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류준열의 템포

2021. 12. 7. 15:1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류준열은 매 순간 배우로서의 기쁨을 음미하며 나아가는 중이다.

평소보다 좀 가라앉아 보여요. 아, 그래요? 저 지금 되게 기분 좋은데?

앗, 제가 시작부터 헛다리를…. 요즘 방영 중인 드라마 〈인간실격〉 분위기가 좀 무거워 저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했나 봐요. 음, 연기하는 인물에 따라 마음이 가라앉을 때도 있고, 애써 텐션을 올릴 때도 있긴 해요. 그렇다고 막 역할에 과몰입해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그런 타입은 아니에요.(웃음)

드라마 보는데 전반적인 룩에서 ‘강재’라는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느껴지더라고요. 겉보기엔 모델처럼 멋있지만 동시에 청춘의 한복판에 있는 남자 특유의 어리숙함도 엿보이고요. 패션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걸로 아는데, 인물의 룩을 정하는 과정에 직접 관여했나요? 그렇잖아도 작품 들어가기 전에 스타일리스트랑 대화를 많이 했어요. ‘남들이 뭐라 하든 신경 쓰지 말고 우리는 우리 거 하자’는 마음으로 준비했죠. 기존 드라마에 나오는 남자 배우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게 포인트여서, 머리도 일부러 길렀고요.

아직 2화까지밖에 못 봤지만 두 화만 봐도 요즘 드라마와 다른 노선을 걷는 작품이라는 걸 알겠더군요. 이야기의 리듬이 아주 섬세하게 조율돼 있고 내레이션도 굉장히 문학적이에요. 정확히 보셨네요. 저도 처음 대본 봤을 때 문학 작품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그런 부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했고요. 다행히 허진호 감독님이 이런 면에서 워낙 탁월하신 분이라, 어려운 점은 함께 대화로 풀어가면서 즐겁게 작업했던 것 같아요.

재킷 1백만원대, 베스트 30만원대, 셔츠 17만원대, 팬츠 21만원대, 타이 17만원대, 볼캡 8만원대 모두 폴로 랄프 로렌.

요즘 TV 드라마에 비해 호흡이 많이 느리고 이야기의 문법도 달라 초반 시청률이 잘 나오기 어렵겠다는 생각도 솔직히 들었어요. 작품이 끝나고 나면 명품 드라마로 뒤늦게 재발견될 것 같다는 예감도 들었고요. 시청률 걱정을 안 한다면 거짓말이겠죠. 배우로써 무책임한 일이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기존에 쉽게 볼 수 없는 드라마를 만들어보자는 게 모두의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이 작품의 매력을 알아봐주는 시청자가 분명히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거든요. 우리가 하려는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인생과 맞닿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 그 지점을 잘 파고들어보자는 계산이었죠. 다행히 감독님이랑 전도연 선배가 중심을 잘 잡아줬고요.

허진호와 전도연, 저는 이 조합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한국 영화 키드인데요, 1986년생 배우인 준열 씨에게는 그 존재가 더 크게 다가왔을 것 같아요. 처음 출연 제안을 받고 전도연 선배의 작품을 옛날 것부터 최근 것까지 쭉 살펴봤어요. 그러면서 ‘내가 이렇게 탄탄하게 이력을 쌓아온 배우와 작업을 하는구나’, ‘나는 지금 서른여섯인데 선배는 그 나이에 어땠지’ 그런 것들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허 감독님 영화야 워낙 전부터 좋아했던 터고요.

연기를 하다 보면 상대 배우의 움직임이나 눈빛에 저도 모르게 영향을 받게 되잖아요. 버스에서 두 사람이 스카프를 주고받는 장면을 보는데, 도연 씨의 연기에 준열 씨가 즉흥적으로 반응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서로 합을 맞추고 연기해야 좋은 장면이 나올 때가 있고 반대로 서로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좋은 장면이 나올 때가 있는데요, 도연 선배와는 후자일 때가 더 많았던 것 같아요. 함께 연기하다가 저도 모르게 선배의 연기를 관람하게 되는 순간도 있었고요. 두 배우가 합을 맞추다 보면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는 일이 많은데, 도연 선배는 워낙 눈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는 배우잖아요. 그때마다 좀 홀린다고 해야 하나? 제 대사를 놓칠 때도 있고, 원래 계획했던 연기 방향을 바꿀 때도 있었죠. 저도 모르게 관객이 돼 선배의 연기를 감상하는 거죠.(웃음) 그런 점이 재미있었어요.

2화에서 ‘부정’과 ‘강재’, 두 남녀의 인생이 착착 교차되다가 비로소 포개지는 장면이 엔딩이었어요. 두 인물이 앞으로 서로의 외로움을 점점 더 알아보겠구나, 근데 이 관계가 과연 로맨스로 이어질 수 있을까 궁금해지더라고요. 둘의 관계가 로맨스냐 아니냐는 연기한 저조차 얘기하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어떤 이는 로맨스라 느낄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정이나 동질감, 교감 등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요.

