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1st] '울보' 이승모 "힘들 땐 희찬이 형의 위로를 떠올려요"

허인회 기자 2021. 12. 6. 14:30
음성재생 설정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승모(포항스틸러스)

[풋볼리스트=포항] 허인회 기자= 이승모(포항스틸러스)가 시즌 첫 골을 넣고 눈물을 쏟은 장면은 올해 K리그의 명장면 중 하나다. '울보 승모'가 된 이승모는 "자신에게 실망하고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땐 (황)희찬이 형의 위로가 생각난다"며 눈물 대신 미소를 지었다.


지난달 3일 이승모는 강원FC를 상대로 골을 터뜨린 순간 눈물샘이 폭발했다. 두 팔 벌리고 있는 신진호에게 안기자마자 그간 겪은 마음고생이 한꺼번에 생각났다. 작년까지 미드필더였던 그는 올해 팀 사정상 최전방에서 뛰었다. 익숙하지 않은 포지션이었고, 시즌 후반까지 골맛도 못 봤기에 팬들의 질타도 이어졌다. 득점으로 눈물과 마음고생을 한 방에 날려 보낸 경기였다.


이승모는 '풋볼리스트'와 인터뷰를 통해 "그날 이후 감독님도, 형들도 저만 보면 '야 울보'라고 부르더라. 한동안 내 이름이 없어졌다. '울보'가 됐다"고 말했다.


지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8강 당시 준결승 진출을 성공했을 때도 이승모는 혼자 고개를 떨구고 울었다. 후반 12분 이승모의 실수가 빌미가 돼 실점했기 때문이다. '주장' 손흥민, 황희찬 등 형들의 위로 덕분에 마음을 진정할 수 있었다.


이승모는 "당시 스스로에게 실망했다. 팀원들에게도 정말 미안했다. 엄청 중요한 경기였기 때문에 감정이 올라와 눈물이 났다. 흥민이 형이 괜찮다고 말해줬고, 희찬이 형이 특히 많이 위로해줬다. '여기까지 올라온 것도 너 덕분이야'라고 하신 게 가슴에 많이 남았다. 그 위로를 지금도 떠올리곤 한다"고 힘든 시간을 극복할 수 있는 본인만의 방법을 털어놨다.


다음은 이승모 인터뷰 전문


- 본포지션이 아닌 위치에서 뛸 수밖에 없던 한 해였어요. 익숙하지 않은 포지션에서 고생 많았죠. 이번 시즌을 되돌아본다면?


"다 끝나고 보면 무난했던 시즌 같아요. 시즌 중반까지는 너무 힘들다고 생각했죠. 경기력도 안 나오는데 제가 도대체 왜 최전방에 서야 하는지, 부정적인 생각만 들었어요. 그러다가 후반기가 되니 아챔에서 득점도 나왔고 감을 찾기 시작했어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마지막에는 재미있게 뛰었던 것 같아요. 공격도 재밌더라고요."


- 감을 어떻게 찾았어요?


"세밀한 움직임에 대해 알게 됐어요. 시즌 초반에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냥 마음대로 움직였거든요. 감독님 조언을 듣고 경기에 계속 나서다 보니 자연스럽게 움직임이 몸에 배더라고요. 수비 배후 공간 침투하고, 공을 받으러 내려올 때도 여유가 생겼어요."


- 미드필더로 뛸 때와 가장 달랐던 점이 뭐였어요?


"등을 지고 받는 게 처음에는 불안했어요. 미드필더로 뛸 땐 앞을 보면서 축구를 하는데 스트라이커는 수비에게 등을 지고 공을 받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어색했죠. 처음에는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어요. 공이 오면 받기 싫고 무서웠는데 하다 보니 즐기게 됐어요. 전부 경험 부족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 김기동 감독이 '이승모는 스펀지처럼 가르치는 대로 흡수한다'고 하시던데


"감독님이 하신 말씀을 항상 떠올려요. 예를 들어 공을 받든, 못 받든 수비를 끌고 들어가 달라고. 일단 시키는 거 하다 보면 팀에 도움이 되더라고요. 제가 수비 한 명 달고 들어가면 (임)상협이 형에게 공간이 생기고 기회까지 생겼어요. 적극적인 수비 요청도 많이 받았어요. 이것도 잘 모르니까 그냥 시키는대로 했죠."


- 그럼 이승모가 생각하는 이승모의 포지션은 뭔가요?


"공격형 미드필더가 맞는 것 같아요. 원래 수비형 미드필더가 주포지션이었어요. 그 자리에서 오래 뛰었기 때문에 가장 편했어요. 근데 올해 바뀐 것 같아요. 공격수처럼 수비를 끌어낼 수도 있고, 뒤로 빠져서 받을 수도 있어요. 수비 배후 공간을 침투하는 움직임도 이제 익숙해요. 수비는 원래 많이 했던 거라서 장점을 모두 살릴 수 있지 않을까요?"


- 시즌 첫 골이 늦게 터졌잖아요. 마음고생이 많이 심했나요? 눈물을 쏟았는데.


"후련했어요. 당시 감정은 한 마디로 정의를 못 하겠어요. 갑자기 벅차올랐어요. 마음고생 정말 심했거든요. 욕도 많이 먹었고요. 담아뒀던 게 전부 하늘로 날아가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진호 형이 자기한테 안기라고 팔 벌리고 계시더라고요. 그거 보자마자 그냥 벅찼어요. 골 넣은 직후 동료들이 너무 달려들어 이리저리 휘둘린 기억밖에 안 나요. 저랑 친한 (조)성훈이가 자기도 울뻔했다고 하더라고요. 어쩐지 나랑 눈을 안 마주친다 했어."


