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ESG 개념의 진화, 시대적 의미와 전망
만물유전(萬物流轉)이다.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근세 이전 중상주의(重商主義)는 1차 산업혁명(1760~1830)에서 산업자본주의에 자리를 내줬다. 2차 산업혁명(1870~1930)은 기업자본주의와 금융자본주의를 탄생시켰다. 20세기 말 3차 산업혁명은 정보자본주의 시대를 열었다. 4차 산업혁명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부활시켰다. 환경·사회·거버넌스의 ESG 개념은 자본주의 수정과정에서 탄생한 기업의 생존전략이다. 기후 복합위기 대응의 절박한 요구와 4차 산업혁명의 기술혁신과도 맞물렸다. 글로벌 투자 고수들이 ESG 깃발을 든 이유다.
영국의 1차 산업혁명 때 7살짜리 어린이와 여성들도 초저임금으로 노동시장에 투입된다. 감리교를 창시한 존 웨슬리 목사는 1760년 ‘돈의 사용’ 설교에서 “생명을 희생하거나 건강을 희생해 돈을 벌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2차 산업혁명의 본고장인 미국은 ‘기업의, 기업에 의한, 기업을 위한’ 나라로 패러디할 정도로 기업 국가가 됐다. 1911년 스탠더드오일사가 반독점법에 의거해 분할될 때, 존 D. 록펠러는 “세상은 석유가 있어 돌아간다. 당신들은 그걸 독점이라 하고 나는 기업이라 한다”고 했다. 한편 1913년 설립된 록펠러재단은 6대를 이어가며 세계 의료·교육·과학연구를 후원한 기부천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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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진화하며
ESG, 기업 생존전략으로 떠올라
기후복합위기와 4차혁명 맞아
한국은 특단의 실행체제 필요
」
20세기 후반 기업의 교조는 밀턴 프리드먼이 주창한 주주자본주의였다. 그런 때 클라우스 슈밥은 1971년 세계경제포럼(WEF) 창립포럼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윤리강령을 선포한다. ‘기업이 가치 창출과 공유에서 고용인, 고객, 공급자, 커뮤니티, 사회 전반으로 대상을 확장해야 한다’는 요지였다.
1987년 브룬트란트위원회가 공표한 지속가능발전 개념은 패러다임의 문명사적 전환이었다. 1994년에는 지속가능소비와생산(SCP) 개념이 태동하고, 2002년 실행계획이 나온다. 한국은 2000년 대통령 직속 국가지속가능발전위원회 설치, 2002년 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KBCSD) 설립을 했다.
1990년대에는 사회적 책임(CSR)이 확산된다. 1953년 미국 경제학자 하워드 보웬이 제시했으나, 아치 캐롤 교수가 기업의 경제·법률·윤리·사회공헌 책임을 피라미드 모델로 발표하면서 활성화된다. 1997년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로 기업은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2011년 마이클 포터 교수는 기업경영에서의 공유가치 창출 강조로 CSV 개념을 창안했다.
ESG가 공식용어로 등장한 것은 2004년이다.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의 지속가능발전 금융 이니셔티브로 발간된 보고서(‘Who Cares Wins’)에서였다. ESG는 2006년 UN 책임투자원칙(PRI)의 6개 중 하나로 들어갔다. 같은 해 록펠러재단은 사회적·환경적 요인을 강조한 ‘임팩트 투자 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2014년에는 RE100 이니셔티브가 등장한다. 기업이 100% 재생에너지 사용을 실행하거나 REC(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 구매로 대체하는 제도다. 2015년에는 반기문 UN 사무총장 주도로 UN SDGs가 공표되고, 신기후체제로 파리협정이 체결돼 올해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2015년에는 또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협의체(TCFD)가 발족된다. 기업이 지배구조·전략·리스크관리·지표및목표치의 4개 항목을 공개해 기후변화 위험과 기회를 경영에 반영토록 한 것인데, 78개국 2000여개 기관이 지지선언을 했다,
2019년 미국에서는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이 이해관계자를 고려할 것을 선언하고, 영국에서는 FT가 ‘자본주의. 리셋할 때’ 캠페인을 전개한다. 2020년 WEF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업 목표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부활시켰다. 경제적 불평등과 기후위기 등을 해결하려면 자본주의 리폼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ESG 강풍은 운용자산액 8조6800억달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의 연두서한에서 불어왔다. 그는 2020년 “지속가능성을 투자 최우선 순위로 삼겠다”, 2021년 “2050년 넷제로 달성 목표에 부합하는 사업계획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기후리스크가 투자리스크가 됐지만 투자기회로 만들 수도 있다면서, 지속가능성과 ESG를 고려한 투자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빠르게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SG 바람은 슬그머니 사라질 이슈가 아니다. 개별 기업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이슈도 아니다. 기업에 일자리가 있고,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은 소비자가 쓴다. 그러니 모든 경제주체가 함께 탄소중립·수소경제·그린뉴딜·지속가능발전·ESG 구현에 나서야 한다. 민관 파트너십으로 법적·제도적·기술적 기반을 구축하려면 분야간·주체간의 통합적 접근과 모니터링·피드백이 필수다. 정부의 역할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자 촉진자다. 현행 부처별·위원회별로 칸막이를 친 체제를 한 차원 끌어올리는 결단이 필요하다. 앞으로 대통령을 의장으로 관계부처 장관과 관련 위원회 위원장 등을 민간위원으로 하는 플래그십 회의체를 구축하는 특단의 실행체제를 제안한다.
김명자 서울국제포럼 회장·한국과총 명예회장·전 환경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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