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의 위기의식..사령탑 3인 한꺼번에 바꿨다

김태윤 입력 2021. 12. 8. 00:05 수정 2021. 12. 8.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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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7일 2022년 정기 사장단 인사를 발표했다. 사진은 이재용 부회장이 6일 아랍에미리트 출장을 위해 출국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미래를 향한 세대교체, 성과주의 인사 재확인, 시장·기술 리더십 회복, ‘60세 퇴진 룰’ 일부 복원-.

7일 발표한 삼성전자의 사장단 인사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지난달 북미 출장 후 “현장의 처절한 목소리와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고 와 마음이 무겁다”고 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위기의식이 고스란히 반영된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모두 유임될 것이란 시장의 예상을 깨고 대표이사 3인방을 전격 교체했다. ‘뉴삼성’의 기치를 내건 이 부회장이 ‘세대교체’라는 결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대신 한종희 소비자가전(CE) 부문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사장)과 정현호 사업 지원 태스크포스(TF) 사장을 각각 부회장으로 승진시켜 힘을 실어줬다.

재판 감안 ‘안정적 경영’ 예상 빗나가

특히 소비자가전(CE)과 IT·모바일(IM) 부문을 통합해 한종희 부회장(세트 통합 부문장)에게 맡긴 것은 예상치 못한 인사였다. 그간 삼성전자 내부에서조차 “CE와 IM 부문이 다른 회사처럼 따로 움직인다”는 불만이 많았는데, 이를 반영한 인사라는 분석이다. 삼성전차 측은 “세트 사업은 통합 리더십 체제를 출범함으로써 조직 간 경계를 뛰어넘는 전사 차원의 시너지 창출과 고객 경험 중심의 차별화한 제품·서비스 기반을 구축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대표.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메모리 반도체 전문가인 경계현 삼성전기 사장은 삼성전자로 돌아와 대표이사 사장 겸 반도체(DS) 부문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됐다. 전형적인 성과주의 인사다. 경 사장은 지난해 삼성전기 경영을 맡아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기술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역대 최대 실적을 이끌었다. DS 부문 경영지원실장이던 박학규 사장이 세트 부문 경영지원실장으로 옮긴 것도 삼성 안팎에선 ‘엄청난 변화’라는 반응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그룹은 물론 삼성전자 내부 조직 간 벽을 허물면서 동시에 조직에 긴장을 주는 효과를 노린 것 같다”고 말했다.

정현호 사장의 부회장 승진도 의미가 크다. 재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옛 미래전략실(미전실) 같은 컨트롤타워를 만들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미전실의 부활’이라는 논란을 피하면서 정 부회장의 승진으로 갈음했다. 향후 삼성전자는 힘이 실린 사업 지원 TF를 중심으로 뉴삼성을 위한 미래사업 발굴과 계열사 간 시너지 확대 등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60세 룰’이 일부 복원되면서 삼성전자의 고위 임원 인사 적체도 어느 정도 해소됐다는 평이다. 60세 룰은 만 60세가 넘는 사장급 이상 고위 임원을 교체하는 관행으로 2000년대 중반까지 삼성의 주요 인사 원칙 중 하나였다. 하지만 2014년 고 이건희 회장의 와병으로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경영 안정’ 차원에서 60세 룰이 느슨해진 측면이 있었다.

이번 인사에선 만 63세인 김기남 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했지만 종합기술원장으로 옮겼고, 만 60세인 김현석·고동진 사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정현호 부회장이 만 60세지만 한종희(59) 부회장과 경계현(59) 사장, 박학규(57) 사장, 강인엽(58) DS 부문 미주총괄 사장 등은 모두 만 60세 이하다.

무엇보다 이번 사장단 인사의 최대 핵심은 3대 주력 사업(반도체·스마트폰·가전) 수장 교체다. 시장에서는 가석방 이후에도 이어지는 재판으로 안정적인 경영 활동이 어려운 이 부회장이 대표이사 3인방을 유임하면서 ‘안정 속 쇄신’을 꾀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의 선택은 세대교체였다. 최근 발표한 인사 제도 개편과 곧 이어질 조직 개편, 임원 인사 등 이재용 부회장의 ‘뉴삼성’ 기조를 위해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조직 간 벽 허물어 미래 먹거리 준비

관련 업계와 삼성 내부에선 대표이사 3인방 교체를 ‘문책성’ 인사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지난해 코로나19 상황에서도 호실적을 냈지만, 이들이 3대 주력 사업 수장에 오른 2017년 10월 이후로 시계열을 넓히면 후한 평가를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지난 4년간 3대 주력 사업에서 ‘시장·기술 리더십을 잃었다’는 지적이 많다.

물론 반도체 시장 경쟁 격화, 스마트폰 시장 둔화, 중국 스마트폰 업체의 공세, 가전 수요 감소, 공급망 리스크, 특히 오너 부재라는 안팎의 리스크 속에서 전문경영인 3인방이 중심을 잡고 삼성전자를 무난하게 이끌었다는 견해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최초·최고·최대’를 자부했던 삼성의 기술·시장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는 데 많은 업계 전문가와 관계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익명을 원한 삼성전자 임원은 “3인의 대표이사가 자신이 맡은 부문만 우선 챙기다 보니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신성장 산업에 대한 전사적인 비전과 투자가 부족하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송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은 총수 부재라는 명분으로 투자와 인수합병(M&A) 등을 주저해 왔다”며 “이번 인사를 계기로 전문경영인에게 좀 더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전기는 이날 장덕현 삼성전자 부사장을 신임 사장으로 내정했다. 삼성SDI는 최윤호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사장)을 신임 대표이사에 선임했다. 전영현 삼성SDI 사장은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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