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배의 시사음식] 작은 닭도 맛있다
한국 대중문화가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다. K팝·K드라마·K뷰티·K푸드·K스타일 등 접두사 K가 여기저기 따라붙는다. 지난 10월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K드라마(K-drama)·한류(hallyu)·먹방(mukbang)·만화(manhwa)와 함께 ‘치맥’(chimaek)이 등재됐다. 김치나 불고기처럼 치맥이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 문화로 지구촌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기사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한 맛 칼럼니스트가 “한국 치킨은 맛없다. 닭이 작아 맛없다”고 맹공하면서 사회적 파문이 일었다.
이를 찬찬히 따져보자. 큰 닭이 육향이 강해서 작은 닭보다 더 맛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작은 닭은 맛이 없다는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요즘 치킨에 흔히 사용되는 1.5㎏짜리 닭은 1960년대 들어 본격화한 육계 중심의 양계업과 삼계탕, 치킨 같은 대중의 기호가 서로 맞물린, 이를테면 오랜 사회적 합의의 결과물이다.
예로 외국의 닭이 큰 것은 가슴살을 선호하는 식습성에 비롯했다. 세계에서 널리 쓰는 육계(broiler)는 거의 다 비슷한 몇 개의 종이다. 육계는 자연적으로 쌍가슴이 있는 콘월(Cornish) 품종의 수컷과 크고 뼈대가 큰 흰 플리머스 락(Plymouth Rocks) 품종의 암컷 사이에서 교배한 것을 주로 사용한다. 쌍가슴 콘월에서 보듯 가슴살이 육계의 기본 조건임을 알 수 있다. 프라이드치킨도 미국 남부에서 흑인들이 주로 먹던 ‘영혼의 음식’이었다. 살코기가 별로 없어 백인들이 버리던 닭다리에 흑인들이 밀가루를 입혀 튀겨먹기 시작했다. 1930년대 켄터키 프라이드치킨(KFC)도 전환점이 됐다. 닭을 찐 뒤에 기름에 튀긴 튀김 닭이 나오면서 프라이드치킨은 미국인의 국민 음식이 됐다.
한국인에게 닭 요리는 대부분 닭을 통째로 삶아 먹는 백숙이었다. 1960년대 양계사업이 본격화하면서 ‘1인 1닭’ 할 수 있는 삼계탕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1971년 국내 식용유가 출시되며 통닭의 시대가 열렸다. 닭을 쪼개 양념한 뒤 기름에 통으로 튀겨 먹는 시장통닭이다. 1970년대 말 또 다른 변화가 몰려왔다. 속살까지 염지한 커다란 프라이드치킨이 들어왔다. 닭 부위를 나누고, 이를 찌면서 튀겨먹게 됐다.
하지만 한국인은 여전히 가슴살을 퍽퍽하다고 여기고 기름지고 부드러운 다리를 선호한다. 작은 닭을 튀기면 닭고기는 물론 염지한 양념과 기름에 튀긴 탄수화물이 어울리는 매혹적인 맛이 완성된다. 이른바 한국형 치킨이다. 여기에 맥주를 곁들이면 치맥이 완성된다. 큰 닭도 맛있지만 작은 닭도 맛있다. 게다가 통째 튀긴 치킨에는 한 마리 닭에 대한 한국인의 열망이 녹아 있다. 음식 문화는 재료를 준비하는 사람들, 소비하는 사람들의 교감이 빚어낸 집단 식성이다. 음식 앞에서 조금씩 겸손해지자.
박정배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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