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순혈주의 '롯데맨'에 실망했나..유통·호텔 사령탑 3人 모두 외부 인사로

배준희 2021. 12. 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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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LOUNGE]
롯데그룹이 조직 개편과 함께 대대적인 쇄신 인사를 단행했다. 그룹 핵심인 유통·호텔 사업군의 주요 사령탑을 모조리 외부에서 데려왔다. 순혈주의가 유독 강한 롯데그룹 정서를 고려하면 파격적인 인사다. 유통 부문 총괄대표·대표이사(부회장)로는 김상현 전 홈플러스 대표(58)가, 호텔 사업군 총괄대표(사장)로는 안세진 전 놀부 대표(52)가, 백화점 사업부 대표(부사장)로는 신세계그룹 출신인 정준호 롯데GFR 대표(56)가 내정됐다. 롯데그룹은 지난 11월 25일 이사회를 열고 이런 내용을 뼈대로 한 정기 임원 인사를 발표했다. 롯데그룹이 오랜 순혈주의를 깨고 예년보다 서둘러 임원 인사를 단행한 것은 그룹 수뇌부에 만연한 위기감 때문으로 풀이된다.

42년 만의 첫 외부 출신 총괄대표로 선임된 김상현 부회장은 글로벌 유통 전문가다. 1986년 미국P&G에 입사해 한국P&G 대표, 동남아시아 총괄사장, 미국P&G 신규 사업 부사장을 거쳤다. 이후 홈플러스 부회장을 지냈고 2018년부터 DFI리테일그룹의 동남아시아 유통 총괄대표와 H&B 총괄대표를 맡았다. DFI는 홍콩·싱가포르·중국·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지역에 대형마트와 슈퍼마켓·편의점 등 1만여개 점포를 운영하는 홍콩의 소매유통 회사다.

호텔군 총괄대표로 선임된 안세진 사장은 신사업 전문가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 AT커니 출신으로, 2005년부터 2017년까지 LG그룹과 LS그룹에서 신사업과 사업 전략을 담당했다. 2018년부터는 모건스탠리PE에서 놀부의 대표를 맡았다. 그는 롯데 출신이 아닌 데다 호텔 경험도 없다.

롯데쇼핑 백화점 사업부 대표로는 신세계그룹 출신 정준호 대표가 내정됐다. 정준호 대표는 신세계그룹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신세계맨’이다. 롯데와 신세계는 소송전을 불사할 정도로 유통업계에서는 숙적으로 꼽힌다. 정 대표는 2018년 말 임원 승진 명단에 이름을 올린 유일한 외부 출신 인사였다. 정 대표는 1987년 삼성그룹 공채 28기로 신세계백화점에 입사했다. 이후 신세계백화점 이탈리아 지사장, 신세계인터내셔날 해외패션본부장, 신세계조선호텔 면세사업부장 등을 거쳤다. 손영식 신세계백화점 대표가 입사 동기다.

▶중역들 패착에 신동빈 회장 대노

▷외부 인재 영입으로 경고 메시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외부 인사를 줄줄이 롯데 유통의 사령탑으로 앉힌 것을 두고는 여러 해석이 나온다.

무엇보다 최근 강희태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순혈 롯데맨에 대한 신 회장의 불신이 투영된 인사라는 해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신 회장이 공공연하게 그룹 내부에 인재가 너무 없다는 실망 섞인 언급을 하며 주요 임원과 인사 라인의 잇단 패착에 대노했다는 얘기가 유통업계에서 파다했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코로나19 회복 국면에서도 경쟁사 대비 수익성 측면에서 부진한 3분기 실적을 보고받자 임원 인사 시기를 앞당긴 것 같다”고 전했다.

실제 ‘유통 거인’ 롯데그룹은 벼랑 끝에 서 있다는 말이 지나치지 않다. 그룹 모태인 오프라인 유통업조차 경쟁사인 신세계, 현대를 겨우 앞서는 형국이다. 지난 3분기 신세계는 매출 15%, 영업이익은 81% 증가했다. 반면, 롯데백화점은 매출 규모에서는 수위권을 지켰으나 21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외형에서도 신세계가 맹추격 중이다. 아웃렛 매출까지 더하면 롯데와 신세계의 3분기 매출 격차는 1000억원 안쪽으로 좁혀진다. 결국, 외부 인사를 롯데 유통의 수장으로 앉혀 그룹 내부 중역들에게 ‘긴장하라’는 경고성 메시지를 보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단, 정준호 대표 발탁 인사를 두고는 유통업계에서 다소 뜻밖이라는 반응도 읽힌다. 롯데GFR 시절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는 게 안팎의 평가기 때문이다. 롯데GFR은 롯데쇼핑 자회사인 엔씨에프(NCF)와 롯데백화점 글로벌패션(GF) 사업 부문을 통합해 2018년 설립됐다. 롯데그룹은 롯데GFR 출범 당시 인수합병(M&A) 등으로 2022년 ‘매출 1조원 클럽’에 입성시키겠다는 청사진을 내놨지만 대내외 악재로 실적은 썩 좋지 않았다.

