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상의 시시각각] 중도와 멀어지는 윤석열
공정·상식 추상적 구호만 나부껴
중도 지향 내세우며 행동은 딴판
좀 뜸하다 했더니 또 나왔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실언 논란. 이번에는 '주 52시간 철폐론'이다. 실언이라기엔 좀 애매하긴 하다. 본인은 "제도를 좀 더 유연하게 고쳐야 한다"는 취지였단다. 그러나 빌미를 제공한 건 맞다. '비현실적 제도'라는 목적어를 달긴 했지만 '철폐'라는 단어가 분명히 사용됐다. 상대 진영이 놓칠 리 없다. '주 120시간 허용' '전두환 평가' 등을 잇는 또 하나의 망언 목록에 올렸다.
정치인이 정책 하나하나에 대해 세세하게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점에서 캠프 실무진의 준비에 문제가 있다. 중소기업 현장을 찾으면 응당 나올 질문인데도 대비가 안 됐다. 사실 기업 입장에서야 여전히 미흡하겠지만 주 52시간제는 사회적 논란 끝에 어느 정도 보완을 거쳤다. 올 4월부터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 기간은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늘었다. 연구개발 업무에 한해 선택근로제 정산 기간도 1개월에서 3개월로 늘었다. '철폐'를 언급해 빌미 잡힐 만한 일은 아니었다.
정제되지 못한 윤 후보의 정책 발언은 공부 부족 탓이 크다. 그러나 정책의 속성을 간과한 것이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한 번 늘린 소비를 줄이기 쉽지 않듯 수혜 대상을 늘린 정책은 쉽게 뒤집을 수 없다. 이른바 '톱니 효과'다. 섣불리 손댔다간 온갖 사회적 갈등이 벌어진다. 2011년 서울시의회를 통과한 무상급식 조례안에 반대하며 시장직을 걸었던 오세훈은 결국 최소 투표율(33.3%)을 넘기지 못해 사퇴했다. 용감하다는 평가도 있었으나 무모했다는 비판이 주류를 이뤘다. 시민의 눈높이가 아이들 밥 먹이는 문제 정도는 보편복지를 용인할 정도로 높아졌는데도 이를 간과했다. 10년 만에 간신히 시장으로 복귀한 오세훈은 "다시는 그런 선택을 않을 것"이라며 과오를 인정했다.
문제 있는 정책이라도 이미 이해 관계자들이 형성돼 있기 마련이다. 이를 되물리려면 구체적 대안과 정확한 논리로 대중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경제신문 몇 개 읽고 설익은 방안을 꺼냈다간 역풍만 분다. 뒤늦게 내 뜻이 곡해됐다며 언론이나 상대 진영 탓으로 돌리는 것은 정치 미숙아나 하는 짓이다. 정 알지 못한다면 듣기 좋은 말로 원칙적 언급 정도로 넘기는 것이 현명하다. '조사하지 않으면 발언할 권리도 없다'는 마오쩌둥의 말도 있지 않은가. 한두 번의 실수는 무지일 수 있지만, 자꾸 반복되면 능력과 철학을 의심받는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실언들 대부분이 중도층의 등을 돌리게 하는 내용이라는 점이다. 중도 지향을 표방하면서도 지금까지 윤 후보가 내놓는 정책은 보수 지향 일색이다. 극단적 시장주의자 밀턴 프리드먼의 책을 인용해 '부정식품 허용론'을 말한 게 대표적이다. 수혜 대상이 좁은 종부세·상속세 완화를 왜 굳이 앞세우는지도 의문이다. 필요한 일일 수는 있지만, 중도 지향이라는 측면에서는 완급과 선후를 따져봐야 한다. 메시지 하나하나 다 의미가 담겨 있는 게 정치다.
윤 후보의 거듭되는 실수를 보고 있노라면 혹시 정치를 너무 만만하게 여기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알량한 지지율에 취해 당내 권력 투쟁부터 벌이는 것 보면 더욱 그렇다. 중도와 자꾸 멀어지는 듯한 윤 후보의 발언도 이 정도면 됐다는 자신감 때문인가.
정치 입문 5개월, 후보 확정 한 달째가 됐지만 윤 후보에는 이렇다 할 슬로건도, 영입 인사도 눈에 띄지 않는다. '공정과 정의 회복'이라는 구호는 이미 식상하다. 주변에는 60대 노인들이 들어찼다. 표변이라 할 만큼 변신하는 이재명 후보의 행보와는 대조된다. 이준석이라는 젊은 자산이 등을 돌렸는데 '리프레시하러 간 것뿐'이라며 한가한 소리나 해댄다. 이준석과 김종인 없이 중도에 다가서는 방책이 어떤 건지 궁금하다. 지려야 질 수 없다던 선거는 이제 우열을 가릴 수 없게 됐다. 윤석열을 지켜보는 중도의 눈이 싸늘해지고 있다.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lee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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