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좌우 넘나드는 실용주의자..獨 숄츠 '노동·친환경'에 힘준다
최저임금 9.6유로→12유로 인상..아동 위한 기본소득 도입 전망
2030년까지 석탄발전소 폐지..中·러시아엔 강경 노선 고수할듯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독일은 내달 초 16년간 집권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 시대와 이별하고 새로운 올라프 숄츠 총리 시대를 맞는다. 숄츠 현 부총리 겸 재무장관은 지난 9월26일 총선에서 사회민주당의 승리를 이끈 뒤 약 두 달 만인 지난 24일 연립정권 협상을 마무리지으면서 순조로운 출발을 알렸다. 숄츠가 4년 전 앙겔라 메르켈 현 총리의 실패한 연정 협상을 타결시켰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메르켈은 2017년 총선에서 승리한 뒤 자유민주당, 녹색당과 연정을 시도했다. 하지만 총선이 끝나고 약 두 달 만에 자민당의 크리스티안 린트너 대표가 연정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반면 숄츠는 메르켈과 똑같은 자유민주당, 녹색당과의 연정 협상을 2개월 만에 타결했다. 메르켈 정부에 참여를 거부했던 린트너 자민당 대표는 숄츠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맡을 예정이다. 린트너 대표는 "숄츠가 경험과 전문성을 지녔다"며 "독일의 미래를 위한 강력한 총리가 될 것"이라고 숄츠를 치켜세웠다. 이념상 좌우로 대립하는 녹색당과 자민당의 타협을 끌어내고 메르켈이 실패한 린트너도 포섭한 숄츠의 정치력은 유연함이 강점이다.
노동 변호사에서 보수정권 재무장관으로
숄츠는 학창 시절 열렬한 사회주의자였다. 그는 고등학생 때인 1975년 사민당에 가입했다. 지난해 8월 숄츠는 자신이 사민당에 가입한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자본주의 경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분명히 점점 실용주의자가 됐다"고 말했다.
숄츠는 1985년 변호사 면허를 취득하고 노동 변호사로 일했다. 공장 폐쇄로 어려움에 처한 노동자들을 도왔다. 그가 1998년 첫 연방의회 선거에 당선됐을 때 그는 당내에서 좌파 성향이 강한 인물로 꼽혔다.
하지만 2002년 당 사무총장을 맡으며 유력 정치인으로 떠오른 뒤 그에 대한 상반된 평가가 나왔다. 숄츠가 2002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의 노동 개혁 정책(하르츠 개혁)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하르츠 개혁은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추구한 정책이었고 숄츠는 당내 강경파의 비난을 받았다. 그는 메르켈 1기 내각 때 2년간 노동·사회 장관을 맡았고 메르켈 4기 내각이 출범한 2018년 4월부터 재무장관을 맡았다. 그의 정치적 이념이 점점 더 보수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때문에 숄츠는 2019년 말 사민당 대표 선거에서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고도 2차 결선투표에서 역전패를 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지난해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숄츠는 자신에 대한 평가를 되돌려놓았다. 그는 이른바 바주카포를 언급하며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와 기업을 돕기 위해 수천억유로의 재정을 풀었다. 그를 비판하던 당내 강경 세력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좌우를 오간 그의 정치적 행보는 이념적 지향성이 뚜렷하지 않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정치적 유연성을 보여주며 실용적인 인물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그리고 숄츠는 메르켈 총리도 성공하지 못했던 녹색당과 자유민주당의 연정 협상을 예상보다 빠르게 타결지으면서 자신의 리더십을 증명했다.
최저임금 인상·친환경 정책 강화
숄츠 총리는 총리 취임 뒤 노동과 친환경 정책에 역점을 둘 것으로 예상된다. 연정 협상 합의문에 따르면 연정은 현재 9.6유로인 시간당 최저임금을 12유로로 인상할 계획이다. 아동을 위한 기본 소득도 도입한다.
녹색당이 연정에 참여하는 만큼 친환경 정책도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친환경 정책은 메르켈 정부 정책을 계승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메르켈 총리는 환경부 장관 출신으로 재임 시절 친환경 정책에서는 모범적인 모습을 보였다.
연정은 2030년까지 석탄 화력발전소를 폐지키로 합의했다. 현 정부의 폐지 목표 시기 2038년을 8년 앞당겼다. 가스 화력발전소도 2040년까지 폐지키로 합의했다. 또한 신규 주택에 가스 난방 시스템을 금지하고 기존 가스 난방 시스템도 친환경 난방으로 교체해나가기로 합의했다. 현 경제부의 핵심 정책인 친환경 정책을 별도로 전담할 기후부도 신설키로 했다. 기후 장관직 신설과 2030년 석탄 화력발전 폐지는 모두 녹색당의 총선 공약이었다.
연정은 경제 부양책의 일환으로 대규모 사회 인프라 투자 정책도 추진할 계획이다. 숄츠 재무장관은 "독일이 세계의 리더 국가로 계속 남을 수 있도록 막대한 투자를 할 것"이라며 "지난 100여년 독일 역사에서 가장 큰 산업 현대화를 이뤄낼 10년 투자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숄츠 재무장관은 특히 "독일이 기후 보호의 개척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대중·대러 강경 노선 걸을 듯
유럽연합(EU) 내에서 독일의 위상 등 외교 관계에서의 변화도 주목된다. 유로존 2, 3위 경제국인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지난 26일 양국 관계 강화를 위해 새로운 우호 조약을 체결했다. 독일의 정권 교체기를 틈타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유럽 내 역학 관계 변화를 노리고 힘을 합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특히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 60% 이내, 재정적자 비율 3% 이내를 규정한 EU 재정준칙 변경을 주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리 외교를 추구한 메르켈 정부는 재정 문제에 대해서는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숄츠 총리 후보가 메르켈 총리와 비교하면 재정 문제에서 한결 유연한 태도를 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숄츠는 과거 비트코인 가격의 급변동성을 언급하며 가상화폐 시장에서 17세기 튤립 버블과 같은 거품이 형성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화폐 독점권은 계속 국가의 손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숄츠는 메르켈 집권 때보다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강경 노선을 걸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연립정부에서는 인권을 중시하는 아날레나 베어보크 녹색당 대표가 외무장관으로 지명될 예정이다. 린트너 자민당 대표 역시 메르켈 총리의 대중 온건 정책을 비판한 바 있다. 이를 반영해 연정 구성 합의문에는 중국이 껄끄러워하는 신장 위구르 및 홍콩 인권, 대만 등에 대해 언급됐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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