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렷한 색채를 지닌 한국 디자이너 5명과의 인터뷰

이영우 2021. 12. 3. 09:1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드라마와 뮤지션으로 증명된 한국 콘텐츠의 힘은 패션계에서도 서서히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뚜렷한 색채와 주제를 지닌 한국인 또는 한국계 디자이너 5명에게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 쿠튀르라는 빛나는 존재감 JADEN CHO 」
디자이너 조성민이 ‘제이든 초’를 론칭하던 날 많은 패션 기자가 행사장을 찾았다. 그의 손끝에서 그려지는 정확한 아름다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꽃과 소품을 다루는 프롭 스타일리스트로서의 조성민은 본업만큼 사랑받는다. 시간과 정성을 오롯이 쏟아부은 피스들은 이 시대의 오트 쿠튀르. 무척 섬세한 초충도를 연상시키는 컬렉션을 선보이기까지, 그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뭔지 물었다.

Q. 평소 꽃에 엄청난 애정을 가졌죠. 제이든 초의 옷이 꽃 같기도 해요.

제게 꽃은 절대적인 미의 기준입니다. ‘절대적’이라는 표현은 잘 쓰지 않지만 꽃에는 사용할 정도죠. 패션 디자이너로서 상대적인 미를 탐구하다 보면 열등감을 느끼는 순간도 있는데, 그때도 꽃이 길잡이 역할을 해줍니다.

Q. 한편으로 회화적인 인상도 돋보여요. 어디서 영감을 얻나요?

다른 분야 아티스트들의 작업을 보는 것은 늘 즐겁습니다. 작가들의 아이디어와 그것을 실현시키는 기술로부터 자극을 받아 제 컬렉션에 반영하기도 하죠. 애니시 카푸어의 거울 작품에 감명받아 수만 개의 은색 스팽글을 사용한 RCA 졸업 작품처럼요. 존재 자체로 숭고하고 멋진 오브제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도 있고요.

꽃의 아름다움을 탐하며 영감을 얻는 디자이너 조성민.

Q. 모든 것이 급변하는 시대에 쿠튀르라는 방식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브랜드의 이상향을 온전히 보여주려면 절대적인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고유의 정체성을 어느 정도 유지해야 지속 가능한 브랜드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Q. 특별히 애정하는 소재나 기법이 있나요?

손으로 퀼트 원단을 하나하나 잘라 레이스처럼 만든 소재를 다양하게 활용했어요. 드레스를 만들 때는 ‘이게 되는 일인가’ 싶었는데, 가위를 20개 정도 사용하니 다 돼 있더라고요. 늘 고급 재료를 더하려 했는데 오히려 도려냈다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Q. 또 다른 브랜드 엄버 포스트파스트는 전통 제작 기법이나 친환경 원단에 주목하죠.

대대로 베틀을 이용해 짠 명주, 손으로 염색한 원단 등 국내에서 생산한 최고급 원단을 우리 세대에 소개하고 싶었어요. 워낙 소중한 재료다 보니 최소한의 낭비를 지향하게 됐고, 더 다양한 디자인을 할 수 있었습니다.

Q. 귀국 후 서울에서 활동하는 이유가 있나요?

작년에 런던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스스로 출발점을 되돌아보게 됐고, 브랜드의 시작은 서울에서 하고 싶어졌어요.

「 어디든 펼쳐지는 안전지대 SUNWOO 」
‘선우’라는 브랜드가 낯설다고? 〈스우파〉에서 라치카의 ‘맨 오브 우먼’ 미션 의상, 바로 그 옷이다. 편안하고 웨어러블한 옷이 넘쳐나는 동안 낯설고 강렬한 선우의 디자인은 사람들을 매료했다. 바이러스의 급습, 차별… 모든 위협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유연하고 즐거운 선우의 안전지대.

