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해 애들 키우고 땅 샀다"..제주 먹여 살린 해녀의 밥상 [e슐랭 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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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이~’ 숨비소리 4시간…제철 뿔소라 70㎏ 묵직
‘호오이~ 호오이~’ 지난달 1일 오후 3시 제주시 도두동 앞바다. 돌고래가 내는 듯한 높은 톤의 숨비소리가 연신 바다를 울렸다. 숨비소리는 해녀가 물속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며 1~3분 정도 숨을 참은 후 물 밖에서 내뱉는 소리다. 잠수하면서 생긴 이산화탄소를 한꺼번에 내뿜고 공기 중 산소를 들이마시는 생명의 소리이기도 하다. 이날 짧지만 강한 숨비소리를 토해낸 주인공은 55년간 물질을 해온 해녀 양순옥(68)씨다.
이날 양씨는 물에서 나오자마자 “이거 호끔(좀) 잡아주라게. 무거운 게~”라며 기자에게 말을 걸었다. 그가 건넨 것은 성인 몸통만하게 두툼히 채워진 망태기. 이후에도 양씨는 물속에 손을 넣더니 “이 것도~ 또 이거도” 하면서 두 자루를 더 건네왔다.
세 자루의 망태기 안에는 뾰족뾰족 뿔이 난 뿔소라가 가득 들어있었다. 양씨가 4시간여 동안 잡은 뿔소라는 약 70㎏. 엄청난 뿔소라의 양에 놀라는 표정을 보며 “놀라지 말라”고 했다. “10년 전만해도 한번 물질에 나서면 하루 100㎏을 넘게 잡는 날도 자주 있었다고 한다. 2006년 제주시가 선정한 올해의 ‘최우수 잠수’ 타이틀을 가진 대표 해녀다운 여유가 느껴졌다.
최우수 해녀 출신…55년 경력의 대상군 해녀
이웃 해녀인 강정선(62)씨는 “순옥이 언니는 제주해녀 상군 중의 ‘대상군’이라 한번 물질에 나서면 남들의 곱빼기 일을 해 젊은 해녀들도 따라갈 수 없다”고 말했다. 3~4대가 음식을 잘한다고 소문난 집안의 딸이어서 해녀들도 모두 그녀의 손맛을 인정한다고 했다.
‘상군’은 10m 이상의 깊은 바다를 주무대로 하는 물질 실력이 가장 뛰어난 해녀를 말한다. 상군급 해녀는 한 번에 3시간에서 7시간까지 물질을 하며, 많게는 300~400차례에 걸쳐 잠수를 한다. ‘대상군’은 상군 해녀 가운데서도 으뜸이 된다는 명예가 담긴 존칭이다. 강씨는 “3~5m 깊이에서 물질하는 똥군(하군)에서 5~10m 깊이를 넘나드는 중군이 되는 것은 노력으로 가능하지만 폐활량 등 선천적 신체조건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중군에서 상군이 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제철 뿔소라요리…된장육수 ‘물회’
뿔소라 물회를 맛있게 먹는 법은 따뜻한 밥과 함께 먹는 것. 뜨끈한 쌀밥 한알 한알마다 차가운 된장 육수가 맛을 코팅한듯한 느낌이다. 싱싱한 생물 뿔소라가 입안에서 오도독 오도독 춤을 추는 듯한 식감을 느낄 수 있다. 물회와 밥을 따로 먹다 밥이 반쯤 남으면 물회에 밥을 말아먹어도 색다른 맛을 경험할 수 있다.
전복+뿔소라, 밥도둑으로 ‘게우젓’
여기에 다진마늘 조금과 설탕 조금, 고명으로 홍고추를 얹어내면 환상적인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을 맛볼 수 있다. 농익은 전복내장의 짭짤한 바다향과 오드득 거리는 뿔소라가 함께 입안으로 들어가면 밥 한술이 저절로 따른다.
뿔소라 구이 ‘바다가 주는 자연의 맛’
양씨 남편인 부태신(68) 제주시 도두어촌계장은 소라구이에 대해 “예로부터 제주바다가 주는 가장 자연에 가까운 맛”이라고 했다. 또 “과거 해녀 어머니들이 뿔소라를 잡아 판 돈으로 아이들 학자금을 대주고, 일본에 수출까지 해 제주도를 먹여살렸다”고 추억했다.
제주 제사상 오르는 ‘뿔소라꼬치’도 특미
뿔소라꼬치도 빼놓을 수 없는 별미다. 뿔소라꼬치는 일종의 산적(散炙)이다. 제주도의 대표적인 제사음식이지만 남녀노소에게 인기가 높아 식당에서도 팔곤한다. 한 꼬치를 만들려면 보통 3~4마리의 뿔소라가 필요한데 부드러운면서도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뿔소라 살을 삶은 후 썰어 꼬치에 끼워 기름에 튀기듯 구워내면 감칠맛이 폭발하는 별미가 된다.
양씨는 “예로부터 제주해녀들이 뿔소라 잡앙(잡아서) 집도 사고 땅도 사고, 엔화도 벌어 아이들을 잘 키웠다”며 “해녀들이 목숨 걸고, 숨 참으며 잡아낸 뿔소라가 좋은 먹거리로 더 많은 이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제주=최충일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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