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선언 '지분' 주장하는 中.."건설적 역할할 것" 속내는?
한·미 간 양자 협의가 중심이었던 한반도 종전선언 논의 테이블에 중국이 본격적으로 '지분'을 확보하려 나서는 모양새다.
장하성 주중 대사가 지난 25일 중국 외교 정책을 총괄하는 양제츠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을 만난 데 이어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이번 주에 중국을 방문하는 일정을 조율 중이다. 특히 서 실장은 종전선언에 대한 한·미 협의 경과와 내용을 설명하고, 중국 측 협조를 요청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지난 9월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남·북·미·중 4자 혹은 남·북·미 3자 종전선언 추진을 제안했을 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적극적 움직임이 없었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정전협정을 체결한 당사자로서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밝힌 게 전부였다.
하지만 한·미 간 종전선언 협의가 무르익으며 본궤도에 오르자 중국 역시 관련 논의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점점 명확히 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달 20일 종전선언 등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계속해서 마땅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고, 지난 2일 한·중 북핵수석대표 화상 협의에선 “평화논의와 종전선언 발표 등에 관해 건설적 역할을 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종전선언과 관련 ‘당사자로서의 역할→마땅한 역할→건설적 역할’ 순으로 점차 입장이 진전된 셈이다.
"종전선언 당사자란 생각 명확" 지분 강조하는 中
이와 관련, 정부 고위 관계자는 29일 “중국은 정전협정에 서명한 국가로서 종전선언의 당사자가 되고자 하는 생각은 명확한 것 같다”며 “종전선언 참여 당사국인 남북미중 간 합의된 문안을 완성해야 하고, (그런 차원에서) 당사국 간 협의 절차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종전선언과 관련해 막연한 '역할'에서 이제 문안 협의까지, 관련 입장을 점차 구체화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중국이 종전선언 논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경우 한국 정부 입장에선 베이징 올림픽 참여를 지렛대로 논의를 유리하게 끌고갈 수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미국·영국 등에서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 기류가 감지되는 데다, 최근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이 확산하며 중국의 ‘올림픽 리스크’가 점차 가중하고 있어서다.
특히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전폭적 지지가 필요하고, 한국은 올림픽을 계기로 한 남·북·미·중 4자 종전선언을 구상 중인 만큼 양측의 이해관계가 일치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30일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과 관련 “정부가 어떤 특별한 입장을 가질 시기는 아닌 것 같다”면서도 “베이징 올림픽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전기가 되고 동북아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존의 원론적 입장에서 벗어나지는 않지만, 베이징 올림픽을 종전선언과 남북 고위급 접촉의 계기로 삼으려는 속내 역시 숨기지 않은 셈이다.
종전선언 성격·내용 둘러싼 '이견' 가능성도
정부는 종전선언 논의가 곧 비핵화 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입구론'을 주장하지만, 북한이 이를 받아들일지도 미지수다. 비핵화 조치와 종전선언 간 '등가성'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장은 “중국의 입장은 단순히 종전선언 논의에 자신들도 당사자가 돼야 한다는 것이지 종전선언에 찬성한다거나 논의를 진전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힌 적은 없다”며 “오히려 중국은 한반도 문제를 포함해 한국 측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수단으로 종전선언을 활용하려는 의도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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