울었다고 주변에서 안 놀리던가요? 


"그날 이후 감독님도, 형들도 저만 보면 '야 울보~!'라고 부르더라고요. 한동안 제 이름이 없어졌어요. '울보'가 됐죠. 제가 좀 감성적인 것 같아요. 경기 끝나고 감독님 인터뷰 보는데 또 울컥하더라고요."


- 마음에 담아뒀을 정도로 최전방 공격수로 뛰는 게 힘들었으면 감독님에게 포지션 변경을 요청할 법도 한데요. 따로 그런 말씀은 안 드렸나요?


"사실 시즌 초반에 감독님께 카톡으로 상담 요청을 드렸어요. 원래 포지션으로 돌아가고 싶어서요. 근데 감독님이 안 읽으셨어요. 다음날까지도요. 저는 바로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감독님은 따로 생각이 있으셨던 거죠. 제 마음이 진정이 되니 이야기를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팀을 위해 희생을 바라셨겠죠. '이 포지션을 경험해보는 게 너한테도 큰 도움이 될 거다'라고 하셨어요. 욕 먹고 스트레스 받는 와중에도 감독님 말씀을 믿었어요. 우선 시키는 것만 잘하자고 생각했죠. 그러다 보니 점점 잘 됐어요. 자신감도 올라오더라고요."


-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8강 때는 실수 때문에 경기를 이기고도 눈물을 왈칵 쏟았죠.


"그땐 스스로에 대한 실망이 너무 컸어요. 팀원들에게도 정말 미안했고요. 엄청 중요한 경기였기 때문에 감정이 올라와 눈물이 났어요. 흥민이 형이 괜찮다고 말해줬고, 희찬이 형이 특히 많이 위로해주더라고요. '여기까지 올라온 것도 네 덕분이야'라고 하신 게 가슴에 많이 남았어요. 제가 느끼기에 전국민이 제게 욕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때 위로가 정말 많이 됐어요. 지금도 힘들 때는 그 위로를 떠올리곤 해요."


- 결과적으로는 모두 잘 풀렸어요. 아시안게임 8강에서 이긴 뒤 우승까지 했고, 올해는 골을 넣은 뒤에 운 거니까.


"힘든 순간은 언젠가 끝날 거라고 생각해요.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하잖아요. 이 말 엄청 와닿아요. 저에게 잘 맞는 것 같아요. 아시안게임이 힘들었는데 낙이 찾아왔죠, 리그에서도 힘들었는데 낙이 찾아왔죠."


- 눈물은 그만 흘리고 싶을 것 같은데.


"매경기 웃고 싶죠. 지금은 멘탈적으로 단단해졌다고 느껴요. 마음이 여린 타입이라 원래 상처를 잘 받긴 하는데 단련이 됐어요. 저 욕도 많이 먹어 봤잖아요. 나이 들수록 점점 강해지지 않을까요?"


- 아챔 결승에 못 따라간 건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쉬웠을 것 같아요. 경기는 한국에서 TV로 봤나요?


"그날 포항에 있는 영화관에서 결승전을 상영했어요. 팬분들을 위한 행사였죠. 저도 몰래 갔어요. 15초 만에 실점하는 거 보고 주저앉았어요. 제가 맨 뒤에서 서서 봤거든요. 프론트 형이 뒤에서 혼자 조용히 보다가 오라고 하셔서요. 결국 전반전만 거기서 봤어요. 다행히 안 들키고 잘 봤어요. 후반전은 집에 가서 TV로 봤어요."


- 중고등학교 모두 포항 유스팀을 나왔어요. 포항은 이승모에게 특별한 의미일 것 같은데요.


"이제 집 같죠. 광주FC에 임대도 가봤지만 포항이 정말 편한 것 같아요. 도시도 적응이 됐고요. 저를 키워준 제2의 고향 같은 곳이랄까. (원래 고향은 어딘데요?) 파주요. (대표팀 소집되면 편하겠네요) 집에서 파주NFC까지 5분 정도면 가요. 엄청 가까워요. (점심을 집에서 먹고 와도 되겠어요) 그쵸."


이승모(포항스틸러스)

※ 인터뷰 중 초등학생 팬들이 대거 등장했다. '아저씨 포항스틸러스 이승모 아니에요?'라고 묻더니 단체 사진 촬영과 함께 미니 팬사인회가 진행됐다. 이승모를 몰라봤던 카페 사장님도 얼떨결에 사인을 받으려고 줄을 섰다.


- 꼬마 팬이 많네요. 포항의 슈퍼스타 느낌인데.


"요즘 봉사활동 때문에 초등학생들을 자주 봐요. 그래서 초등학생 애들한테 인기가 많은 것 같아요. 제가 또 잘해주거든요. (초등학생한테만 인기가 많나요?) 포항에는 저를 잘 챙겨주시는 팬들이 많아요. 1년 차 때부터요. 꼽을 수 있을 정도예요. 감사한 분들 이름 꼭 기사에 넣어주세요. 김진경 누님, 소녀 팬 중에서는 김예은, 심현. 엄청 감사하죠. 솔직히 길 돌아다닐 때 팬분들이 저를 자주 알아보진 못했요. 오늘 같은 일은 어쩌다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정도."


사진= 풋볼리스트, 한국프로축구연맹, 대한축구협회 제공

Copyright © 풋볼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