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회 중앙시조대상] 3년 전 몽골서 뼈만 남은 말 보며..우리의 인생 곱씹었다

김호정 입력 2021. 12. 8. 00:04 수정 2021. 12. 8. 06:2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중앙시조대상


대상을 받은 손영희 시인. [사진 손영희]
시조 문학상 중 최고 권위인 중앙시조대상 40회 수상작으로 손영희(66) 시인의 ‘고비, 사막’이 선정됐다. 중앙시조신인상은 김양희(57) 시인의 ‘그 겨울의 뿔’로 정해졌다. 시조 시인의 등단 무대인 제32회 중앙신춘시조상에는 권선애(55)씨의 ‘불편에게로路’가 선정됐다.

시조 시인 중 2000년 이후 등단해 15년 이상이 됐고, 시조집을 한 권 이상 출간했으며 한 해 5편 이상을 발표한 이가 중앙시조대상의 후보 자격을 가진다. 중앙시조신인상은 등단 5년 이상 10년 이하이며 한 해 5편 이상을 발표한 시조 시인이 후보다. 중앙신춘시조상은 올 1~11월 매달 열린 중앙시조백일장의 입상자 33명이 낸 새 작품 중에 한 편을 가린다.

대상을 받게 된 손영희 시인은 “이제야 시조 시인으로 이름을 올린 듯 마음이 놓인다. 이런 큰 소식을 주시는 신에게 어떤 계획이 있나 싶다”라는 말로 당선 소감을 전했다. 6일 서면 인터뷰에서 그는 “시조를 귀하게 여기고 높은 곳에 올려준 중앙시조대상에 감사한다”고 했다.

당선작 ‘고비, 사막’은 3년 전 몽골의 기억에서 썼다. “시조 시인들과 함께 갔다. 황량한 평원, 끝없는 모래바람 속에 죽어서 하얗게 뼈만 남은 말의 형상을 보게 됐다. 그 이미지가 오래 남아 있다가 올봄 갑자기 그 말의 흰 뼈가 떠올라 썼다.”

작품에서 시어는 말(言)과 말(馬)을 오가며 죽음과 생을 곱씹는다. 손 시인은 “여기에서 말은 자유, 갈망, 소멸을 의미한다. 그 넓은 평원이 다름 아닌 감옥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어디로든 갈 수 있지만 결국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우리의 인생, 유한한 삶이다.” 또한 제목의 ‘고비’ 뒤에 쉼표를 찍고 사막을 놓은 그는 “고비 사막이라는 명사 대신, 고비마다 우리가 많은 것을 갈망하지만 결국 모래뿐인 사막에 이른다는 의미”라고 풀었다.

손 시인은 40대 후반인 늦은 나이에 시조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시조는 음풍농월이다, 고답적이다라고만 생각하던 중에 이우걸 선생님의 ‘팽이’를 봤다. 시조가 현대적이며 감각적이라는 것, 또 단수에 큰 의미가 담기는 걸 알았다. 이우걸 선생님과 그렇게 시조 공부를 시작해 20년이 됐다.” 짧으면서 강한 의미의 말을 찾아 쓰는 일이 그에게 매혹적이다. “시조는 참 어렵지만 그래서 매력 있다. 음보에 맞는 적당한 말을 찾았을 때 느끼는 희열은 내가 살아있다는 감동을 준다.” 손 시인은 일부러 짧게 쓰려고 노력하면서 시어의 의미를 살려내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시조를 쓰며 20여 년 동안 주목한 주제는 여성의 이야기였다. “가난한 여자, 그래서 우는 여자, 조금 모자란 여자, 자의식이 없는 여자, 늙은 여자 그들에게 시선이 간다. 아낌없는 위로와 평안을 주고 싶다.” 여성에 주목했던 이유에 대해 어머니에 대한 기억 때문이라고 답했다. “가부장적인 시대에서 힘들게 살아온 엄마를 보며 왜라는 의문을 가졌다. 엄마가 힘들 때 나는 도서관에 처박혀 어두워질 때까지 고전, 탐정, 연애 소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어머니의 고된 삶을 지켜보며 그는 언젠가 글 쓰는 사람이 되기를 꿈꿨다. “결국 그렇게 됐다. 시조가 말(言)이자 말(馬)이다. 나를 해방시켜주고, 어디로든 데려가 준다.”

제40회 중앙시조대상과 신인상의 예심은 시조 시인 김진숙·김석이씨가, 본심은 시조 시인 백이운·이달균씨와 문학평론가 유성호씨가 맡았다. 중앙신춘시조상의 심사위원은 시조 시인 최영효·김삼환·강현덕·서숙희씨였다. 세 부문의 시상식은 14일 오후 4시 서울 프레스센터(중구 세종대로124) 19층에서 열린다.

고비, 사막
-손영희
아버지, 간밤에 말이 죽었어요
그때 고삐를 놓은 건지 놓친 건지
쏟아진 햇살이 무거워 눈을 감았을 뿐
한 발 올라가면 두 발 미끄러지는
잿빛 모래언덕도 시간을 허물지 못해
이곳은 지평선이 가둔 미로의 감옥입니다
한세월 신기루만 쫓다가 허물어지는
사방이 길이며 사방이 절벽입니다
아버지, 간밤에 홀연히 제 말이 죽었어요

■ ◆손영희

「 1955년 충북 청원 출생. 2003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열린시학』 신인상으로 등단. 오늘의 시조시인상, 이영도 시조문학상 신인상, 경남시조문학상. 시조집 『불룩한 의자』, 『소금박물관』, 현대시조 100인선 『지독한 안부』. 현재 우포시조문학관 상주작가.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