Q. 선우의 시그너처인 팝업 모티브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선우는 원터치 텐트를 모티브로 ‘이동 가능한 일시적인 안전 공간’을 의류로 표현합니다. 디자인뿐 아니라 작동 원리도 적용해 던지면 펼쳐지죠.

Q. 원터치 텐트라는 아이디어가 독특해요. 어떤 메시지를 담았나요?

2017년 런던에서 센트럴 세인트 마틴 졸업 컬렉션을 준비하던 중 길거리에 텐트를 치고 생활하는 사람들을 보게 됐어요. 그들을 보며 한곳에 소속되지 못한 제 삶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와 동시에 위로도 받았던 것 같고요. 저도 그들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선우의 의상을 입음으로써 차별, 외로움 또는 그들이 벗어나고 싶은 무언가로부터 자유롭고 편안한 공간을 얻길 바랍니다.

Q. 반복적인 구조와 조형적인 형태감이 천진하고 유쾌한 인상을 줍니다.

종이접기, 팝업 북처럼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하거나 특정한 원리가 적용되는 것들이 제게 영감을 줘요. 칠교놀이도 좋아하는데, 완성까지 계속 어긋나고 실수하는 과정을 거치는 데서 재미를 느끼죠.

Q. 컬렉션에서 장갑, 부츠, 모자 같은 액세서리도 옷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선우의 확장된 DNA와 어휘를 액세서리를 통해 표현하고 있습니다. LGBT의 상징인 무지개색으로 제작한 장갑은 차별에 맞서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의미를 담았어요. 예술에 있어 의미를 담고 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제 의견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액세서리라는 결론을 내렸죠.

Q. 디자인 과정에서 일반 소비자의 반응도 고려하나요?

이미지와 아이디어의 구현을 우선하다 보니, 대중을 사로잡는 상업적인 아이템이 아직 제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다만 아직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설득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양발의 앞코 모양이 다른 부츠 캡슐 컬렉션도 처음 공개했을 땐 의아하다는 반응이 많았는데, 지금은 많은 분이 구입해주셔서 ‘제 설득이 통했구나’ 싶기도 해요.

시각적으로, 또 개념적으로 흥미로운 선우의 팝업 아이템.

Q. 뮤지션, 댄서와 함께한 협업에서 멋진 시너지가 돋보였어요. 앞으로 협업하고 싶은 아티스트도 있나요?

인체의 움직임과 구조는 제게 항상 영감을 줍니다. 그래서 무용가, 안무가분들과 하는 작업은 언제나 힘이 되고 즐거워요. 또 협업을 한다면 어떤 종목이든 스포츠 선수들과 흥미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우아한 위트 BOURIE 」
‘부리’는 자기만의 문법이 확고한 브랜드다. 정교한 재킷에 작은 리본을 와르르 끼얹거나, 우아한 코트에 찢어진 것 같은 긴 슬릿을 넣는 부리식 위트는 조용히 브랜드의 팬을 만들었다. 도로명주소를 이름으로 내건 아차산로-1 쇼룸에는 컬렉션·니트웨어·액세서리 라인 등 여러 시리즈가 한데 모여 디자이너 조은혜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Q. 성숙하고 정교한 동시에 둥글고 여유로운 인상이 돋보입니다. 디자인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요소는 뭔가요?

디자인 과정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실루엣’입니다. 새로운 실루엣, 추구하고자 하는 실루엣, 이번 시즌의 실루엣 등등. ‘어떤 사람’이 아닌 ‘어떤 실루엣’을 떠올리며 옷을 만들고 있어요.

Q. 이번 시즌 제품 중 가장 부리다운 피스를 소개한다면요?

소매를 옷 안쪽으로 잘못 벗은 듯한 모양을 살린 ‘홀 재킷’과 부리의 시그너처 디테일인 ‘타이드 리본’ 세트 룩. 클래식한 아이템에 상반되거나 과하게 반복되는 디테일을 더했는데, 이런 요소가 조화를 이루는 피스들이 ‘부리다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컬렉션에 관한 모든 과정이 아틀리에에서 진행된다.

