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찬의 인프라] "채용 방식이 공정한지는 기업이 판단해야"

김기찬 2021. 11. 30.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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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채용은 공정한가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분교였던 경희대 수원캠퍼스를 졸업했다”고 썼다. 경희대 재학생과 동문을 중심으로 반발이 확산했다. 경희대는 서울캠퍼스와 소재지만 다른 이원화 캠퍼스다. 공과대와 외국어대학 등 일부 단과대가 수원으로 이전했을 뿐이다. 고 의원은 논란이 일자 ‘분교’를 삭제했다.

고 의원은 경희대 수원캠퍼스를 지방대로 표현하기도 했다. 2017년 낸 책에서 “지방대 출신으로 아나운서가 되겠다고 했을 때”라고 썼다. 지난해 총선 때는 자신의 페이스북 학력란에 ‘경희대 2003년 졸업 서울’이라고 기재하기도 했다.

「 블라인드 채용, 인사 자율권 침해
NCS 사교육 만연 … 채용시장 왜곡
‘마이너스 정원’ 신조어까지 등장
잘못된 채용 바로잡을 길도 없어
정책의 과도한 개입 멈추어야

고 의원이 경희대 수원캠퍼스를 분교 내지 지방대로 격하하는 듯 표현한 것은 블라인드 채용 관련 자신이 발의한 법안을 홍보하기 위해서다. 그는 “블라인드 채용 덕분에 KBS에 입사했다”고 했다. 블라인드 채용이 아니면 지방대나 분교 출신은 원하는 기업에 들어갈 수 없다는 투다. 26일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렇다면 블라인드 채용은 공정할까. 블라인드 채용으로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재를 뽑을 수 있을까. 정부나 공공기관도 진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민간기업은 어떻게 생각할까.

블라인드 채용 입사지원서에는 국적, 학력, 학위, 신체조건 등을 기재하는 공간이 없다. 2017년부터 공공부문에 시행됐다. [연합뉴스]

고 의원의 ‘분교’ 논란이 있기 이틀 전인 11일 고용노동부가 보도자료를 냈다. 국내 500대 기업이 신입사원을 뽑을 때 중시하는 항목을 조사한 결과다. 전반적으로 직무와 관련된 요소를 들여다봤다. 입사지원서에서 전공의 직무 관련성, 직무 관련 근무경험 등을 먼저 봤다. 한데 세 번째로 중요하게 여긴 게 최종 학력이다. 블라인드 채용에 기반을 둔 공공부문 입사지원서에는 이 항목이 없다. 민간기업은 또 블라인드 채용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직무 관련 공인자격증을 스펙 취급도 하지 않았다.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채용 방식이 따로 노는 형국임을 정부가 기업 조사를 통해 증명한 꼴이다.

정부 산하 공공기관장인 A 씨는 “공공부문도 기업이다.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그러려면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력을 뽑아서 배치해야 한다. 한데 블라인드 채용의 기반이 되는 NCS(국가직무능력표준)는 기본 소양만 볼뿐이다. 전공 적합성을 사실상 포기해야 하고, 그러니 모르고 뽑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채용 뒤 교육을 다시 해야 한다. 그래도 어느 직무에 맞는지 뽑아놓으면 안 보인다”고 토로했다.

블라인드 채용에 따른 해프닝도 잦다. 대표적인 게 2019년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연구직을 채용할 때다. 정부가 정한 블라인드 채용 절차에 따라 뽑은 박사 학위 소유 합격자가 중국 국적자였다. 국적은 물론 얼굴 사진과 학교 등의 신상정보가 없어 벌어진 일이다. 중국은 우리와 원전 산업에서 경쟁하는 국가다. 기술이 유출되면 안보는 물론 산업경쟁력에 심각한 피해가 생긴다. 결국 원자력연구원은 중국인의 합격을 취소했다.

NCS를 총괄하는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을 지낸 김동만 전 한국노총 위원장(한국노동공제회 이사장)은 “채용 비리 때문에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한 건 이해한다. 하지만 그 수단이 일률적으로 블라인드라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NCS 사교육 시장이 생겼다. 정부가 채용시장을 왜곡하고 있다”며 “NCS를 맹신하는 관료나 정치인이 많은데, 기업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하면 시큰둥하다. 민간 확산을 다그칠 게 아니라 오히려 공공부문도 민간 기업처럼 개성과 기관의 체질을 고려한 다양한 채용방법을 택할 수 있게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 교수

학계의 시각도 비슷하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 교수는 등재학술지인
「경영연구」

에 낸 논문에서 “블라인드 채용이 우리나라 노동시장 조건 및 기업의 인적자원 관리 관행에 적합한지에 대해선 비판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채용 작업은) 조직의 최말단 무경력 신규 참여자가 대상이다. 따라서 블라인드 채용에서 기대하는 직무능력은 관련 경험의 부재로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추가학습을 해야 하고, 사교육도 마다치 않는다. NCS는 지원자가 재학 중 경험하고 성취한 능력·적성과 무관하며, 오히려 새롭게 학습하고 취득해야 하는 또 하나의 스펙”이라고 일갈했다. 특히 “선발 확정 후 채용 오류를 교정할 수단이 없다(근로기준법 23조의 해고 제한)”고 꼬집었다. 권 교수는 그래서 “무경력자의 대규모 채용이 지배적인 대기업·공공기관의 채용 관행에서 채용 정보의 제도적 규율과 제약은 채용 오류의 확률을 높이며, 궁극적으로 기업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실제로 공공기관 고위 간부는 “일단 들어오면 못 내보낸다. 일은 제대로 못 맡기고, 도리어 그 사람을 돌볼 사람이 필요하니, 정원을 갉아먹는다고 해서 ‘마이너스 티오(정원)’라는 말까지 생겼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이와 관련 “공정성에 대한 판단과 이행은 기업의 몫이어야 한다. 제도 및 정책의 분별과 판단 능력이 기업의 그것을 (정부가) 능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논문 말미에 이렇게 썼다. ‘일자리는 공공재가 아니다. 도를 넘는 정책개입은 의도하지 않은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의사결정에 있어 행위자보다 제도가 우월할 수 없다. 소위 블라인드 채용 방법과 NCS의 역할 또한 이런 관점에서 재구성되어야 한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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