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암에도 불속 뛰어들려던 동료의 죽음..소방관이 펜 든 이유
“숨 가쁜 황색선을 넘나들어 안개 속으로, 가냘픈 수관에 호흡을 기댄 채.”
민병문(60) 소방위는 30년 소방관 생활을 자신이 쓴 시의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화마와 싸우고 사람을 구조하기 위해 늘 황색으로 그려진 중앙선을 넘어 긴급출동을 해온 모습을 담아낸 구절이다. 그는 “소방관은 이처럼 목숨을 내놓고 산다”면서도 “다시 직업을 선택해도 소방관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년퇴직을 6개월 앞둔 민 소방위는 지난 6월 시집 ‘황색선을 넘나들며’를 세상에 내놨다. 30년 소방관 생활의 애환을 담은 53편의 시를 엮은 시집이다. 소방관의 유족을 위해 수익금 전액을 기부한다는 시인 소방관을 지난 3일 과천119안전센터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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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치료하기 위해 펜 들어”
평생 현장 생활을 한 민 소방위는 화재 진압을 위해 쓰는 수관만큼이나 자주 펜을 들었다. 잊히지 않는 참사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서다. 그는 “수없이 많은 참혹한 사고 현장을 겪었다. ‘좀 더 일찍 갔으면 살릴 수 있었을까’라는 안타까움부터 참혹한 현장의 잔상까지.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어느 하나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민 소방위는 “이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 시를 썼다. 시에 담아놓으면 그제야 그 현장에서 좀 자유로워진다”고 했다.
한 공단의 작업현장에서 흙더미에 깔려 즉사한 외국인 노동자의 애도를 빈 시가 대표적이다. 그는 “콘크리트 작업을 하다 현장에서 숨진 카자흐스탄 출신 노동자였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분이 이해하지 못할 언어겠지만 이렇게나마 위로하고 싶었다”고 했다.
20년 근속 앞두고 떠난 동료 추모… “국립묘지가 앞인데”
민 소방위가 시집을 출간하게 된 계기에는 동료 소방관의 죽음이 있었다고 한다. 2013년 위암으로 사망한 동료 소방관이다. 그는 추모 시 ‘국립묘지가 저긴데’에서 동료 소방관의 이야기를 담았다.
민 소방위는 “위암 판정을 받은 뒤에도 누구보다 화재 진압 현장에서 적극적이었고, 불 속으로 뛰어들려고도 했다. 가족에게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차라리 화재 현장에서 순직하고 싶다’는 말을 반복했다”고 했다. “화재 현장에서 사고를 당하면 국립묘지에 안장되고 부조도 소방청 차원에서 모금한다. 지병으로 숨지면 아무것도 없다”면서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유족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 시집을 발간하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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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못 하는 일… 자부심 갖는다”
시집에 담긴 민 소방위의 소방관 생활은 애환으로 가득했지만, 그런데도 그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화마를 잡는 소방관의 업무는 숭고하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를 묻는 말에 대해 “95년 고압 전류로 심정지한 환자를 이송하는데, 10분 동안의 CPR 끝에 심장이 덜컹 움직이던 그 순간은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소방관 직업에 자부심을 갖게 된 순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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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의 이야기를 담은 책… 어떻게 내가 갖겠나”
민 소방위는 시집 판매를 통해 얻은 수익금 전액을 소방관 유족에게 쓸 예정이다. 일찍 세상을 떠나 연금을 받지 못하는 유족들을 위해서다. 그는 수익금이 아쉽지 않냐는 질문에 “동료의 이름을 담아 쓴 추모 시가 있고,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담은 시집이다. 어떻게 내가 가질 수 있겠나”고 답했다.
출간 5개월 만에 약 900만원의 판매금이 모은 그는 이미 200만원을 소방관의 유족에게 전달했다. 동료 소방관 유족에게도 돈을 전달했다는 그는 “사모님이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에게 전달해달라’며 한사코 거절했다. 오랜 설득 끝에 100만원이라도 받아달라고 사정해서 간신히 전달했다”고 했다. “수익금 전액을 연금을 받지 못하는 소방관 유족에게 전할 예정이다. 많지 않은 돈이지만 그들의 생계 걱정을 덜어주고, 소방관 유족에 대해 우리 사회가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2003년 문단에 등단한 민 소방위는 “따뜻한 문장이 한줄이라도 있으면 그건 시가 된다”며 “소방관의 생활을 따뜻하게 담기 위해 노력한 시집“이라고 했다. 그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 소방관의 생활이 많다. 이를 모두 시로 적어내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석경민 기자 suk.gyeo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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