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의 나우 인 재팬] '미국 요구' 등에 업고 방위력 강화 나선 日..中과 대리전?
“일본은 동맹 및 지역의 안전보장을 한층 강화하기 위해 자신(일본)의 방위력을 강화할 것을 결의했다.”
지난 4월 16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당시 일본 총리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 후 발표한 공동성명엔 이같은 내용이 포함됐다. 양국이 합의한 사안을 주로 담는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우리) 방위력을 키우겠다”는 ‘다짐’ 비슷한 내용이 들어 있어 화제가 됐다. 외교가에선 “역대 미·일 정상회담 성명에서 찾아볼 수 없던 적극적 문구”라는 평이 나왔다.
일본은 이후 이 다짐을 차곡차곡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 10월 취임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총대를 멘 모양새다. 지난달 26일 일본 국무회의(각의)를 통과한 35조9895억엔(약 376조원)의 추가경정예산에는 추경으로는 역대 최고인 7738억엔(약 8조원)의 방위비가 포함됐다. 기존 예산인 5조3422억엔과 합치면 6조1160억엔(약 63조8901억원)으로, 처음으로 방위비가 6조엔을 넘어설 전망이다.
일본 방위비는 1976년 미키 다케오(三木武夫) 당시 총리가 군국주의 방지를 명목으로 ‘방위비=국내총생산(GDP)의 1% 미만’이란 기준을 세운 후 대체로 이를 따라 왔다. 하지만 지난 2012년 제2차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들어선 후엔 이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증가하는 추세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추경을 합치면 일본의 방위비는 2012년 이후 여덟번이나 GDP의 1%를 넘었다. 집권 자민당은 지난 10월 말 중의원 선거에서 방위비를 ‘GDP 대비 2% 이상’까지 올리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미국 “일본, 더 큰 역할 해야”
일본 정부는 방위비 증액의 이유로 주변 안보환경의 악화를 든다. 중국의 군비 증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등에 대비하기 위해선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방위성은 올해 발간한 방위백서에서 구매력 기준으로 환산했을 때 러시아나 한국의 방위비가 이미 일본 방위비를 넘어섰다는 내용을 넣어 증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뒤에는 미국이 버티고 있다. 미국은 대중 전략에 일본이 더 큰 역할을 하기를 지속해서 요구해왔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10월 초 기시다 일본 총리와의 첫 전화 회담에서도 일본의 방위비 증액 방침에 기대를 표명했다. 전임자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일본이 공격을 받으면 미국은 생명과 재산을 걸고 일본을 위해 싸우겠지만, 일본인들은 소니TV로 전쟁을 지켜만 보면 된다”고 비꼬며 노골적으로 방위력 강화를 압박했다.
현재 일본의 방위력 증강 움직임은 이같은 미국의 ‘등 떠밀기’에 일본 보수파의 욕망이 화답한 결과물이다. 도쿄의 한 군사전문가는 “일본에 중국 대응의 상당 부분을 부담시키고 싶은 미국과, 평화헌법의 틀에서 벗어나 ‘군사적 보통국가’를 추구하는 자민당 보수층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며 “일본의 군비 증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시다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 검토”
이런 일본 방위력 강화의 핵심에 있는 개념이 ‘적 기지 공격 능력’이다. 아베 총리는 북한·중국 등의 탄도미사일 능력 향상에 맞서 일본도 공격을 받기 전 상대의 거점 기지를 선제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일본이 2020년대 말까지 사거리 1000㎞ 이상의 장거리 순항미사일을 개발해 배치하기로 한 것도 그 일환이다. 일본이 현재 보유한 미사일은 사거리가 100~200㎞에 그쳐, 북한·중국 등의 위협에 대비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기시다 총리도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에 대해 “어떤 선택지도 배제하지 않고 검토하겠다”며 의욕을 보인다. 방위성은 아예 2022년 말 개정하는 국가안전보장전략(NSS)에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를 명기하고, 중장기 방위전력을 담은 방위대강과 5년 단위 세부 계획인 중기 방위력 정비계획에도 이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는 일본 헌법이 규정한 전수방위(專守防衛·공격을 받은 경우에만 방위력 행사) 원칙을 명백히 위배한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다. 야당은 물론 연립 여당인 공명당도 추진에 소극적인 입장이다.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는 헌법 9조 개정까지 이어지는 사안으로, 일본 내 반대는 물론 중국·한국 등 주변국의 반발을 부를 수밖에 없다.
중국 “대만 건드리면 타 죽을 것”
최근 중국이 일본 정부를 향해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아베 전 총리가 지난 1일 대만 싱크탱크가 주최한 행사에서 “대만의 유사(有事ㆍ전쟁 등 비상사태)는 일본의 유사이며, 미·일 동맹의 유사”라는 말로 양안 분쟁 시 일본이 개입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히자 강하게 반발했다. 한밤중에 주중 일본대사를 초치한 것은 물론 “중국의 마지노선에 도전하면 머리가 깨져 피가 흐를 것”, “불장난을 하다 스스로 불에 타 죽게 될 것” 등 원색적인 표현으로 항의했다.
중·일 관계 전문가인 소에야 요시히데(添谷芳秀) 게이오대 명예교수는 “중국은 기본적으로 미·일동맹을 인정하는 입장이지만, 대만을 건드리는 것에 대해선 극도로 예민하다”면서 “기시다 총리가 아베 등 자민당 내 보수파를 그대로 따르는 것으로 보고 경고의 목소리를 낸 것”으로 해석했다. 소에야 교수는 그러나 “기시다 총리는 친중파인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외무상 임명을 강행하는 등 아베와는 기본 노선이 다르다”면서 “향후 정국에 따라 ‘미국도 중요하지만 중국도 중요하다’는 원칙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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