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회 중앙시조대상] 불편해서 지나친 것들에 한없이 미안했죠

입력 2021. 12. 8. 00:04 수정 2021. 12. 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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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신춘시조상


불편에게로路
-권선애
편안대로大路 벗어나 불편에게로 갑니다
자동화된 도시에서 손발이 퇴화될 때
발밑은 물관을 따라 실뿌리를 뻗습니다
지칠 대로 지쳐가 풀 죽은 빌딩 숲은
낯선 대로 익숙한 대로 껍질만 남긴 채
별들의 보폭을 따라 좁은 길을 걷습니다
좋을 대로 움트는 불편을 모십니다
어두우면 꿈꾸는 대로 밝으면 웃는 대로
낮과 밤 시간을 일궈 내 모습을 찾습니다
권선애

당선 연락을 받고 온종일 내 몸엔 명사와 주어(정말, 정말 내가?)가 번갈아 돋았습니다. 밭에서 발코니에 옮겨 심은 케일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불편해서 지나친 것에 한없이 미안했습니다. 시조 앞에서 제자리를 맴돌 때, 들풀은 바람을 따라가느라 더욱 유연해졌습니다.

편한 곳에서 시(詩)를 찾는 것은 모두 발각된 단어였습니다. 풀들이 어둠을 뚫고 올라와 치열하게 꽃을 피우는 것은 기적이었습니다. 불편한 것은 멀리 있고, 깨끗한 시간을 골라 고뇌하는 동안, 알맹이 없는 껍질만 영그는 시간이었을까요, 말랑하던 나의 서정이 이맘때면 쭉정이로 말라가곤 했습니다.

포기(抛棄)의 그림자가 손가락 끝에 진해질 때 두려웠습니다. 그럴수록 내 곁의 불편한 것들은 어두우면 어두운 대로 밝으면 밝은 대로 성실했지만, 내 삶의 문장들은 늘어지고 헐거웠습니다. 더 자세히 보겠습니다. 더 자세히 사랑하겠습니다. 율격 안에서 자유로운 노래를 듣기 위해 나의 첫발을 조심스럽게 떼며 귀를 쫑긋 세우겠습니다.

부족한 제 글에 따뜻한 생명을 불어 넣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시조에게로路 새 길을 걸을 수 있게 해주신 조경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동인들, 안산여성문학회 문우들, 박상천·고운기 교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은유의 샘물을 끌어올려주시는 아버지 어머니, 동생들 나의 친절한 독자 언니와 이 기쁨을 함께 하겠습니다. 늘 묵묵히 지켜봐 준 남편과 문학의 끼가 흐르는 재형, 재원, 고맙고 사랑합니다.


말놀이로 리듬감 있게 요즘 세태 그려내


중앙신춘시조상 심사평

응모된 작품들이 전체적으로 일정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데 선자들의 기쁨이 컸다. 오랜 숙독 끝에 김현장의 ‘곡두’, 김정애의 ‘사려니를 걷는 여자’, 권선애의 ‘불편에게로路’가 마지막까지 손에 남았다. ‘곡두’는 선명하고 역동적인 묘사가 돋보였으나 각 장과 장, 수와 수의 연결과 호응에 무리가 있었고 내용에 비추어 굳이 일반화 되지 않은 ‘곡두’라는 제목이 필요할까 싶은 의문이 있었다.

‘사려니를 걷는 여자’는 화자가 처한 신산한 현실에 대한 진술이 차분한 진정성으로 공감력을 넓혔으나 한 줄의 진부한 표현이 전체를 허물어버리는 치밀하지 못함이 보였다. 언어를 철저하게 아껴야 하는 시조에서는 음보 하나, 장 하나가 시조 전체와 맞먹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겠다.

‘불편에게로路’는 우선 제목이 새로웠다. 부사격 조사 ‘로’와 길을 뜻하는 한자어 ‘로’를 활용, 편안함과 불편함, 낯설음과 익숙함 등을 대척점에 세워 편안과 편리를 좇는 요즘 세태를 효과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반복되는 ‘대로’ 가 주는 리듬감 또한 읽는 맛을 더해주었다. 말놀이(pun)를 앞세운 시는 자칫 가벼움에 빠질 수도 있으나 유추와 암시를 통한 구체화로 끌어낸 점을 높이 샀다. 함께 보내온 작품 ‘와꽃’이 받쳐주는 힘도 컸다. 영광된 출발에 큰 격려와 축하를 보내며 앞으로 우리 시조단에 신선한 울림이 되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최영효·김삼환·강현덕·서숙희(대표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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