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歷知思志)] 가짜 남편
1556년 대구 양반 유유(柳游)라는 사람이 가출했다. 결혼 후 자식이 없자 이를 책망하는 부친과의 갈등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부친의 장례식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7년 뒤 유유가 서울에 나타났다. 연락을 받은 동생 유연이 찾아갔다. 그새 형은 춘수라는 첩과 정백이라는 아들도 두고 있었다. 그러나 반가움도 잠깐. 형을 데리고 고향으로 가던 유연은 그가 가짜라는 생각이 들었고, 진위를 가려달라며 관아에 남겼다.
열쇠는 유유의 아내 백씨가 쥐고 있었다. 유유는 “신혼 첫날밤 아내의 치마를 벗기려 하자 월경이 있다고 했다”고 진술했는데 백씨에게 확인해보니 사실이었다. 유유가 진짜일 가능성이 높아진 셈. 그런데 재판 기간 중 유유가 갑자기 실종됐고, 동생은 살인범으로 몰려 처형됐다. 그리고 유유가 남긴 아들 정백은 유씨 가문의 적자가 됐다.
15년 뒤 반전이 일어났다. ‘진짜’ 유유가 나타났다. 살해됐다던 ‘가짜’ 유유도 해주에서 채응규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그렇다면 유유의 아내는 왜 사기극에 가담했을까.
가장 유력한 해석은 이렇다. 맏며느리인 백씨는 가문의 재산이 시동생에게 넘어가는 것을 우려해 가짜 남편 만들기를 공모했다. 또 가짜 유유가 사라지자 그가 데려온 정백을 아들로 인정해 재산을 보장받으려 했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추정이다. 가짜 유유는 압송 도중 자살했고 백씨도 입을 열지 않아 진실은 영원히 베일에 가렸다. 다만 돌아온 진짜 유유는 아내의 행위에 격분해 죽을 때까지 상종하지 않았다고 한다.
유성운 문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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