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코리아] 툭하면 사용자 징계..노사간 합의·자치 넓혀가야

김기찬 2021. 12. 8.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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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정부 정책 어젠다 ⑩ 고용노동분과 제언-노동정책


2017년 5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찾았다. 취임 이틀 만이었다. 이곳에서 문 대통령은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 2주 뒤인 24일에는 청와대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했다. 문 대통령이 직접 프리젠테이션까지 했다. 임기 말에 이르러 그 결과는 참담하다.

올해 비정규직은 806만6000명(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부가조사)을 기록했다. 대졸 이상 비정규직은 284만 명에 달했다. 비정규직 중 대졸 이상 비중은 35.2%다. 이 세 가지 수치는 2003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뒤 역대 최대 규모다.

비정규직 수만 폭증한 게 아니다. 처우는 더 열악해졌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는 156만7000원이다. 이 또한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많이 벌어졌다.

「 현실과 어긋난 이념성 정책 득세
처벌·규제 넘치는 노동법 손봐야

플랫폼경제로 노동시장 지각변동
일자리에서 ‘일거리’로 정책 전환

소수 기득권 노조 시대는 저물어
최저임금도 업종·지역별 차등화

일자리 줄고 산재사망 늘어나

청년들은 취업을 포기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청년 니트(NEET)족이 177만3000명에 이를 전망이다. 20년 동안 발표된 정부 통계에서 볼 수 없던 최악의 수치다. 일자리 정부라던 현 정부가 좋은 일자리는 고사하고, 나쁜 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우며 역주행한 꼴이다.

최대로 벌어진 월평균 임금 격차.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산업안전도 진전이 없다. 취임 첫해 예방 드라이브 덕에 감소 추세를 보였다. 그러다 돌연 채찍을 들기 시작했다.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쪽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을 전면 개정하고, 이어 중대재해처벌법도 만들었다. 안전 관련 법을 만들 때마다 산재 사고 사망자는 늘었다. 2020년 산업안전법을 개정하자 감소세이던 사고 사망자가 27명 증가세로 돌아섰다. 올 초 중대재해법을 만들었지만 9월 말 현재 678명이 사업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매달 75명씩 숨진다. 이대로라면 올해 산재 사망자가 900명대에 진입할지도 모른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노동시장 혼란을 부채질했다. 현 정부는 최저임금을 소득주도성장의 첨병으로 삼았다. 그러나 멀쩡한 일자리조차 사라지는 부작용이 속출했다. 급기야 정부가 사기업의 임금을 보전해주는(일자리 안정자금) 초유의 시장 교란 행위까지 하고 있다. 오죽하면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취약계층의 삶을 보장하기 위한 최저임금을 경제성장과 연결한 것 자체가 포퓰리즘의 전형”이라고 혹평했다.

리셋코리아 고용노동분과 위원들은 이런 노동시장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궤도를 탈선한 노동정책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이성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앞뒤가 안 맞는 노동개혁 정책으로 일자리는 늘지 않고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더 심화했다”고 평가했다.

위원들은 우선 노동시장에 대한 법과 정부의 통제를 우려했다. 노동시장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데다 과도하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법에 기대는 후진국형 갈등 만연

대졸 이상 비정규직 취업자 현황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통계청]

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 노동법은 공장 근로, 단순반복적인 근로자를 타깃으로 하고 있어 보호 규정 일변도”라고 말했다. 특히 “현행 노동법에는 형벌 규정이 너무 많다”며 “대표적인 것이 사용자에게 부당노동행위 죄목을 적용하고, 2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것인데, 이런 입법례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꼬집었다. 외국처럼 처벌 대신 원상회복주의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오로지 법으로 해결하려다 보니 해석을 두고 분쟁이 일어나는, 후진국형 갈등이 만연하다”며 “노사 간 합의, 자율성을 무너뜨리는 환경을 고착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정책에도 유연성을 발휘해 독일처럼 일할 기회를 제공하는 쪽으로 탄력적인 법 적용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독일의 경우 스타트업이나 고령자에 대해서는 노동법 적용을 완화한다. 규제 부담을 덜어 일자리를 공급하는 데 초점을 두기 때문이다. 권 교수는 “이는 일자리 자체가 가지는 의미가 규제를 통한 보호보다 사회적 의미가 더 크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산업 안전에 대한 정부나 정치권의 인식에도 문제가 많다고 위원들은 입을 모았다.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보다 사고 뒤 처벌에 무게 중심을 두면서 생기는 부작용을 우려했다.

