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담판' 전 인도 찾은 푸틴..6조원대 러시아판 사드 확정

박형수 2021. 12. 7.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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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6인 인도 뉴델리에서 정상 회담을 앞두고 인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러 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인도 뉴델리를 방문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3시간30분간 마라톤 정상회담을 가졌다. 외신들은 러시아와 서방의 긴장이 고조되는 시기에 미국과 협력적 관계인 인도에 푸틴 대통령이 직접 찾아가 우호관계를 보여줌으로써 국제사회에 러시아의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행보라고 분석했다.


G20·COP26 건너뛴 푸틴…인도 직접 방문


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월스트리트저널(WSJ), 러시아 현지매체 모스크바타임스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하루 일정으로 인도 뉴델리에 다녀갔다. 정상회담과 함께 양국 외교·국방 장관의 첫 2+2회담도 진행됐다. 회담을 마치고 양국은 국방·무역·에너지·우주기술·문화 등 다방면에서 협력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99개 조항의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푸틴 대통령은 인도에서 귀국한 직후 소치의 대통령 관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화상 정상회담을 갖는다.

외신은 푸틴 대통령의 인도 방문이 올해 두 번째 해외순방이자 바이든 대통령과 만남 직전에 이뤄졌단 사실에 주목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6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만나 정상회담을 한 뒤 6개월째 칩거 중이었다. 지난 10월말 이탈리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영국 글래스고의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를 건너뛴 것은 물론, 중국 방문 일정도 코로나19로 재조정했다. 그랬던 푸틴 대통령이 인도 뉴델리를 직접 찾아간 것에 대해 모스크바타임스는 “단순한 상징 이상”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모스크바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의 알렉세이 쿠프리야노프는 “대면회의를 개최하는 것이 핵심 전략 파트너로서 인도의 중요성에 대한 러시아의 견해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6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군사협력 10년 연장, 印에 '러시아판 사드' 구축


WSJ는 양국이 정상회담을 통해 군사기술협력을 2031년까지 연장하기로 합의했다면서 “두 나라간 긴밀한 국방협력 수준을 낮추라(downgrade)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러시아는 인도에 54억 달러(약 6조4000억원) 규모의 S-400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계속 공급하기로 확정하는 등 양국의 방위협력을 확대·강화했다. S-400 방공미사일은 2007년부터 러시아군에 실전 배치된 중장거리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으로 ‘러시아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로 불린다. 지난 2018년 푸틴 대통령의 인도 방문 당시 체결한 계약을 토대로 지난달부터 공급을 개시했다.
쿠릴 열도의 일부인 마투아 섬의 바스티온 해안에 설치된 러시아의 미사일 발사대. [AP=연합뉴스]

앞서 미국은 인도가 러시아제 미사일을 도입하면 미군과 인도군 사이의 무기 체계 운용 협력을 저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인도에 계약 취소를 종용해왔다. 미국은 2017년 제정한 ‘통합제재법’에 따라 러시아 등 적대국가로부터 무기를 구매한 나라에 제재를 가할 수 있다. 실제로 2020년 트럼프 행정부는 S-400 방공미사일을 구매한 터키에 대해 미국의 신예 전투기인 F-35 판매를 거부하고 F-35 협력파트너에서 제외시킨 바 있다.

이에 대해 인도 뉴델리의 옵서버리서치재단의 인도·러시아관계 전문가인 난단 운니크리슈난은 “미국과 이스라엘산 최첨단 장비로 중국 방어 체계를 구축하려면 자금이 3배 이상 든다”면서 “미국은 더 큰 그림을 그리는 투쟁에서 잠재적 동맹국(인도)를 해치지 않을 만큼 정교한 나라”라고 말했다. 중국과 국경을 접한 인도가 러시아판 사드를 도입하더라도,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이 이를 크게 제재하지 못할 거란 계산에 따른 인도의 전략적 행보다.

이밖에 이날 양국은 2025년까지 현재 100억 달러(약 11조8000억원) 수준인 연간 교역 규모를 300억 달러(약 35조4000억원)로 늘리기로 합의했다. 또 러시아제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 60만정을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의 코르바시 공장에서 공동 생산하고, 석유 등 에너지 분야에 대한 투자 확대와 원자력 개발 분야 협력도 논의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6일 뉴델리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했다. [AP=연합뉴스]

美의 '고립·제재' 카드에 푸틴 "친구많다" 응수


외신은 “미·러 화상회담 하루 전에 러시아가 인도와 강한 유대관계를 보였다”며 “이는 미국의 외교적 압박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도를 전략적으로 활용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도할 경우 심각한 경제적 대가가 뒤따를 것이란 사실을 경고할 것으로 알려졌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바이든 대통령은 유럽 동맹국들과 연쇄 협의를 하며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 등 다양한 대응 조치를 긴밀하게 조율 중”이라고 말했다.
인도, 미국-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인도는 미국의 대중(對中) 군사견제를 위해 결성된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안보협력체)의 일원이지만, 러시아제 무기의 최대 수입국으로 ‘줄타기 외교’를 해왔다. 아린담 바그치 인도 외교부 대변인은 최근 “인도는 미국과 특별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있으며, 러시아와도 매우 특별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고 말했다. NYT는 “푸틴 대통령이 인도 방문을 통해 러시아에게는 서방 너머에 여전히 많은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린 것”이라고 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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