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 속 자신의 모습 본 오은영이 눈시울 붉힌 까닭
[이준목 기자]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자신의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11월 30일 방송된 SBS 다큐 <내가 알던 내가 아냐>에서는 오은영 박사가 첫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일주일동안 다양한 지인들과 함께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돌아봤다.
▲ SBS 다큐 <내가 알던 내가 아냐> |
ⓒ SBS |
오은영은 과거에 실제로 생명에 큰 위기가 찾아왔던 경험이 있었다. 오은영은 44세였던 2008년에 대장암 진단을 받았던 시절을 회상했다. "그때 아들이 초등학생이었는데 아들과 남편에게 너무 미안했다. 이 장면을 보니까 그때 힘들었던 마음이 다시 떠오르면서 눈물이 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오은영은 누워있는 자신을 토닥이며 "열심히 잘 살았다"는 위로를 전했다.
오은영은 절친이라는 김주하 앵커, 정미정과 함께 한 자리에 모였다. 김주하는 오은영과 기자 시절에 취재차 처음 인연을 맺었다며 17년째 이어온 오랜 우정을 밝혔다. 김주하와 정미정은 동영상으로 오은영의 가상 장례식을 확인했다. 오은영과 꼭 닮은 인형이 관속에 누워있는 모습에 절친들은 비록 가상이지만 마음이 무거워진 반응을 보였다.
대화의 주제는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옮겨갔다. 김주하는 "내일, 한 달 뒤 죽는다면? 이런 생각을 매일 했다. 그래서 생각을 다 해놨다"라고 고백하며 결론은 "그냥 원래 살던대로 열심히 살 거다"라고 밝혔다. 오은영 역시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내 일을 할 거다"라며 김주하에 공감했다.
오은영은 "세상을 떠나면 떠난 사람보다는 남은 사람의 몫인 것 같다. 이 다큐멘터리로 내 삶을 중간 점검하는 것"이라 밝혔다. 이어 오은영은 세상을 떠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애썼어. 열심히 살았다. 좀 쉬어'라는 말이 나오더라"고 털어놨다. 김주하는 "누군가 제손을 잡고 그렇게 말해주면 제일 좋을 것 같다"고 공감했다.
오은영은 '방송을 하다 상처받은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화제가 된 명품 관련 기사가 언급됐다. 오은영은 "내가 마음이 크게 흔들리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다. 나도 상처를 받는다"고 고백했다. 오은영은 최근 화제가 된 에르메스 관련 보도에 대하여 "명품을 사기도 한다"고 인정했다. 친구들은 오은영을 '홈쇼핑 단골'이라고 증언하며 '명품만 입는다'는 식으로 오해를 받은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오은영은 만일 자신에게 1주일의 시간만 남았다면 "원래 살던대로 살되 한가지를 추가하자면, 고마웠던 사람들, 사랑했던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라는 소망을 드러냈다.
"자정 전 집에 들어가는게 목표"
오은영의 바쁜 스케쥴이 공개됐다. 칼럼 기고, 방송 녹화, 외부 강연, 병원 진료, 아이들 상담, 세미나와 시상식 참여 등 그야말로 숨돌릴틈없는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던 오은영은 자신을 '완소녀(완전 소같이 일하는 여자)'라며 너스레를 떨며 "일주일 내내 일하고 매일 오전 5시 30분에 하루를 시작하여 자정전에는 집에 들어가는게 목표"라고 밝혔다.
오은영은 같은 방송에 출연중인 동료들과 함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1주일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장영란은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홍현희는 평소에 못해봤던 일들을 해보는 것을 꼽았다.
정형돈은 "태어난 것은 내 맘대로가 아니었지만 죽는 날만큼은 내가 선택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상대도 나를 지울 준비가 되었을 때"라는 속내를 드러냈다. 오은영은 동료들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며 "삶을 보는 시각이 이렇게 다양하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굳이 외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밝혔다.
이어 오은영은 자신의 모교인 대학교에 방문했다. 오은영은 대학교 교정과 강의실을 돌아보며 남편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오은영은 "우리 남편은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다. 대학 1학년때부터 연애했고, 그 긴 시간을 너무도 사랑했고. 제가 성인이 된 후 가장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 사람"이라며 남편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오은영은 강의실에 앉아 남편과 통화하며 옛 추억을 회상하고 알콩달콩한 분위기를 형성했다.
오은영은 어린 시절 사진과 성적표를 공개하여 일찍부터 의사를 꿈꿨다고 밝혔다. 오은영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생사를 왔다갔다 하시고 가족의 고통을 너무 많이 경험해서, 조금이라도 도움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단 생각을 했다"고 의사의 길을 선택한 계기를 밝혔다.
그녀가 처음 대장암 진단을 받았던 때의 상황이 언급했다. 건강을 자신했던 오은영은 대장암이 발견됐단 말을 후배 의사에게 듣고, 전이가 되었다면 '3개월 시한부'라는 이야기에 큰 충격을 받았던 순간을 떠올렸다. 오은영은 "그때를 기억해보면, 귀에서 소리가 아득하게 들리고 심장이 툭 떨어지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굉장히 힘든 순간이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오은영은 수술을 앞두고도 일을 멈추지 않았다. 오은영은 대장암 판정을 받은 이후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여 주변의 관계와 상황들을 정리하려고 노력했지만, "자식만큼은 정리가 안되더라"고 밝혔다. 자식에 대한 애틋함은 곧 다른 부모들의 심경을 이해하는 공감대에 이어졌다.