사고 예방보다 사후 처벌에 무게

비정규직 통계 작성 이후 최대

김영기 전 대한산업안전협회 회장은 “정부의 통제는 엄청난 한계를 동반한다”며 “과도한 형벌을 하면 피하려고만 하게 되고, 안전 기술은 고사하고 경영자나 근로자 모두 안전의 체화보다는 규정의 틀에 갇히게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안전에도 자치의 영역이 상당히 많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걸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 “영국의 법을 벤치마킹해서 만들었다는데, 영국에서도 양형이 아주 낮아져서 사문화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거시적 관점의 고용 정책도 주문했다. 정권의 이념에 쫓긴 정책을 단박에 실현하려다 시장 교란, 경쟁력 저하, 일자리 감소 같은 부작용이 초래됐다는 지적과 함께다.

권 교수는 “공장 근로가 저물고 플랫폼이 확산하고 있다. 이런 노동시장의 변화와 저출산 고령사회에 대응하려면 향후 노동법의 관심은 일자리가 아닌 ‘일거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의 일자리 구조는 사용자가 존재한다. 따라서 사용자에게 의무를 부과하고, 근로자를 보호하는 법체계다. ‘일거리 경제’에서는 소위 고용구조가 해체된다. 사용자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권 교수는 “일을 함에 있어 기존 노동법에 포섭하지 말고 자율성을 지향하되 사회적 보호 방안을 발굴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 교수는 “형벌을 전제로 강제하는 기존 근로기준법 대신 노사의 자율을 보장하는 근로계약법으로 체제 전환이 필요하다”며 “이때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관철해 불합리한 차별이 없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임금체계를 개혁해야 일본처럼 나이가 들어서도 촉탁 등 다양한 형태로 일을 이어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최저임금에 대해 “수천만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것인데, 노사 단체가 타협으로 정할 문제인지 고민해야 한다”며 “업종·지역별로 차등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립적 노사관계부터 풀어야

모든 위원이 전투적·갈등형 노사관계에 대해 크게 우려했다.

주완 변호사는 “노조조직률이 저조한 상황에서 그나마 조합원 중에는 월급을 반도 못 받는 사람이 많은데 노조는 이기적으로 활동하고 고소득을 취한다. 그러면서도 비협조적이다. 국민이 이들을 견제하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노동이 너무 공고화하고, 경직되고, 혹자는 괴물 같은 형태로 변했다고 한다”며 “노동에서도 가진 자들이 너무 힘을 갖게 됐는데, 이에 대한 개혁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일본에서는 과거 ‘파업 좀 그만합시다’라는 파업이 등장했었다”고 소개했다.

이 연구위원은 “현 정부 들어 노동개혁이 길을 잃었다”며 “대립적 노사관계를 청산하지 않으면 노동시장의 활력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다음 정부는 노동개혁에 대한 국민 공감대를 형성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정부가 너무 주도적으로 시장에 개입한다. 그러다 보니 노정관계, 사정관계만 남아 시장을 움츠리게 했다”며 “정부는 힘을 빼야 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특히 노동문제를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선과 악으로 접근하는 방식부터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고용노동분과위원 제언

「 주완 김앤장 변호사, 고용노동분과 위원장

주완 김앤장 변호사, 고용노동분과 위원장

“노사관계가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변질하고 있다. 일부 노조의 기득권 지키기, 즉 고소득을 누리면서도 비협조적인 행태를 보이는 이기적 행보를 제어할 시스템이 필요하다.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

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부당노동행위로 사용자를 처벌하는 국가는 한국뿐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처벌 위주의 노동법을 대대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급변하는 시장에 적응하도록 노사자치와 자율을 지원하는 체계로 탈바꿈해야 한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노동시장의 모든 행위를 노동법으로 포섭하려 들지 말라. 자율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자율성 보장을 위해 필요한 보호조치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경계하자.”

이성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성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노동개혁이 길을 잃었다. 일자리를 창출하고 노동복지와 성장을 선순환시키는 개혁이 필요하다. 노사정 합의라는 이름으로 거래하는 부작용을 막는 대신 국민 공감대를 토대로 노동개혁 아젠다를 설정하자.”

김영기 전 대한산업안전협회 회장

김영기 전 대한산업안전협회 회장

“안전은 형벌로 지킬 수 없다. 과도한 형벌은 새로운 안전 기술 개발을 늦추는 등 부작용을 키우고 사각지대를 늘릴 수 있다. 안전 관련 자치 영역을 확대하고 존중하는 쪽으로 정책을 전환하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배정원 인턴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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