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훈 칼럼] 굿바이 2021, 움츠렸지만 희망도 있었던

2021. 12. 3.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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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12월은 달력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한해를 결산하는 시간이다. 정치 사회를 중심으로 보자면, 올해 연말결산은 이런 숫자들로 요약된다. 80%. 558조원. 7538회. 16억 시간. 42억8000만원. 앞의 세 숫자가 걱정과 우려의 수치라면, 16억 시간과 42억8000만원은 희망의 숫자이다.

80%는 올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 백신 접종 완료율이며(엊그제 기준) 558조원은 지난해 말 국회에서 확정했던 올 정부 예산액이다. 역대 최대 규모이며 2018년의 447조원에 비하자면 무려 30% 늘어난 액수이다. 그리고 7538회는 올 3~6월 사이 극단적 선택으로 추정되는 사건으로 소방청이 구조 출동했던 횟수이다.(소방청 자료)

「 위축과 희망이 교차한 2021년
코로나 위기 속 국가는 팽창
시민들의 삶은 더욱 위축돼
정치오염 없는 곳에 희망 있어

한편 16억 시간은 세계인의 TV라고 할 수 있는 넷플릭스의 역사를 바꿔놓으며 한국 드라마가 세계의 흐름을 쥐고 있음을 알린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총 시청 시간이다.(11월 중순 집계 기준) 42억8000만원은 그룹 BTS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시작이다”라는 메시지와 더불어 아동, 청소년 폭력이 없는 세상을 향한 ‘러브 마이셀프(Love Myself)’ 캠페인에서 모은 기부 금액이다.

걱정과 우려의 숫자들을 들여다보면 ①국가는 무서운 속도로 팽창한 반면 개인들은 움츠러든 한해였다고 말할 수 있다. 접종 완료율이 80%에 달했는데도 끈질기게 괴롭히는 코로나 공포와 위기 속에서 개인들은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위축되어 왔다. 반면에 방역 대응을 지휘하고 통제하는 국가의 역할은 마치 우주 빅뱅처럼 급격히 팽창해왔다.

②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우리는 희망의 노래를 발견한다. 세계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그룹 BTS의 노래 ‘Answer: Love Myself’는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 세계 구석구석에 울려 퍼진다. 또한 K드라마는 올해 양극화(‘오징어 게임’), 작은 바닷가 마을 삶의 아름다움(‘갯마을 차차차’) 등 다양한 주제를 담아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먼저 팽창하는 국가와 움츠러드는 개인들의 문제부터 살펴보자. 대표적 방역 성공 국가인 대만의 오드리 탕 디지털 장관은 진작부터 코로나는 전 세계인들의 삶의 증폭기가 될 거라고 예측한 바 있다. 권위주의 국가는 더욱 권위적 방식으로 코로나에 대처할 것이고 코로나 위기 속에서 삶의 양극화는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질 것이라고.

코로나 증폭기는 우리 사회에서 국가와 개인 간 힘의 불균형을 더욱 심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크고 강력한 국가는 사실 경제 양극화가 심화되고 중산층이 메말라가는 이중 경제화 흐름 속에서 예견되어왔던 일이다.

삶이 팍팍해질 때 사람들은 국가를 최후의 피신처로 여기고 의탁하려 한다. 일자리를 만들고 재분배를 촉진하고 사회안전망을 짜는 역할들을 전부 국가가 해주기를 기대한다. 지난 수년 사이 국가 예산이 급팽창한 것은 이러한 시민들의 바람과 끝없는 팽창을 즐기는 정부조직의 본능이 맞아 떨어진 결과이다.

팽창하는 국가의 역할은 예산 씀씀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코로나 보건 위기 속에서, 국가는 개인들의 일상생활을 두루 모니터링하고 추적하는 디지털 데이터 국가로 진화해가고 있다. 법에 근거해 있기는 하지만 이제 정부는 가족·친구·동창들이 언제, 어디서, 몇 명이 모일 수 있는지까지도 정해주는 24시간 라이프 매니저로 변신하고 있다.

문제는 급팽창한 국가는 시민들 삶을 섬세하게 살필 만큼 유능하지 않다는 데 있다. 정부는 수백만 자영업자들이 그동안의 영업제한으로 입은 경제적 손실을 입체적으로 추산하는 데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더욱이 그들이 겪어온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대해 과연 따듯한 손길을 제대로 내민 적이 있는가.

희망의 노래는 국가권력, 정치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들려온다. 탈북민, 신용불량자 등 다양한 약자들이 주인공인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양극화로 고통 받는 세계인들의 관심을 단번에 끌어 모았다. ‘갯마을 차차차’ ‘지옥’ 등으로 이어지는 K드라마는 다양한 이야기로 세계인을 웃고 울리는 글로벌 메신저가 되었다.

국내에서 힘깨나 쓴다는 공영방송, 드라마 제작사들이 외면했던 K드라마들이 세계로 퍼져나가는 중이다. 정치 권력에 기대지 않고 세계가 마주한 현실을 이야기하며 공감을 끌어내는 스토리텔링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올해 우리가 확인한 희망이다.

그룹 BTS가 세계인들에게 보내는 사랑과 위로의 메시지를 다시 한번 들어보자.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나 자신을 사랑하는 거야/니 삶 속의 굵은 나이테/그 또한 너의 일부 너이기에/이제는 나 자신을 용서하자/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은 오는 거야.” (BTS, Answer: Love Myself)

무한 팽창 중인 국가, 끝이 안 보이는 코로나 위기가 우리를 옥죄고 있지만 정치와 권력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청년들은 사랑과 내일을 노래한다. 희망은 있다.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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