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급 불문 2년간 연구비 6억..'132조 빚더미' 한전이 설립하는 대학의 교수 빼가기 논란

김기찬 입력 2021. 12. 3. 12:15 수정 2021. 12. 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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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3월 개교 예정인 한국에너지공과대학(KENTECH, 한전공대) 행정강의동 조감도. 사진 KENTECH


정부의 탄소 중립 공약에 따른 에너지 특성화 대학으로 추진 중인 한국에너지공과대학(KENTECH, 이하 한전공대)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100조원이 넘는 누적 부채를 짊어진 한전의 업무 외 비관련 투자에 대한 효율성 논란은 이미 불거진 상태다. 최근에는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기존 대학교수들을 스카우트하면서 인력 빼가기 논란까지 벌어지고 있다. 기존 대학들은 "정부발 연구 생태계 교란 행위"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전공대는 내년 3월 개교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교수진 충원을 서두르고 있다. 기존 대학에 근무하던 교수가 주 대상이다. 한전공대는 거액의 연봉을 제시하고 있다. 조교수 1억2000만원, 부교수 1억5000만원, 교수 2억원, 석학급 4억원이다. 국내 과학기술특성화대학 교수 연봉의 1.5배다. 특히 한전공대에 정부의 국책 연구 용역 쏠림 현상이 발생하면 추가로 막대한 수입이 예상된다.

여기에다 한전공대는 교수들에게 연구 정착비 명목으로 직급을 불문하고 연 3억원씩, 2년간 총 6억원을 개별 지급한다. 연구 장비 등을 구매하는 데 쓰는 비용이 포함돼 있다. 통상 대학의 연구 기자재는 대학 본부의 관리하에 품목과 수량을 정한다. 이에 비하면 한전공대는 사실상 개인 재량에 맡겨 장비를 구매토록 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수도권 A 대학 교수는 "공과대학의 특성상 협업 연구가 많다. 이를 고려하면 개인이 필요한 장비를 산다고 하지만 연구 장비의 중복구입을 제어하기 힘들고, 이로 인한 예산 낭비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전공대 측은 "장비는 대학본부에서 관리하고, 중복 구매가 없도록 심의위를 설치해 심사한다"고 해명했다.

한전공대는 또 연구공간으로 교수 1인당 120㎡ (36.4평)를 배정한다. 개인 연구실과 학과 공동 연구 공간을 합한 규모다. 공동 연구 공간에는 100억원 가까운 돈을 들여 별도로 장비를 구축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공대 부지인 전남 나주시 빛가람동 일대 전경. 오른쪽은 지난해 7월 13일 나주 빛가람전망대에서 김영록 전남지사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전공대 부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뉴스1]


문제는 여기에 투입되는 돈이 누적부채가 132조원(2024년에는 159조4621억원으로 추산)에 달하는 한전이 대부분 부담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전공대 설립 운영에는 2031년까지 1조60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 중 절반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한다. 나머지 절반을 한전이 댄다고 하지만 막대한 부채를 고려하면 정부의 지원 없이는 어려운 실정이다. 사실상 전액 국민 세금으로 충당해야 할 판이라는 지적이다.

수도권 B대학 교수는 "기존 학교도 정원을 못 채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엄청난 부채를 떠안은 한전이 비관련 투자에 돈을 쏟아붓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의문"이라며 "오히려 기존 대학의 연구를 더 지원하고, 기업과의 연계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것이 정부 정책으로는 맞다"고 말했다.

기존 대학들도 비상이다. 한전공대가 서둘러 개교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뿌리며 파격적인 조건으로 스카우트를 가속화하고 있어서다. 이미 한전공대에 교수진을 내준 일부 대학은 대책을 마련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수도권 소재 C대학 교수는 "교수진을 이렇게 빼가면 나머지 대학의 관련 학과는 고사하라는 것이냐"며 "정부가 국민의 동의도 받지 않고 세금을 마구 써가며 연구 생태계를 어그러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상철 한전공대 기획처장은 "석학을 중심으로 모시고 있고, 대부분 신진 인사를 영입하고 있다"며 "연구 생태계를 고려한 충원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유경준 (국민의 힘,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의원은 "연못에 메기를 풀어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세금을 담보로 살생용 배스를 풀어 공대 학문의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발상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학문의 영역을 정치·정책적 판단으로 재단하고, 집행하는 것이 시장에선 얼마나 위험하게 작동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덧붙였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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