하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인재 영입 1호이자 상임공동선대위원장으로 전격 발탁됐다가 사생활 논란으로 3일 만에 자진 사퇴한 조동연 서경대 교수 얘기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자마자 불륜과 혼외자라는 사생활이 까발려졌다. 화제성을 노린 인재 영입 경쟁 쇼, 부실 검증의 결과였다. 황색 저널리즘과 관음증적 욕망이 이를 놓치지 않았다.
정치인의 사생활에 대한 가장 고전적인 명제는 박정희 대통령이 했다는 ”허리 아래 일은 문제 삼지 않는다“일 것이다. 여러 여성을 성적으로 거느리는 것이 ’남성 권력 카르텔‘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던 시대의 얘기다. 남성 정치인들의 성적 방종이 용인됐다. 세월이 흐르면서 정치인의 사생활도 ’검증‘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혼외자의 존재가 승승장구하던 검찰총장을 낙마시키는 일도 일어났다.
정치인의 사생활 문제는 해외에서도 문화적 풍토에 따라 다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를 빌리자면 ”청교도주의를 배경으로 한 미국에서는 정치인의 사생활도 검증의 대상이 되지만, 국가의 토대에 그런 종교적 배경을 허용하지 않는 유럽에선 남의 사생활엔 관심들 꺼주는 게 상식으로 통한다”. 프랑스는 대통령의 여자 문제에 한없이 관대하다. 공직자에겐 사생활보다 직무능력을 중시하는 탓이다. 가족주의를 강조하는 미국에선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런데 이 사생활 문제, 불륜만큼 한국 사회에서 모순적인 게 없다. 일상에서는 누구나 한두 번 일탈을 꿈꾸지만, 타인에게는 엄격하다. 공인이라면 더욱 도덕적 잣대가 높다. 불륜 관계를 인정한 홍상수 감독, 김민희 배우 커플에게 가해진 대중적 냉대를 봐도 알 수 있다. 불륜 드라마 시청자일 땐 불륜 당사자에게, 홍상수·김민희 커플을 볼 땐 홍 감독의 아내 입장에 감정이입하는 모양새다. 내 불륜은 통제할 수 없는 열정이고, 남의 불륜은 단죄의 대상이다. 오죽하면 한국 사회의 이중성, 위선, 자기기만을 대표하는 말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줄여 ’내로남불‘일까.
조 교수 측은 하차 후 ”(당의 영입 과정에서) 혼외자 문제를 밝히지 못한 것을 사과“하면서 ”성폭력으로 원치 않은 임신이었다“고 밝혔다. 조 교수 영입 직후 국민의힘 공동선대위원장인 이수정 경기대 교수 사진을 나란히 올리고 ”차이는?"이란 글을 달아 ’외모 비교‘에 여념 없던 민주당(최배근 전 선대위 기본사회위 공동위원장)은 문제가 터지자, “부정적 국민 여론”을 내세우며 빠른 손절에 나섰다. 애초 조 교수가 혼외자 이슈를 너무 나이브하게 생각한 게 문제였다면, 자당의 영입 인사가 만신창이가 되는 데도 내 책임 아닌 양 하는 태도도 문제다. 국민 정서에 부합하는 사생활이 중요하다면 처음부터 더 철저히 검증해야 했고, 전문성이 영입 이유라면 사생활 논란에도 끝까지 지켜내는 게 맞다. “대선을 앞두고 마음이 급한 민주당이 졸속으로 외부 엘리트들을 영입해 상임선대위원장이라는 허울뿐인 자리에 앉히려다 이런 사달이 난 것”(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이란 말이 딱이다. 국민의힘도 예외는 아니다. 과거 여성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피부과 의사 함익병씨를 공동선대위원장으로 내정했다 7시간 만에 철회했다. 이런 식의 인재 영입 경쟁을 왜 하는지 모를 일이다.
이번 사태의 교훈이라면 '정치인의 사생활 검증'이란 화두를 다시 던졌다는 점 아닐까. 조 교수의 혼외자를 처음 알린 유튜버는 자녀의 신상까지 공개했다. 검증이란 빌미의 인권침해다. 조 교수의 하차에도 추가 폭로를 예고했다. 온라인에서는 인격살인이 한창이다. 진중권 전 교수의 지적이 경청할 만하다. “정치인의 사생활 검증에 대해 아직 명확한 합의가 없어 이러쿵저러쿵하는데, 내 입장은 남녀 공히 사생활을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는 것. 사생활이 있는 이들의 공직을 제한함으로써 얻어지는 사회적 이익은 불분명한 반면, 그로 인한 피해는 (인권침해) 등 비교적 뚜렷하기 때문이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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