롯데GFR에서의 실적은 부진했지만 신세계인터내셔날에서 축적한 노하우를 눈여겨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 대표는 신세계인터내셔날 근무 당시 ‘몽클레르’ ‘어그’ 등 해외 패션 브랜드 판권을 국내로 들여오는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패션뿐 아니라 면세업, H&B스토어 등 여러 유통 채널을 고루 경험했다는 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정 대표는 신세계 이탈리아 지사장 등을 거쳐 해외 패션 시장에서는 ‘가브리엘 정’으로 불리기도 한다. 글로벌 패션업계에서의 탄탄한 네트워크가 강점”이라는 촌평을 들려줬다.

외부 인사 핵심 3인방 앞에 놓인 숙제는 간단치 않다. 롯데는 국내 대기업집단 가운데 순혈주의가 유독 강한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숱한 내부 견제를 뚫고 조직 장악력을 높인 뒤 ‘유통 명가’ 롯데를 재건하고 조직 안팎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작업은 험로일 수밖에 없다.

우선, 김상현 부회장은 국내외 유통기업에서 쌓은 역량을 기반으로 온·오프라인 포트폴리오의 새판을 짜는 것이 임무다. 특히 오프라인 대비 열위가 뚜렷한 온라인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롯데가 야심 차게 선보인 ‘롯데ON’이 속한 롯데쇼핑 이커머스 사업의 올해 1~3분기 매출은 800억원에 그치고 영업적자는 1070억원에 달했다. 유형자산으로 생존 문법을 구축한 롯데로서는 무형자산의 이커머스에서 ‘트레이드 오프’가 빚어질 만한 대목이 적잖다. 김 부회장은 이런 딜레마를 극복하는 것이 당면 과제다. 오프라인과 이커머스는 요구되는 역량 자체가 다르다는 점에서 김 부회장 체제 아래 외부 인재 영입이 더욱 활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롯데그룹 중역 대부분이 오프라인 영업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혁신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호텔군 안 총괄대표는 신사업과 경영 전략 등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호텔 사업군의 브랜드 강화와 기업가치 개선을 주도한다. 구체적으로는 호텔롯데 상장 작업을 완료하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미션으로 파악된다. 롯데그룹은 2017년 롯데지주를 설립했지만 총수 일가에 대한 검찰 조사와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지배구조를 완전히 정리하지 못했다. 호텔롯데 상장은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마지막 퍼즐’로 꼽힌다. 호텔롯데가 롯데쇼핑(8.86%), 롯데물산(32.83%), 롯데건설(43.07%) 등 주요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어서다. 신 회장이 호텔롯데 등 핵심 계열사 IPO를 통해 마련한 자금을 지배구조 정비에 활용할 것이라는 게 금융투자업계 관측이다.

정 대표는 신세계 시절 익힌 노하우를 십분 발휘해 롯데백화점 주요 매장의 리뉴얼과 브랜드 포트폴리오 조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강희태 부회장 체제 아래 롯데백화점 내부에서는 명동 본점을 포함한 주력 점포의 리뉴얼이 차일피일 미뤄지며 시장의 흐름에 올라타지 못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정 대표는 주특기를 살려 본점의 경우 해외 명품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리뉴얼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3인방이 순혈 롯데맨들이 득실한 롯데지주와 전략적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과제다. 그룹 컨트롤타워라고 할 롯데지주의 순혈주의는 계열사보다 훨씬 강하다. 재직 기간 30년이 넘는 롯데맨이 즐비하다. 롯데는 지주에 쏠린 권한을 분산하려는 목적에서 BU 체제를 도입했지만 안착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외부 인사들이 롯데그룹 핵심 사업부에서 성과를 내려면 롯데지주를 중심으로 한 조직 안팎의 숱한 견제를 극복하는 것이 필수다. 자칫 별다른 성과 없이 중도 낙마한다면 외부 인재 영입을 지렛대 삼은 신 회장의 쇄신 행보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배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36호 (2021.12.01~2021.12.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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