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외교원장 워싱턴서 "北미사일 문제 삼지 않아야 북핵 해결"
워싱턴 세미나서 북핵 문제 美 책임 거론
"대북 제재는 北 핵·미사일 개발 명분 줘"
"北 목조른다고 핵 포기 안 해..기회 줘야"
한국의 외교·안보·통일 국책연구기관 수장들이 미국 워싱턴에서 북한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데 대한 미국 책임론을 거론하면서 한국전쟁 종전선언 등에 미국이 전향적인 자세를 보일 것을 촉구했다. 일부 발언은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양 해석될 소지도 있다.
홍현익 국립외교원장은 30일(현지시간) 윌러드인터컨티넨털 호텔에서 우드로 윌슨센터가 개최한 북미 관계 전망 포럼과 특파원 간담회에서 한·미가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를 크게 문제 삼지 않는 게 북핵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또 미국과 국제사회가 부과한 대북 제재가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 명분을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홍 원장은 "(북한이) 우리와 상응하는 정도 사거리의 미사일을 시험 발사할 때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그랬듯,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크게 문제 삼지 않는 게 한반도 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것이 안보 위협이 안 된다는 게 아니라 하나하나 문제 삼다 보면 협상 자체가 안 되니 협상을 하기 위해 상호안보 관점에서 우리도 개발하는 것 정도는 크게 문제 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 미사일이 한국에 위협적이지만 한국도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을 개발하는 만큼 북한이 그에 상응하는 사거리 미사일을 시험 발사할 땐 크게 문제 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유엔 안보리 제재 위반으로 규정하고 규탄해 온 한국 정부 입장과 거리가 있다.
홍 원장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데 대한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경제력이 북한보다 600배 강하고 핵무기도 300배 가진 미국이 북에 과연 핵을 포기할 기회를 줬는가, 우리가 그 기회를 박탈하고 있는 게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바이든 행정부가 관용 있게 전향적으로 생각해 북한에 핵을 포기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미국 전문가들을 향해서는 “북한 목을 조르면서 ‘너 죽일 거야’ 하면 북한 지도자가 과연 핵을 포기하려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소련에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있어 냉전 종식이 가능했다고 평가하면서 "김 총비서(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는 고르바초프가 되려고 나섰는데 우리가 오히려 스탈린이 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라고 했다.
현재의 대북 제재는 북한 행동을 바로잡지 못하면서 벌주는 의미만 남았다고 평가하면서 "북한은 제재를 대북 적대시 정책의 상징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 명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대북 제재를 그냥 완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다시 제재를 가하는 스냅백(snapback·조건부 제재 해제·복원) 제도를 제안했다.
홍 원장은 "미국은 북한을 다루는 일을 잘하지 못했다"면서 "북한 입장에서 미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이며, 말은 거창한데 행동은 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미 비핵화 협상 관련해선 “톱다운과 바텀업 방식을 병합하는 하이브리드 방식 정도가 최소한 되지 않으면 북핵 문제는 협상이 되더라도 타결되기 매우 어렵다”면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과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 정도급 회담이 아니면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종전선언 관련해서는 “만약 내년까지 종전선언이 안 되고 이 상태가 지속하면 내년에 위기가 올 것”이라며 “만약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으면 내년 4월부터 10월까지 굉장히 위험한 시기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베이징 겨울올림픽(2월)과 한국 대통령 선거(3월)를 마치고 미국 중간선거(11월) 사이에 북한이 도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홍 원장은 "종전선언은 미국이 북한에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인데 "미국은 적극적으로 해줄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종전선언을 망설이는 것은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평화협정을 생각하면 종전선언은 첫걸음인데, 토를 다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면서 "북한이 선뜻 받을지도 모르는데 자꾸 시간을 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김기정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은 종전선언에 대해 “임기가 얼마 안 남은 정부가 무슨 드라마틱한 쇼를 하려느냐는 비판도 있지만, 전략 관점에선 한반도에 작동할 수 있고 지속가능한 메커니즘을 만드는 것은 정부의 정치적 차원의 목적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전략이기에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유환 통일연구원장은 “종전선언 이후에도 평화협정으로 가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그래서 1992년 한·중 수교 모델을 적용해 바로 관계 정상화나 수교를 추진하면서 비핵화를 추동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park.hy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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