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서바이벌보다 성장
요즘 흥미롭게 보는 서바이벌 오디션이 있다. 유튜브 EO 채널에서 하는 ‘유니콘하우스’다. 유니콘의 꿈을 꾸는 스타트업들이 상금 7000만원을 두고 경쟁하는 프로다. ‘스우파’(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언더독 여성 댄서들의 리더십을 조명했다면, ‘유니콘하우스’는 무명 스타트업들의 짧고 강렬한 성장의 순간을 스케치한다. 이들이 수행하는 미션은 다음 같은 것들이다. 창업으로 풀려 했던 문제가 소비자에게도 진짜 문제였나 재점검하고, 스스로 자기 사업이 망할 이유를 분석해보는 식이다.
이 프로의 설득력은 그런 현실 감각에서 온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결국은 망한다는 현실, 공동창업자와 불화로 헤어지는 게 다반사고, 애당초 사업의 가설부터 잘못됐을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는 데서부터 ‘진짜’ 성장이 시작된다. 출연한 벤처투자자들의 까칠한 조언이 허세로 들리지 않는 이유도 현실 감각에 있다. 그들은 “내가 실제 투자할 건지를 기준으로 평가했다”고 말한다. 투자자에게 날려도 괜찮은 돈이란 없다. 그러니 “당신은 CEO 자격이 없다”는 소리까지 들은 무대 울렁증 창업자는 (아직까지) 살아남았지만, 사업화가 요원한 13세 초등생 창업자는 기특하긴 해도 탈락한다.
스타트업이 유튜브 서바이벌 예능의 소재가 되는 건 그만큼 창업 시장이 커졌다는 얘기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기술창업(제조업 및 지식기반 서비스업)은 역대 최초로 18만 건을 돌파했다. 부동산업을 제외하면 전체 창업의 22%가 기술창업이다. 양이 늘면 질도 좋아지기 마련. 유튜브 오디션에 나온 스타트업 중엔 초기 단계임에도 투자자들이 투자하고 싶다고 줄 서는 곳들이 있다. 모험자본은 현재보다 미래 가치에 베팅한다.
이런 창업자들과는 좀 다르지만, 평범한 개인이 미래에 베팅하는 길도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에 개발자로 입사하기 위해 고시공부하듯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컴퓨터 프로그래밍 입문과정부터 배우더라도, IT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게 ‘성장’이자 ‘성공’이라 믿는다. 2021년 한국에서 2030세대가 단기간에 노동소득의 가치를 높일 방법이 이것 말고 더 있을까 싶다. 서바이벌보다 성장을 택한 이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다시 아까 그 오디션. 한달 만에 중도 탈락한 한 창업자가 이렇게 말했다. “이제 얼른 내 사업을 하러 가야겠다”고. “점 같은 아이디어 하나로 창업했는데 한달새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좋다”고. 아쉬운 기색은 별로 안 보였다. 오디션은 끝났지만 그의 사업은 끝난 게 아니니까. 2022년을 준비하는 우리에게도 이런 긍정과 용기가 필요한 때다.
박수련 팩플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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