코트 1백만원대, 스웨터 30만원대, 셔츠 17만원대, 팬츠 19만원대 모두 폴로 랄프 로렌.

‘강재’는 역할 대행이라는 일을 하면서 성공의 지름길을 모색하는 인물이에요. 드라마에서 역할 대행이라는 직업을 본격적으로 다룬 건 처음이라 관심 있게 봤는데요, 타인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수준을 넘어 완전히 모르는 타인을 연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감정 노동이 심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맞아요. 역할 대행이라는 게 궁극적으로 지금 현대인의 삶 속에서 부족한 것들을 채워주는 직업이잖아요. 그런 직업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고 봐요. 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해 어떤 퍼포먼스를 요구하거나 감정적으로 위로받는다는 건 이상한 일이니까요. 드라마가 이런 사회적 문제에 대해 뚜렷한 답을 내려줄 순 없겠지만 한 번쯤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만으로도 분명 의미가 있죠.

실제로 데뷔 전까지 안 해본 알바가 없다고 들었어요. 피자 배달, 고깃집 서빙, 편의점 알바까지…. 이런 경험이 인물 해석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네. 도움 많이 돼죠. 전혀 모르는 세계를 탐구하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제가 아는 세계를 표현하는 게 더 수월하니까요. 알바하던 시절 갖고 있던 고민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던 당시의 불안감이 ‘강재’가 처한 상황과 일정 부분 통하기도 하고요.

실제로 배우들을 인터뷰해보면 캐릭터를 분석할 때 과거 자신이 겪었던 경험이나 감정에서 실마리를 찾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이 작품을 선택한 큰 이유 중 하나가 그거예요. 제가 ‘강재’와 같은 시기를 통과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어떤 면에서는 여전히 그 시기에 있는 사람이라고 느껴져서요. 그런 의미에서 ‘강재’를 잘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우로서 지금 내 상태와 비슷한 인물을 연기할 수 있다는 건 보기 드문 행운이니까요.

공백기 동안 미국에서 시간을 보내는가 하면, 평소 찍은 사진을 모아 전시를 열기도 했죠. 배우 류준열을 잠시 벗어나 인간 류준열을 찾아가는 시간이었을까요? 과거의 시간에 대해서라면 매번 생각이 달라지는 편인데요, 일에 지쳐 충전하는 개념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저는 그때그때 재미있는 일을 찾아 몰두하는 타입이라서요. 다만 이런 생각은 자주 해요. ‘아, 그때 내가 왜 그러고 있었지. 다시 돌아간다면 그 시간에 딴 걸 할 텐데….’(웃음) 물론 사진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고요. 사진은 지금도 꾸준히 찍고 있어요. 카메라를 너무 오래 멀리하면 감을 잃어버릴 수 있어서요.

재킷 60만원대, 스웨트셔츠 19만원대, 팬츠 30만원대, 볼캡 8만원대, 벨트 가격미정, 양말 가격미정, 스니커즈 9만원대 모두 폴로 랄프 로렌.

스티븐 쇼어의 컬러 사진을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실제로 준열 씨 사진에서도 그의 영향이 느껴졌는데, 요즘도 그런 취향은 변함없나요? 네, 저는 기본적으로 취향이 잘 안 바뀌는 것 같아요. 나이 들수록 좋아하는 것의 카테고리가 좀 더 세분화될 뿐이죠. 여전히 그의 사진을 좋아하고, 그런 감각을 본받으려 노력해요.

꾸준히 일기를 쓴다고 들었어요. 지금도 계속 쓰고 있나요? 그럼요. 요즘은 평소보다 더 쓰는 것 같아요.

주로 어떤 문체로 쓰는지요? 문체요? 어, 이건 예상치 못한 질문인데….(웃음) 문체 생각하면 너무 창피해서…. 그거 아세요? 그날 읽은 책이 문체에 영향을 주는 거요. 막 따라 쓰게 되고.

그럼요, 알죠. 기사 쓸 때도 그런걸요. 그쵸. 저만 그런 거 아니죠. 그날 읽은 책에 따라 문체가 매번 달라지다 보니 어떤 날은 일기가 소설이 되고 수필이 됐다가 또 산문이 되고 그래요. 그래서 절대로 저만 봐야 해요.

인터뷰 준비하다 놀란 게, 데뷔가 2015년이더라고요. 아직 10년 차도 안 됐다는 게 좀 의외였어요. 체감상 10년은 된 것 같았거든요. 10년이요? 저 데뷔한 지 6년밖에 안 됐는데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그만큼 완연하게 성숙한 배우의 이미지가 있다는 뜻 아닐까요? 뭐랄까, 성공한 대배우의 느낌? 농담이에요.(웃음) 그렇게 보인다니 저한텐 칭찬이죠. 고맙습니다.

Copyright © 코스모폴리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