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곤 칼럼] 문재인·박근혜 정부의 잃어버린 10년

고현곤 입력 2021. 12. 7. 00:39 수정 2021. 12. 7.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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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곤 논설주간 겸 신문제작총괄

친문과 태극기부대 모두 펄쩍 뛰겠지만, 문재인·박근혜 대통령은 여러모로 닮았다. 국민과 소통하지 않았다. 팬덤 정치를 즐기며 국민을 ‘내편 네편’으로 갈랐다. ‘욕하면서 닮는다’는 옛말이 틀린 게 없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 두 대통령은 공통점이 많다. 우선 경제를 잘 모른다. 관심이 적으면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마련이다. 두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정적(政敵) 보복(현 정부는 이를 적폐청산이라 불렀다), 전 정부 정책 뒤집기, 선거 승리, 남북관계, 검찰개혁 등이 꽉 차 있었다. 경제를 만만하게 본 것이다.

박근혜 정부 때 본격 저성장에 접어들고, 양극화가 심해졌으나 위기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박 대통령은 참모들이 쓴 보고서에 의존하다 보니 장밋빛 청사진과 자화자찬에 빠졌다. ‘경제민주화’ 대신 택한 ‘창조경제’에 대해 주무부처조차 그 개념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 문·박, 경제 잘 모르고 사람 잘못 써
공직 사회는 국민 아닌 정권에 충성
10년간 2%대 저성장, 소득 제자리
정권의 성패는 결국 경제에서 갈려

문 대통령은 환경을 중시해 탈원전을 택했다. 분배를 우선해 소득주도 성장을 밀어붙였다. 환경을 보호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는 순진한 마음만으로는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을 이끌 수 없다. 생각처럼 안 풀리면 순진한 마음은 사라지고, 아집만 남게 된다. 소득주도 성장을 지지하는 어느 학자의 말을 듣고 오싹한 일이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다. 분배가 제대로 안 돼서 그렇지, 연간 3만 달러씩 고르게 나눠주면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사회주의 사고에 놀랐다. 3만 달러를 4만~5만 달러로 어떻게 늘릴지에 대한 고민이 없어 더 놀랐다. 4차 산업혁명의 파고 속에 우물 안 개구리처럼 3만 달러에 안주하면 그마저 지키기 어렵게 된다.

경제를 모르면 사람을 잘 써야 하는데, 두 대통령은 그러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에서 일했던 관료나 전문가를 우선 배제했다. 노무현 정부 사람도 멀리했다. 전 정부에서 차관이나 1급을 했다가 부역자로 찍혀 옷을 벗는 일이 흔했다. 직전 10년 정부 사람을 빼고 나니 남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차 떼고 포 떼고, 박 대통령 ‘수첩인사’로 구성한 경제팀은 역대 최약체였다. 선배들의 카리스마와 비전, 돌파력을 찾을 수 없었다. 한국경제 변곡점의 아까운 시간을 그렇게 흘려보냈다.

문 대통령도 인재 풀을 넓게 쓰지 않았다. 진보 경제학에서도 소수 의견인 소득주도 성장 그룹에 한국 경제를 넘겼다. 국민을 상대로 5년 내내 실험을 하도록 했다. 부동산이 발등의 불이었는데도 문외한인 김현미 국토부 장관에게 3년 반이나 맡겼다. 소득주도 성장을 진두지휘했던 장하성(현 주중 대사)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2016년, 이런 칼럼을 썼다.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박근혜 정부 3년째인 2015년 39%다. 한국 경제의 보루인 재정건전성마저 무너질 조짐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그 비율은 47.3%까지 치솟았다. 그는 같은 칼럼에서 ‘(박근혜 정부에서) 국민부채 시대가 열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계부채는 박근혜 정부에서 380조원, 문재인 정부에서 그보다 많은 460조원 늘었다. 이쯤 되면 장 대사가 어찌 된 영문인지 해명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현 정부의 김동연 초대 경제부총리는 대선에 나가려면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를 무리하게 밀어붙인 데 대해 사과부터 해야 한다. 부동산에 대해 그는 “내 뜻을 수용했으면 이렇게까진 안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나친 자기 합리화다. ‘예스맨’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최근 부쩍 반대 의견을 내고 있다. 너무 늦었다. 정권이 끝나 가니 ‘나는 반대했다’는 알리바이를 만든다는 느낌이다. 정승일 한국전력 사장과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원전 재개’를 내비친 것도 낯간지럽다. 지금까지 뭐하다가. 국민이 아닌 정권에 충성하던 공직 사회의 정권 말 씁쓸한 탈출 행렬이다.

문재인·박근혜 정부 10년간 2%대 저성장이 굳어졌다. 1인당 국민총소득은 2013년 2만7351달러에서 지난해 3만1881달러로 연평균 2% 남짓 상승에 그쳤다. 코로나까지 겹쳤으니 운도 없다. 대만은 최근 5년간 연평균 4.5% 성장했다. 이 추세라면 2025년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를 넘어선다(전국경제인연합회 전망). 후세 역사가가 21세기 초반을 논할 때 보수·진보로 나누지 않고, 문재인·박근혜 정부를 한데 묶어 ‘한국 경제의 잃어버린 10년’으로 평가할 가능성이 크다.

정권의 성패는 결국 경제에서 갈린다. 필생의 라이벌 김영삼·김대중 대통령도 1997년 외환위기로 명암이 갈렸다. 김영삼 정부는 외환위기를 초래한 정부로,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를 극복한 정부로 자리매김했다. 그런 면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가 보수의 전유물처럼 여겨진 ‘경제 대통령’을 자처한 건 발빠른 행보다. 역시 수읽기에 능하다. 문제는 진정성이다. ‘아니면 말고’ 식의 공약을 남발하면 신뢰가 떨어진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캠프에는 경제 전문가가 잘 보이지 않는다. 대표 공약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다. 경제가 중요하다고 하면서 머릿속에 다른 게 꽉 차 있거나 아예 경제가 뒷전으로 밀려 있으면 잃어버린 10년이 순식간에 잃어버린 15년이 될 수 있다. 다른 것을 아무리 잘해도 경제를 실패하면 정권은 실패한다.

고현곤 논설주간 겸 신문제작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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