오은영은 "그래서 이 시대의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얼마나 애통하고 미안해할까, 이분들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라고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며 대장암 투병이 자신의 인생에서 터닝포인트가 된 계기라고 밝혔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대장암은 재발하지 않았다. 오은영은 자신의 대장암 수술을 해준 윤동섭 교수를 만나 "삶과 죽음 사이에서 며칠 동안 갈등하고 있는데 회복실에서 만난 선생님의 광채를 잊을 수 없다"며 감사를 표시했다.
오은영은 이어 방송인 송은이를 만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출연하면서 겪었던 추억들을 회상했다. 다양한 아이들을 상담하고 솔루션을 진행하면서 전문가인 오은영도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경험이었다고 회상했다. 오은영은 자신의 아들이 멍이 들고 지친 모습으로 들어온 엄마를 향하여 "엄마가 나온 방송을 보지않는다. 나는 엄마가 내 옆에서 더 많이 있어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을 때 몸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고 고백했다.
방송에서 오은영의 솔루션을 받았던 아이들과 가족의 후일담도 소개됐다. 아기였던 친구들은 어느새 시간이 흘러 어엿한 청소년이 되어 있었다. 출연자들은 다행히 과거와 달리 한층 안정되고 성숙해진 모습으로 변해있었고, 현장에 깜짝 방문하여 오은영과 오랜만에 상봉하기도 했다. 출연자들은 하나같이 오은영의 치료가 인생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며 고마움을 드러냈다. 송은이는 "이 방송은 아이가 달라지는 것도 있지만, 부모되는 방법을 배우는 프로그램이기도 했다"고 의미를 돌아봤다.
제작진은 오은영이 만난 지인들에게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인들은 관속에 누워있는 가상 오은영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며 애틋한 감정을 드러냈다.
오은영은 어린이 정신건강센터를 국내 최초로 설립하게 도와준 당시의 유관진 전 오산 시장도 찾아갔다. 오은영은 1996년 당시 아직 어린이 보건 개념도 없던 시절에, 30대 혈기왕성한 젊은 여의사의 열정과 신념을 믿고 지지를 아끼지 않았던 시장님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오은영은 체험 6일째 마지막 셀프캠을 찍으면서 "촬영 시작할 때와 지금의 마음은 사뭇 다르다. 특별한 하루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매일 해왔던 일, 다니던 길, 다녔던 공간을 그대로 하고 있더라"라며 "나의 생이 일주일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모든 게 소중하다"고 고백했다.
체험 마지막 날, 오은영은 개그맨 정진수, <스트릿 우먼 파이터> 댄서 리정의 아빠인 이상목씨 등 유치원 시절부터 함께한 평생 절친들을 만났다. 오은영은 "내가 어릴 때부터 누구한테 부탁이나 힘든 소리를 잘 안 한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 중에는 제일 친하다"며 "너네들한테는 건강이 안 좋아져도 솔직하게 보일 수 있다. 일주일밖에 안 남았으면 너희들에게는 부탁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애틋한 우정을 드러냈다.
정진수는 "누구한테 이런 부탁을 받을수 있는 내 자신이, 그것도 상대에게 오은영이라면 더 남다르게 다가올 것 같다"며 감회를 밝혔다. 이상목은 "어떤 부탁이라도 들어줄 수 있다"고 흔쾌히 답했다. 오은영 역시 "너희가 같은 부탁을 해도 나 역시 들어줄 것"이라며 화답했다.
'나'를 마주하는 시간
일주일의 시간이 지나고 오은영은 다시 '나'를 마주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일주일 동안 오은영이 만난 지인들의 영상 메시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지인들은 오은영의 단점과 서운한 점에 대한 거침없는 폭로와 함께, 따뜻하고 애정어린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도 남겼다.
오은영은 눈물을 흘리며 "소중한 사람들도, 건강도 잘 챙기고 잘 새겨듣겠다. 진심으로 아껴주는 분들이 이렇게 많다는 걸 느꼈다"면서 "빈틈도 많고 후회되는 면도 있고 잘못한 면도 있는 것 같다. 내 삶 속에서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 이 일주일을 기점으로 조금 더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다짐했다.
오은영은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관에 누운 자신을 마주했다. 오은영은 "그렇게 자주 떠올리고 싶진 않을 것 같다. 근데 이 모습을 마주하는 날이 언젠가 분명 올 거다"라며 "그날까지, 너무 두려워하지 않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매일매일을 열심히 살아볼 거다. 그때까지 잘 있으라"고 인사를 전했다. 이어 "너무 아끼는 사람도 많고, 너무 멋진 인생이었다"고 덧붙이며 자신의 인형을 쓰다듬는 모습으로 방송은 막을 내렸다.
<내가 알던 내가 아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자신의 죽은 모습을 보고, 1주일간 잠깐 멈춰 인생을 되돌아보는 프로그램이었다. 죽음은 어쩌면 무거울수 있고 많은 이들이 외면하고 싶을만한 주제이지만 누구나 한번은 겪어야 할 일이기도 하다. 그동안 살아온 인생,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남은 인생의 의미를 돌아보는 일주일의 여정은 시청자들에게도 뭉클한 감동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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