Q. 부리는 해외 팬도 많은데, 국내외에서 사랑받는 아이템에 차이점이 있나요?

편집숍마다 성향에 맞는 바잉을 하겠지만, 해외 바이어들이 보다 과감한 시도를 즐기는 것 같아요. 해외 바이어가 각 시즌을 대표하는 키 룩 위주로 셀렉션을 구성한다면, 국내 고객에게는 부리의 시그너처 아이템이 인기가 있는 편이죠.

Q. ‘아차산로-1’이라는 이름의 매장은 어떤 공간인가요?

아차산로-1은 매장이라기보다 부리의 첫 ‘창구’ 같은 공간입니다. 불특정 다수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조용히 열어놓은 공간으로, 부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만드는지 보여주고 싶었죠. 매장으로서의 공간도 준비 중인데, 지금까지 부리가 선보이지 않았던 아이템을 준비해 프레젠테이션하게 될 것 같습니다.

Q. 부리의 옷은 1년에 두 차례 프리오더를 통해 만날 수 있죠. 판매량과 인지도에 유리한 방식이 아님에도 이를 고수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매 시즌 콘셉트부터 샘플 제작까지 아틀리에 제작 방식으로 진행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갑니다. 지금의 실루엣과 무드를 완성할 수 있었던 건 인하우스에서 모든 과정을 진행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프리오더는 국내 고객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기에 계속 진행하고 있어요. 앞으로는 보다 다양한 형태로 프리오더를 진행해 부리를 입는 고객들과 소통하려고 합니다.

「 일하는 여자들의 옷 KAYOOON 」
‘우리 것을 접목한 현대식 의복’이라는 미션은 좀처럼 이루기 어려운 목표였다. ‘가윤’의 첫 컬렉션은 이 주제를 누구보다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풀어냈다. 차분하고 우아하지만 결코 연약하지 않은 형태와 색감. 요즘 여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위한 편안함 역시 가윤의 무기다.

Q. 가윤의 뮤즈나 여성상은 뭔가요?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본인의 신념을 지키는 여성상을 늘 동경해왔습니다. 개화기 시대의 신여성, 투표권을 주장했던 영국의 ‘뉴 우먼’부터 인권 운동가, 아티스트 등 본인의 목소리를 내고 열심히 일하는 모든 여성에게 영감을 받았어요. 최근에는 여류 화가, 특히 조지아 오키프의 추상환상주의 이미지에 푹 빠져 있습니다.

Q. 현대적인 피스에 전통적 요소가 녹아든 점이 인상적입니다. 블라우스에서 마고자의 형태가 엿보이고, 베스트가 배자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전통 의상의 실루엣을 과하지 않게 해석한다면 또 다른 개념의 코리언 뉴 클래식 스타일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물음에서 시작한 것 같습니다. 고 앙드레 김 선생님의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씀이 와닿았죠.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것처럼, 시대의 흐름을 읽으면서 (한국적) 아이덴티티를 잘 접목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담담하지만 실용적인 요소로 꽉 채운 가윤의 클래식 룩.

Q. 특히 작업복, 군복의 요소가 눈에 띄어요.

디자인하는 데 있어 아름다움만큼 실용성과 편안함을 중요시합니다. 오래 입는 옷의 무기는 결국 편안함이죠. 착용감을 고려한 패턴, 활동성을 높이는 포켓 디테일이나 원단, 유행을 타지 않는 스타일… 이런 요소가 조화를 이뤄야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이 되는 것 같아요. 작업복과 군복은 활동성과 편리함에 목적을 둔 옷이라 특유의 디테일을 많이 활용합니다.

