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세, 위험 무릅쓰고 조카네 결혼식 다녀온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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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자 기자]
12월 초인 어제,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6시에 일어나 보온병에 물부터 끓여 담는다. 70대 후반인 나는 유난히 요즈음 입안이 마르고 목 마름이 잦다. 겨울에는 특히 어디를 가더라로 더운 물을 마셔야지 추위도 견디고 뜨거운 물을 마시면 갈증도 멈출 수 있어 좋다. 나이 탓인지 몸 여기저기에서 모자란 걸 채워 달라는 신호를 보낸다.
조카의 아들 결혼식이 있었다. 의정부에서 한다고 한다. 전북 군산에 사는 우리 부부는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부터 알람을 맞추고 일어나 서둘렀다. 젊어서와 달리 새벽에 일어나 여행하듯 먼길을 나서는 일이 힘겨워진다.
엊그제 큰집의 맏딸인 조카에게서 모바일 청첩장이 왔다. 요즈음에는 결혼식도 청첩장을 거의 카카오톡으로 보낸다. 참 사람 사는 일이 편리해졌다.
매일 코로나19 확진자가 오천 명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유행 초반엔 백 명만 넘어도 화들짝 놀랐으나 시간이 지난 지금은 만성이 된 듯 무감각해진 느낌이다. 얼마 전에는 위드 코로나 발표까지 하고 이젠 일상으로 돌아가나 보다 싶어 반가웠으나 기뻐한 순간은 잠깐이었다.
코로나19 새 변이인 오미크론이 무섭게 번지고 있어 세계 각국에서는 다시금 국경 봉쇄 조치를 한다. 사람들은 긴장하며 걱정이 많다. 왜 이처럼 이름도 모를 병이 자꾸 인간을 공격하는지, 다시 찾아오는 병들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의료계는 고민이 깊어지고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코로나19 관련 노인 사망률이 높다는 티브이 뉴스를 보면서 나는 마음이 흔들린다. "여보 어떡해? 우리 결혼식을 가야 해? 아니면 말아야 해?" 걱정이 된다. 들리는 소식으로 전주에 살고 있는 남편 동생인 작은 집 부부도 가지 않는다고 한다. 동서가 아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모두가 조심을 한다.
우리는 우리의 안위를 걱정하지만 조카는 한 번뿐인 아들 결혼식을 잘 마쳐야 한다. 그 어려운 마음을 헤아려본다.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결혼을 미룰 수도 없는 일이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의 삶의 시간표 대로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고 우리 부부마저 가지 않으면 친척들 중 갈 사람이 드물다. 남편은 한번 가기로 했으니 가자고, 결론을 내렸으니 가야 한단다. 결혼식은 멀리 의정부에서 한다고 하니 준비를 단단히 했다. 마스크도 제일 두꺼운 KF 94를 챙기고 그 위에 천으로 된 마스크를 하나 더 썼다.
오전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겨울 아침이라서 어둠은 가시지 않았고 날씨는 쌀쌀하다. 버스는 28인승 리무진을 불렀지만 타고 갈 사람은 큰집 시숙과 아들인 조카네 가족, 세 사람 우리 부부 두 사람, 신랑 친구 한 사람이다. 큰집 형님도 건강이 좋지 않아 참석을 못하셨다. 버스는 혼주가 살고 있는 전주를 향해 달린다. 창밖은 서서히 어둠이 걷히며 동쪽에서 해가 떠오른다.
조촐하고 조용한 결혼식
▲ 자료사진 |
ⓒ unsplash |
무려 5시간을 거쳐 의정부에 있는 결혼식장에 도착을 하고 결혼식을 조촐하게 치렀다. 다른 때 같으면 식장 안은 사람으로 붐볐을 테지만, 가족과 가까운 친구 몇 사람 등만 보였다. 결혼식도 주례사 없이 신랑 아버지의 덕담 인사말로 대신하고 짧게 마무리했다.
결혼식을 끝내고 밥 먹고 군산으로 시계는 오후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차를 너무 오래 탄 탓인지 집에 온 후에도 어질어질하고 버스를 탄 느낌이다. 결혼식이 있어 오래 동안 보지 못한 조카들을 만난 것은 반가운 일이다. 나이 든 우리는 이제 자꾸 사람을 만나는 일이 줄어드니까.
코로나가 오면서 사람 사는 모습도, 결혼 풍습도, 장례문화도 예전과는 정말 다른 양상이다. 이제는 정말 모든 것이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을 실감한다. 앞으로 얼마나 세상이 더 달라질까. 끝날 뜻 끝나지 않는 코로나 시대에 마음이 동요하는 건 나뿐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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