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화한 美 '베이징 보이콧'..文 참석도, 종전선언도 멀어져

유지혜 입력 2021. 12. 7. 16:15 수정 2021. 12. 7.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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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베이징 겨울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공식화하며 문재인 대통령의 올림픽 계기 방중이나 종전선언 등 문 정부의 임기 말 외교ㆍ안보 구상도 영향을 받게 됐다.

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은 6일(현지시간) “바이든 행정부는 베이징 겨울 올림픽 및 패럴림픽에 외교적 혹은 공식적 대표단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신장에서 벌어지는 (위구르족에 대한)중국의 지속적인 집단학살과 반인도 범죄, 이 밖의 인권 유린이 이유”라고 명확히 했다.
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 EPA/SHAWN THEW. 연합뉴스.


美 보이콧, 中 인권 관심 계기로


베이징 올림픽을 통해 코로나19의 성공적 극복을 세계적으로 과시하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 체제를 공고히 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려던 중국으로선 큰 악재를 만난 셈이다. 보이콧의 결과 자체도 파급력이 크지만, 미국이 보이콧의 이유로 인권을 지목한 것은 그 자체로 중국 내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환기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당장 중국은 “이는 정치적인 속임수로, 그 사람들(미국 관료들)에게는 초청장을 보낸 적도 없고, 오든지 말든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주미 중국 대사관), “보이콧 결정은 미국의 냉전적 사고를 보여주는 것으로, 미국은 스포츠를 정치화하고 대결을 조장하려 한다”(유엔 주재 중국 대표부) 등의 반응을 보이며 반발했다.

미국의 보이콧 공식 발표는 동맹ㆍ우방국들에 대한 우회적 동참 요청의 의미도 있어 보인다. 한국으로서는 예기치 않게 올림픽 문제로 미ㆍ중 사이에서 어느 쪽의 입장을 지지할지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 유엔 주재 중국 대표부는 “이런 시도는 아무런 지지를 얻지 못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는데, 이는 다른 나라들에 미국의 보이콧을 따르지 말라는 경고나 다름없다.


정부 "美 사전 통보, 동참 요구 없어"


이와 관련,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7일 정례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다른 나라 정부의 외교적 결정에 대해서 우리 외교부가 언급할 사항은 없다”며 “다만 베이징 동계 올림픽과 관련해서 우리 정부는 베이징 동계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지지해 왔다”는 기존의 원론적 입장을 반복했다. 보이콧을 검토하는지 여부에 대한 언급조차 없었다. 청와대 관계자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관련 질문에 똑같은 답을 내놨다.

최 대변인은 또 “미 측은 이번 결정에 대해 외교 경로를 통해 우리 측에 미리 알려온 바 있다. 다만 이런 소통 과정에서 보이콧 동참 요구 등 관련 요구를 해온 바는 없다”고 말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이 보이콧 결정을 별도로 알려온 의도에 대해서는 “한ㆍ미 양국은 동맹으로서 상호 자국의 중요 입장이나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 수시로 통보하고 있다. 그 외에 왜 알려왔느냐 등에 대해서는 추가로 말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은 전날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보이콧과 관련해 “공동의 접근(shared approach)에 대해 동맹 및 다른 국가들과 협의(consult)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굳이 발표 전 외교채널을 통해 한국에 보이콧 결정을 미리 알려온 것은 협의 요청의 의미로 볼 소지가 충분하다.
지난 5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봅슬레이·스켈레톤 국가대표팀이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는 중국으로 출국하기 전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 뉴스1.


다른 나라들은 '동참할 거냐'로 해석


실제 캐나다는 미국 발표 직후 “미국의 결정을 통지받았으며, 우리의 파트너 및 동맹들과 협의를 계속하겠다. 캐나다는 중국 내 인권 침해와 관련한 우려스러운 보도들에 깊이 걱정하고 있다”며 이를 협의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도 “올림픽의 의미와 외교적 관계 등을 고려하고, 무엇이 우리의 국익에 최선인지에기반해결정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사전 통지를 단순한 ‘소통’으로 주장하는 한국과 달리 다른 국가들은 대체로 ‘동참할 것이냐’는 질문으로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출범 직후부터 한ㆍ중 관계 개선에 역점을 뒀던 문재인 정부로서는 임기 말 정상급 이벤트의 좋은 무대가 될 수 있는 베이징 올림픽이 미ㆍ중 갈등의 소재가 된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정부가 기대하던 시 주석의 방한은 아직도 성사되지 않았고, 코로나19 상황 등으로 문 대통령 임기 내에 현실화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베이징 올림픽을 제외하면 대면 정상회담의 기회 마련 자체가 쉽지 않다.

하지만 미국이 중국의 인권 유린을 이유로 베이징 올림픽을 보이콧한 마당에 문 대통령이나 다른 정부 고위급 인사가 이를 축하하기 위해 참석하는 데는 신중한 고려가 필요해진 게 사실이다.
지난 9월 한 관계자가 베이징 올림픽 로고를 만지는 모습. AP/Mark Schiefelbein. 연합뉴스.


文 방중 등 고위급서 축하는 부담


이를 의식하듯 중국은 최근 6년 만에 한국 영화 ‘오! 문희’의 중국 내 상영을 허용하는 등 한국을 향한 ‘러브콜’의 수위를 한층 높이고 있다. 지난 2일에는 중국 톈진(天津)에서 서훈 국가안보실장과 양제츠(楊潔?)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 간 회담도 열렸다.

다만 정부 고위 당국자는 회담 뒤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의 (베이징 올림픽)참석 여부를 논의할 단계는 아니다. 좀 더 시간이 필요하고, 사실 (시기적으로 이를 논의하기에는)빠르다”며 “코로나19 상황 등을 봐야 한다”고만 말했다.

문 정부가 임기 말 여념이 없는 종전선언도 한층 멀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남ㆍ북ㆍ미ㆍ중 정상이 만나 종전을 선언, 한반도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평창 어게인’으로 만들자는 게 정부가 내심 기대하는 바였기 때문이다.


文 임기말 주력 종전선언도 멀어져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달 24일 기자들과 만나 “종전선언 문제는 베이징 올림픽을 겨냥해 추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종전선언이 진전된 상태로 남북이 (내년 2월 열리는) 베이징 올림픽에 가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아예 정부 인사 자체를 보내지 않을 예정인 데다 그렇지 않아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제재로 북한 선수단은 베이징 올림픽 출전 자체가 불가능하다.
북한으로서는 베이징 올림픽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일 유인 요인이 더 떨어졌다는 뜻이다. 이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 혹은 북ㆍ중 정상회담만을 위해 방중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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