Q. 실루엣과 컬러 모두 굉장히 절제됐죠. 무엇이든 일단 시선을 끌고 보는, 속칭 ‘관종의 시대’에 이런 절제미가 새롭기도 합니다.

제 개인적 취향이 반영된 부분 같아요. 향수에 비유하자면, 첫 향이 자극적이고 좋지만 잔향이 남지 않는 것보다는 강렬한 첫인상은 없지만 은은한 잔향이 퍼지는, 그래서 길을 가다가도 뒤돌게 하는 그런 향수처럼 됐으면 해요.

Q. 모든 제품을 주문 제작으로 진행하죠.

사실 주문 제작 방식의 경우 제가 할 일이 많습니다. 입는 이에 대해 먼저 파악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샘플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고객의 만족감과 집중도에서는 장점으로 작용합니다.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고 브랜드의 방향성을 세우는 데도 도움이 되죠. 저는 옷을 생산하기보다 ‘짓는다’는 개념으로 접근하고 싶어요. 제 옷을 입는 분들도 자신을 위해 지은 따뜻한 밥을 대접받는 느낌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 이방인의 일기 J.KIM 」
“세계의 여러 끝자락에서 온 여자들이 제 옷을 입었으면 해요.” 조각보 같은 드레스, 버선코를 빼다 박은 부츠….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제니아 킴의 문화적 배경에는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한국 세 국가가 공존한다. ‘나는 어디에 속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옷을 짓는 것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이들을 위로하는 손길이기도 하다.

Q. 국내 독자에게 ‘제이킴’이라는 브랜드를 어떻게 소개하고 싶은가요?

제이킴은 제 스타일을 형성한 우즈베키스탄과 한국적 근원을 결합한 브랜드입니다. 소수 그룹, 공예, 예술, 감정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죠.

Q. 한국에 대해 어떤 추억이 있나요?

전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 대학 졸업 후 성인이 돼서야 한국을 가봤어요. 어디를 봐도 나와 비슷해 내가 특별하거나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게 충격적이었고, 이 점에 감정적으로 압도됐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가도 결국 나는 이방인이며 이들과 다르다는 감정을 뚜렷이 느껴 좀 슬프기도 했죠.

Q. 제이킴의 기반은 러시아인데, 한국적 요소가 발견돼 흥미로웠어요.

2014년부터 한국 전통 복식을 공부했는데, 유니크한 절개와 섬세한 디테일, 간결함에 매료됐어요. 한국 여행을 마치고 모스크바로 돌아오던 비행기 안에서 한복 모양 엽서를 꺼내 다른 방법으로 접고, 또 새롭게 잘라본 적이 있어요. 이 경험을 통해 한복 요소를 접목한 옷들을 선보이게 됐습니다.

Q. 다양한 문화를 결합한 컬렉션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소비에트 코리안, 그러니까 우즈베키스탄의 한국 여자에 대한 이미지로 나만의 옷을 만들고 싶어요. 우리는 (한국 여자와) 완전히 달라요. 러시아어를 쓰고, 러시아 휴일을 기념하고(가끔 한국 휴일도 있지만), 러시아 문학을 읽어요. 양국의 문화가 섞여 있기도 하죠. ‘코리안 샐러드’는 당근으로 만들고, 국과 반찬도 전혀 다릅니다. 이런 점을 옷에 표현하고 싶어요. 한국식 뿌리와 우즈베키스탄 취향이 공존하는 우리의 이야기를 전시하고 전 세계와 나누는 거죠. 더 많은 이들이 제이킴을 통해 저 같은 사람에 대해 알게 되고, 또 젊은 세대가 자신의 뿌리에 대해 탐구하고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여기길 바라요.

친근한 보자기 모티브를 사랑스럽게 활용한 토트백.

Q. 한국의 패션 마니아들을 만나러 올 계획도 있나요?

한국에 제이킴을 소개해줄 담당(팀)이 있으면 좋겠어요. 빠른 시일 내에 이루게 된다면 더 좋고요! 미국과 유럽에서는 점차 인지도를 높이고 있는데, 한국에도 이번 인터뷰 같은 기회로 차근차근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Copyright © 코스모폴리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