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 책임진다더니 급할 땐 '나몰라 정부' [장세정의 시선]
세금으로 공짜 정책 선심 썼지만
정작 국민 안전은 못 지켜 주더니
무능 경찰엔 형사면책조항 신설
"모든 신규 확진자 재택치료 원칙"
코로나 대응 실패 책임 국민에 전가
포퓰리즘으로 국민 자유 크게 위축
2017년 5월 출범하면서 문재인 정부는 5대 국정 목표의 하나로 '내 삶을 책임지는 정부'를 내걸었다. 이 국정 목표 아래에 ^모두가 누리는 포용적 복지국가 ^국가가 책임지는 보육과 교육 ^국민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안심 사회 ^노동존중·성평등을 포함한 차별 없는 공정사회 ^자유와 창의가 넘치는 문화국가 등 5가지를 실천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가 내 삶을 책임져준다는 구호는 달콤한 유혹이다. 얼핏 보기엔 뭐든지 다 해줄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빈부 격차가 커지며 양극화된 사회에서 어려움에 부닥친 사회적 약자 계층은 이런 포퓰리즘 구호에 쉽게 현혹된다. 일반 국민도 갈수록 옥석을 가리기 쉽지 않다.
하지만 공짜는 없는 법이다. 문 정부는 공짜로 착각하기 쉬운 각종 복지 지출을 무리하게 확대해왔다. 예컨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내세운 '문재인 케어' 시행 이후 비싼 MRI를 찍는 두통 환자가 42배 늘었다. 건강 보험을 적용해주니 공짜라는 생각에 너도나도 MRI를 찍다 보니 건보 재정이 축날 수밖에 없다. 결국 시차를 두고 건보료 인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한다며 올해부터 고교 전면 무상 교육을 시행했다. 조희연 서울 교육감은 600억원을 들여 중1들에게 태블릿PC를 내년에 무상으로 지급한다. 학생 수가 줄어도 내국세의 20.79%를 무조건 떼어가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넘쳐나니 전교조 교육감들의 매표 행위가 노골적이다. 그런데도 '국고 지기'라는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은 나사가 풀렸다.
지난해 1월 시작된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퍼주기가 일상이 되면서 정부의 씀씀이는 헤퍼지고, 국민에 대한 영향력은 더 커졌다. 식당·카페를 드나드는 국민 개개인의 동선을 낱낱이 기록했다. 정부의 권한은 커지고 민간의 자유와 자율은 위축됐으니 중국처럼 국진민퇴(國進民退) 현상이 벌어졌다.
4·15 총선 이후 민주당의 입법독주는 무소불위 정부에 날개를 달아줬다. 거대 여당과 일방통행 정부의 처방은 현실과 거꾸로 갔다. '임대차 3법'은 전세와 월세 난민을 양산했다. 그런데도 파이 키우기보다 선심성 나눠주기에 혈안이다. 가진 자에게서 빼앗아 못 가진 자에게 나눠주는 '약탈적 포퓰리즘'이 횡행한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는 은퇴자들에게 가혹한 징벌이 되면서 임대료 상승을 자극할 것이다.
이제 정부는 내 삶의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일상을 좌지우지한다. 그렇다면 국민은 더 행복해졌고, 더 안전해졌을까. 층간소음 분쟁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피해자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했다. 데이트 폭력 현장에 신속히 출동하지 않아 여성이 숨지는 비극이 벌어졌다. '큰 정부'의 참담한 실패다.
그런데 지난달 29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경찰관의 형사상 면책조항을 신설하는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9일 본회의를 통과하면 경찰관이 직무수행 과정에서 피해를 줬더라도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었다는 게 증명되면 형사책임을 감경 또는 면제받는다. 헛발질하고 사고 친 경찰에 칼을 더 쥐여주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검·경 수사권 조정 몰아치기 과정에서 우려됐던 '경찰 공화국'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경찰권이 남용되면 국민의 자유는 더 위축될 것이다.
2년 만에 열린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는 여러모로 실망스러웠다. '대장동 게이트'와 부동산 실정, 코로나 대응 실패로 도탄에 빠진 민생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패널들이 다수 국민의 궁금증을 균형 있게 대변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오죽했으면 "팬클럽 모임 같다"는 댓글이 붙었을까. 탁현민 연출의 한국판 '트루먼 쇼'가 떠올랐다.
재임 기간의 최대 성과를 묻자 문 대통령은 "K-방역을 비롯해 경제·민주주의·보건의료·문화·외교·국방력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이 세계 톱10으로 인정받을 만큼 높아졌다"고 자평했다. 그 무렵 하루 확진자는 3000명을 웃돌았다.
국민과의 대화가 끝난 이후 지난달 29일 정부 발표는 충격적이었다. 중환자 병상이 부족하니 신규 코로나 확진자는 모두 재택치료가 원칙이라고 선언했다. 확진자 급증을 예상하고도 병상을 제때 마련하지 못해 놓고 인제 와서 명백한 대응 실패의 책임을 국민에 전가했다. 국민의 의료 선택권을 제약하면서 아무런 사과도 없는 태연함에 소름이 돋았다. 국민의 삶을 책임져주니 이 정도 대가는 감수하라는 것인가. 퍼주기에 길들여진 우리는 지금 국민의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을 쥔 '공룡 정부' 밑에서 살고 있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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