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1가구 1주택'이라는 망상

이종선 2021. 12. 6.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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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선 경제부 기자


서울 시내 시가 26억원짜리 아파트 한 채를 가진 68세 어르신 A씨가 있다. 1가구 1주택자에 해당한다. 그리고 12억원, 13억원 하는 아파트 각각 한 채씩 총 두 채를 가진 B씨가 있다. 올해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고지 대상인 A씨와 B씨 가운데 누가 더 많은 종부세를 내야 할까? 눈치 빠른 사람들은 알아챘겠지만 B씨가 더 많이 낸다. 그것도 무려 23배 많이. A씨와 B씨의 사례는 기획재정부가 올해 주택분 종부세 고지서가 나간 뒤 세금 폭탄이라는 언론 보도가 쏟아지자 이에 대한 해명 차원에서 낸 보도자료에 있는 예시다.

A씨가 장기보유 공제와 고령자 공제를 모두 적용받았다는 점은 감안해야 하겠지만, 그래도 A씨보다 자산 가액이 1억원 적은 B씨가 세금은 23배 더 많이 내야 한다는 사실은 놀랍다. 보다 무서운 건 정부가 이런 사례가 마치 자연스러운 결과인 듯 당당하게 예시로 소개했다는 점이다. 1가구 1주택자의 종부세 부담이 생각보다 무겁지 않다는 걸 부각하고 싶었겠지만, 단지 주택 수 하나 더 많다는 이유로 23배 많은 세금을 부담하는 게 정부는 당연하다고 여겼던 걸까.

그러고 보면 이번 정부에서는 유독 1가구 1주택을 강조해왔다. 국회 인사청문회 시즌만 되면 고위 공직자와 그 가족이 주택을 몇 채 가졌는지부터가 검증 포인트가 됐다. 공직자의 과도한 치부(致富)는 당연히 견제해야겠지만, 법적 근거가 없는 ‘1가구 1주택’이 마치 청백리의 상징이라도 되는 듯 금과옥조처럼 떠받드는 모습은 어딘가 전근대적이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1주택자가 되기 위해 청문회 직전에 부랴부랴 자녀에게 집을 한 채 증여했다가 그 사실이 들통나 곤욕을 치른 장관 후보자도 있었다.

따지고 보면 주택을 여러 채 가진 게 범죄는 아니다. 정부가 주택을 여러 채 보유하라 권장할 수는 없겠지만, 주택 수에 따라 내야 할 세금이 수십 배 차이 날 정도로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것이 과연 사회적 공감대를 거친 결과인지는 의문이다.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돌파해 우리도 이제 선진국에 들어섰다고 자평하는 정부가 1960년대 산아제한같이 주택 수를 제한하는 모습은 앞뒤가 안 맞는다.

정부 초기에야 집값 상승 원인이 다주택자의 투기에 있었다고 봤으니 그렇다 치자. 그사이 정부도 부동산 시장 불안 원인이 공급 부족에 있다는 걸 깨닫고 지난해부터 공급 확대로 정책 기조를 전환했다. 그런데 ‘1가구 1주택 주의’는 오히려 더 강화했다. 다주택자의 최고세율은 두 배 이상 높인 반면, 양도소득세나 종부세 완화 조치는 전부 1가구 1주택만 대상으로 했다.

그런데 모두가 1가구 1주택이 되도록 하는 것이 과연 능사일까. 기재부 자료에 소개된 A씨와 B씨 얘기로 돌아가 보자. 정부로서는 1주택자인 A씨를 더 바람직하게 보겠지만, 주택 임대차 시장의 관점에서 보면 어쨌든 사회적 효용을 더 높이는 사람은 B씨다. A씨야 임대차 공급에 아무런 기여도 안 하지만, B씨는 최소 두 채 중 한 채는 누군가에게 전세나 월세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공짜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그로 인해 누군가는 집값보다 싼 가격에 서울에 살 수 있다. 요즘 같이 임대차 시장 불안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B씨 같은 사례가 오히려 귀하다.

모든 가구가 집을 1채씩만 보유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장 전월세 공급이 없으니 취업, 결혼, 대학 진학 등으로 새 거처를 마련해야 하는 사람들이 거처를 구하기 어렵게 된다. 집을 사야 하지만 나가려는 사람이 없으니 매물이 나오질 않는다. 한 집에서 사실상 평생 살아야 한다. 집이 낡아 재건축하고 싶어도 그사이에 이주해 살 곳이 마땅치 않으니 재건축도 잘 안 되고 도시가 노후화된다. 정부가 공공임대주택 많이 지어서 이런 수요를 책임지면 된다고? 턱도 없는 소리다. 이번 정부에서 공공임대주택을 그나마 많이 늘린 결과가 전체 주택의 겨우 9% 수준이다.

이종선 경제부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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